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유미 May 30. 2016

인연의 아찔함

책 읽다 말고 딴생각하기 

처음에는 남은 평생 동안 우리가 같이 사랑을 나누고 잠들 침대의 하얀 침대보처럼

모든 것이 분명하고 또렷했었다. 
<파비오 볼로 ‘아침의 첫 햇살’을 읽다가>



    주말 아침, 남편이 자고 일어난 흔적이 고스란히 드러난 침대보를 정리하며 불현듯 인연이라는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건 어지러운 일이다. 어지럽다는 건 아찔한 순간을 말하는데 기혼인 사람들이 배우자를 만난 것에 대해 생각하면 좀 쉬울 것 같다. 나는 소개팅으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대부분의 연인이 그렇듯 결혼까지 생각하고 만나기 시작한 건 아니었지만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그 소개팅은 나와 같이 회사를 다니던 동료가 이직을 했는데 그곳 동료가 남편이었다. 회사를 옮겼지만 우린 연락을 계속 주고받았고 회사에 괜찮은 오빠가 있는데 만나보지 않겠냐는 게 인연의 시작이었다.


    쉽게 생각하면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결혼을 결정하고 아, 이 사람을 못 만났다면… 하고 생각할 땐 인연의 아찔함에 대해 다시금 깊게 생각하게 된다. 만약 그 동료가 수많은 디자인 회사 중에 그 회사로 이직을 하지 않았다면. 귀찮아서라도 소개팅 주선 같은 거 하지 않는 성격의 소유자였다면. 때마침 내 이상형을 그녀에게 말하지 않았다면. 아마 난 남편을 만나지 못했을 것이다.


illust by  곽명주


    인연 하니까 떠오르는데 내 경우에 대부분 첫인상이 별로였던 사람과 끝까지 갔다. 끝까지 갔다는 건 베프(best friend) 같은 것. 직장 베프?라고 생각하면 쉽겠다. 지금 회사에서 가장 친한 동료를 처음 만났던 순간이 기억난다. 첫 출근 날이었는데 지하철역에서부터 이상하게 같은 방향으로 가는 여자가 있었다. 아직도 그녀가 그날 입었던 원피스 무늬와 헤어스타일이 떠오른다. 나를 앞질러 가고 있던 그녀도 그날 첫 출근하는 길이었다. 근데 인상이 별로 좋지 않았다. 굉장히 새침해 보이고 차가워 보였다. 성격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았다. 차가운 인상으로 치면 나도 어디 가서 지지 않는데, 그 친군 더 했다. 순간 내 머릿속으로 빠르게 스치는 단 한 줄.


‘난 쟤랑 절대 친해지는 일 없겠다’


    그런데 걔(?)랑 젤 친해졌다. 회사 규모가 커지고 직원이 많이 바뀌고 늘어나면서 의지할 데라곤 그 친구밖에 없다. 서로에게 그랬다. 새침해 보이고 차가워 보인 그녀는 둘째라면 서러울 정도로 털털하고 샐러드만 먹을 것 같고 야리야리하게 가냘파 보이지만 순댓국과 곱창을 즐겨 먹는다. 근데 이게 처음이 아니다. 전 직장에서도 첫인상만 보고 동갑인데 스타일이 너무 달라 쟤랑은 진짜 안 맞겠다, 했는데 얼마 뒤 회식을 마치고 술이 떡이 돼 집에 못 가고 홍대 근처에서 자취하는 그녀의 집에서 하룻밤 자고는 완전 베프가 되었다.(그날 취해서 그녀가 키우던 개한테 물린 기억이 난다) 회사 관두고 각자 서울, 대구로 떨어져 살지만 아이 낳고도 연락하는 얜 그녀뿐이다. 이쯤 되면 내가 보는 눈이 해태인가 싶지만 이젠 첫인상이 별로면 쟤랑 친해지겠다, 하고 생각해버린다.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는 건, 오래도록 인연을 유지한다는 건 그래서 신기한 것이다. 퍼즐에서 조각 하나가 안 맞으면 완성되지 않듯 어느 순간 상대방이 만에 하나 다른 판단을 했더라면 혹은 내가 그랬다면 우리 인연은 없던 게 됐을 수도 있으니까. 생각해보면 처음 누군가를 만났을 때 만났다는 것 자체를 즐거워하지 못하고 왜 이리저리 판단했을까 싶다. 내 기준을 정해놓고 그 틀에 맞지 않으면 만남 자체가 스트레스인 것처럼 굴었는지. 수많은 사람 중에 그와 내가 여기서 이런 인연으로 만났다는 것부터 기뻐해야 할 일이었을 텐데 말이다. 그렇다고 요즘에 누군가를 첫 대면에서부터 좋은 인연이군, 하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만 앞으로가 더 궁금해질 사이라고 믿고 시작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낮인데 어두운 방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