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책을 읽습니까?

오후 4시에 쓰는 글

by 이유미


9시 뉴스에 내가 나왔다.


어쩌면 나는 언젠가 이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람들은 점점 책을 읽지 않았고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의 휴대폰만 들여다보며 산다. 그 작은 화면을 통해 세상을 마주하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들지 않은 채 휴대폰을 보며 걷고 있어 신호등이 바닥에 생길 정도다. 어쩔 때는 지하철에 책 읽는 사람은 나뿐이었는데, 그런 나 자신이 스스로 기특하게 여겨진다기 보다 사람들이 오히려 나를 이상하게 바라보는 것 같은 느낌을 받기도 했다.

오래전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라는 프로그램이 있었다. 도서 권장 프로그램으로 책 읽는 사람에게 다가가 인터뷰하는 식이었다. 그때만 해도 나는 학생이었고 그 프로그램에 재미있는 개그맨이 나와서 그랬지 딱히 독서 의식이 투철해서 본 건 아니었다. 요즘 그런 생각을 했다. 만일 그런 프로그램이 다시 생기면 나는 단연 눈에 띌 테고 인터뷰 요청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여느 때와 다름없는 아침이었다. 지하철은 사람들로 붐볐고 앉을 곳은 없었다. 적당한 자리를 잡아 가방에서 책을 꺼냈다. 3일 전부터 읽기 시작한 나쓰메 소세키의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였다. 꽤 시원시원한 문체가 맘에 들었다. 직설적이고 화끈한 느낌마저 들었다. 책을 좋아하지만 잠을 이길 순 없었다. 책을 편채로 서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그러다 정신을 차려 다시 읽기를 몇 번 반복했을 때, 어디선가 “저기 있다!”하는 외침이 들렸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나 또한 소리 나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카메라가 있었다. 카메라를 어깨에 올린 사람과 조명을 든 사람, 그리고 마이크를 든 사람, 이렇게 셋이 인파를 헤치며 내가 있는 쪽으로 오고 있었다.
이쪽? 여기? 왜? 나는 두리번거리며 카메라가 쫓는 대상을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이 주목한 곳은 따로 있었다. 그건 다름 아닌 나였다.

“여기야 여기! 와 드디어 찾았네 찾았어.”


휴대용 마이크를 손에 쥔 기자인 듯 보이는 남자가 다급하면서 안심된다는 듯 말했다.

카메라의 렌즈는 나를 향했다. 나는 덜컥 겁이나 읽고 있던 책으로 얼굴을 가렸다.


“왜… 왜 그러세요?”


딱히 죄진 것도 없는 것 같은데 죄진 것처럼 목소리가 기어들어갔다.

두려움에 떨며 그 기자를 향해 다시 물었다.


“제가 뭘 잘못했나요?”
“지금 책 읽고 계셨죠?”


책 읽으면 안 되는 거였나? 이럴 줄 알았어. 역시 책 읽는 게 이상한 시대가 된 거야.

나는 여전히 책 뒤로 얼굴을 숨긴 채 고개를 끄덕였다. 기자는 손을 올려 얼굴 가린 책을 살며시 내렸다.


“저희가 지금 이 지하철 거의 반을 다 뒤졌는데 책 읽는 분을 처음 찾았습니다.

생각보다 심각합니다. 사람들이 이렇게 책을 안 읽어…”


기자가 다소 격양된 목소리로 말하자 저마다 휴대폰을 들고 있던 사람들의 인상이 조금씩 굳어갔다.

말끝을 흐린 기자는 그제야 나에게 정중히 인터뷰 요청을 했다.


“잠시 인터뷰 좀 해도 될까요?”
“근데 뭘 인터뷰하신 다는 거예요?”
“지금 책 읽고 계셨잖아요. 왜 아직까지 책을 읽으시는지,

어떤 책을 읽는지에 대해 짤막하게 이야기해주시면 됩니다.”


기자는 분명 그렇게 말했다.

왜 아직까지 책을 읽느냐고.
나는 잠시 생각했다.
나는 왜 아직까지 책을 읽고 있을까.

“그게 저… 저는 원래 책을 좋아해서… 달리 스마트폰으로 볼만한 것도 없고… 아, 저 스마트폰은 눈도 아프고… 제가 기계치고… 그냥 책이 좋아서 읽는 것뿐인데 왜 읽느냐고 물으시면…”


기자는 내 이야기를 찬찬히 들었다.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어떤 책을 읽고 계셨어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 요.”
“아, 나쓰메 소세키의 책 맞죠?”


나는 또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꽤 훌륭한 책을 읽고 계시네요. 정말 멋지십니다. 요즘 사람들이 좀처럼 책을 읽지 않는 것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갑작스런 질문에 뭐라 할 말이 퍼뜩 떠오르지 않았다.


“글쎄요…”


기자는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나의 대답을 기다렸다.


“각자 좋아하는 걸 하면 되는 거 아닐까요. 저도 책이 좋아서 읽는 것뿐이니까. 그리고 스마트폰으로 글을 읽는 사람들도 많고…”


나는 어쩔 수 없이 주변의 시선을 의식할 수밖에 없었다.


“종이책 들고 다니기 다소 번거롭지 않나요? 무겁기도 하고요.”


기자가 물었다.


만큼 무거운 책을 들고 다니진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 그렇군요. 앞으로도 쭉 책을 읽으실 건가요?”
“아마도요.”
“아참, 한 달에 책은 몇 권 정도 읽으세요?”


기자는 여전히 이런 사람을 만난 게 신기하다는 듯 질문을 해댔다.


“한… 두세 권 정도…”
“와, 두세 권이요? 정말 대단하시네요.”


사람들이 나를 힐끗거리는 게 느껴졌다. 나는 여전히 뭐가 대단한 건지 알지 못한 채 어리둥절해 있었다. 한 달에, 그러니까 30일 정도 기간 동안 책을 2, 3권 읽는 게 대단한 세상이 되었단 말인가? 더군다나 뉴스에 나올 만큼? 나는 얼마만큼 세상에 대해 모르고 지냈던 것인가. 책을 그만 읽어야 하나?


“마지막으로 일 년에 책을 한 권도 읽지 않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해주시죠.”


내가 그들에게 무슨 말을 한단 말이지? 그냥 책은 좋아서 읽으면 그뿐인데…


“글쎄요… 제가 뭐라고 딱히 할 말이…”
“경각심을 불러일으킬만한 말씀 한마디면 됩니다.”


경각심이라…


“책은 유익합니다. 시간도 잘 가고요. 어쨌든 책은 사라지지 않아요. 이렇게 남습니다.”


나는 손에 든 책을 들어 보였다.
남는다. 남는다. 책은 남는다.


“아… 정말 좋은 말씀이세요.”


기자의 부추김에 괜히 우쭐해졌다.


“자, 그럼 지하철 밖으로 나가서 마무리 멘트 따죠. 아, 정말 감사했습니다. 오늘 선생님 만나지 못했으면 이 기사 못 나갈 뻔했어요. 어쨌거나 거짓말로 책 읽는 사람을 만들 순 없는 노릇이니까요. 감사합니다.”


기자는 꾸벅 인사했다. 나도 덩달아 꾸벅 인사했다.

장비를 철수하고 기자가 마침 열린 문을 향해 내리려고 할 때, 나는 소리쳤다.


“이 방송 언제 나가죠?”


기자는 검지 손가락으로 숫자 9를 쓰며 9시,라고 했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수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