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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Jun 07. 2016

정신건강에 좋은 '대충'

책 읽다 말고 딴생각 하기


웨이트리스가 치킨샐러드와 토스트를 내온다. 마리의 커피 잔에 커피를 새로 따른다. 그리고 주문한 음식이 전부 나왔는지 확인한다. 남자는 포크와 나이프를 들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치킨샐러드를 먹기 시작한다. 그러더니 토스트를 들어 유심히 쳐다본다. 미간을 찌푸린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애프터 다크’를 읽다가>



    오늘 하루 봉지 커피 네 잔 째. 너무 많이 마시는 것 같아 반쯤은 싱크대에 흘려버린다. 그나마 하는 몸 생각. 물을 틀어 커피잔을 휘휘 헹궈 개수대에 내려놓았다. 푹, 하고 한숨이 나온다. 가스레인지 옆 탁상시계를 보니 벌써 11시 40분. 뭐 하느라 시간이 이렇게 흐른 거지?  


    친정엄마가 말했다, 대충하고 살라고. 어떻게 완벽히 깨끗하게 하고 살겠냐고. 취재하러 오는 연예인 집도 아닌데. 집에서 살림만 하는 여자도 집안일은 버거운 법인데, 직장까지 다니는 내가 집안일에 종종거리는 게 안쓰러웠을까? 사실 우리 엄마도 워킹맘이었는데 대체로 집은 깨끗했던 것 같다. 정리정돈을 못하는 엄마는 쓸고 닦는 건 게을리하지 않으셨다. 반면 나는 어릴 때부터 정리정돈을 잘했다. 엄마랑 나는 한 조처럼 움직였다. 결혼을 하고 엄마랑 떨어져 지내다 보니 문제가 확연히 드러났다. 우리 집은 겉으로 보기엔 깨끗해 보였지만 걸레질이 부족해 곳곳에 먼지가 쌓였고 친정은 정리가 안돼 막 이사하는 집처럼 보였다.


illust by 곽명주


    저녁을 집에서 만들어 먹는 날, 일은 두 배로 힘들다. 음식 하는 게 귀찮은 건 아니지만 그 조리과정에서 나오는 쓰레기며 설거지 양이 어마어마하다. 된장찌개 하나 끓이는데 설거지는 왜 이렇게 많이 나오는 건지. 물론 내 노하우 부족이기도 하지만. 번갯불에 콩 궈 먹듯 저녁을 하고 나면 아이 목욕을 시켜야 한다. 이 목욕을 대체 몇 년이나 더 해야 하는 걸까. 바등거리는 아이를 목욕시키다 보면 옷이 반쯤 젖는 건 예사. 기저귀 채우고 로션 발라주고 잠옷 입혀 재우면 금세 10시. 그나마 바로 잠들 때가 이 정도. 사뿐사뿐 걸어 나와 조용히 아이방 문을 닫고 주방으로 가 설거지를 시작. 그나마 남편이 일찍 퇴근하는 날이면 여기서 분업을 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는 오로지 내 몫. 설거지로 끝이냐, 그럴 리가. 젖병이 남았다. 젖병 6개를 젖꼭지 분리해 씻고 삶아 건조기에 넣으면 다음은 아이 목욕시킬 때 어질러졌던 욕실 청소. 솔로 박박 문질러 물때를 닦아준다. 나는 최소한으로 한다고 하는데도 이렇게 오래 걸리는 집안일.


    11시가 넘은 늦은 시각이지만 일부러 마음을 정돈해야겠단 생각에 커피를 탔다. 뜨거운 물에 퍼지는 봉지 커피 향만으로도 피로가 조금 사그라지는 것 같다. 글 쓰는 업무가 주다 보니 회사에선 앉아 있는 시간이 많고 머리 쓰는 일이 많다. 반면 집에 와서는 아니 퇴근길부터 앉는 건 엄두도 낼 수 없다. 계속 종종거리며 왔다 갔다를 반복한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보면 정신과 체력을 골고루 쓰고 있구나. 회사에선 정신력, 집에서는 체력이 필요한 나. 이렇게 조화를 맞춰가는 것도 나쁘지 않네. 주방 불을 끄고 아이가 잠든 방으로 들어가려다 개수대에 담과 둔 커피 잔이 생각나 돌아본다. 씻어 둘까? 에이 내일 씻자, 대충 살자, 그게 정신건강에 좋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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