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에 쓰는 글
“아으 더워!”
“나는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 게, 네가 생각하기에 그렇게 단점 많은 남자를 왜 나한테 소개해준 거지?”
“그야… 너희가 그렇게까지 잘 될 줄 모르기도 했고, 여하튼 좀 만나다 말 줄 알았지.”
“아닌 거 같은데.”
“뭐?”
“그저 그런 남자를 소개해줬는데 내가 생각보다 너무 잘 만나고 있으니 배가 아팠던 거 아니야?"
김희원이 어이없다는 듯 하, 하며 한숨을 쉬었다.
“K가 완벽한 남자는 아니잖아?”
“누가 완벽하데? 너는 완벽하니? 아님 네 애인은 완벽해? 그건 그렇고 너는 나를 뭘로 봤기에
그저 그런 남자를 나에게 소개해 준 건데?”
“어쨌든 잘 만나고 있으면 된 거 아니야?”
“그래서 내가 너한테 고맙다고 밥이라도 사야 하는 거니? 사람들한테 나를 맹추 같은 여자로 만들어 놓고?”
“이게 다 H 그년 때문이야.”
“왜 H를 탓해? 애초에 그런 이간질 같은 거 하고 다니지 않았으면 됐을 거 아냐?”
“말간 얼굴을 하고 아무렇지 않게 우리끼리 한 얘기를 너한테 옮겼어. 그게 잘 한 거야?”
“원인제공은 너야!”
엘리베이터는 다시 정적이 흘렀고 어디선가 희미하게 사이렌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우리에게 오는 걸까? 사이렌 소리에 잠시 귀 기울인 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나는 그때 네가 너무 무서웠어.”
“….?”
“그래도 너랑 나랑 가장 친한 사이라고 생각했는데, 네가 나에게 소개해준 남자에 대해
그런 안 좋은 소릴 하고 다녔단 사실을 내가 알 게 되었을 때 기분이 어땠을 것 같아?”
“K는 그렇게 좋은 남자가 아니야!”
“네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난 그 사람이랑 이미 깊은 사이야.
너는 그저 함께 일한 동료에 불과하지만 난 그와 더 많은 시간을 보냈어.
내가 그 사람을 아는 것과 네가 그 사람을 아는 것, 둘 중에 누가 더 K를 잘 알 것 같아?
솔직히 나도 그런 안 좋은 이야길 듣고 그에 대해 적잖이 실망한 건 사실이야.
하지만 난 그 외에 더 많은 장점을 그에게서 발견했고 6개월 이상 만나온 지금 내 선택에 대해 후회는 없어.”
김희원은 아무 말이 없었다. 언성을 높였더니 가슴이 쿵쾅거렸다.
밀폐된 좁은 공간에 30분 이상 갇혀 있었다. 이런 게 폐쇄공포증이란 걸까? 괜히 더 답답해졌다.
“100% 너를 위해서라고는 말 못 하겠다. 어쨌든 약간의 질투는 있었다고 인정할게.”
“질투?”
“그래. 그때 난 애인도 없었는데 네가 K랑 잘 되는 거 보고 배가 아팠나 봐.
그래서 그에 대해 안 좋은 이야길 했던 거고. 어떻게든 너랑 K를 떨어뜨려 놓고 싶었거든.”
이제야 진심이 나오고 있었다. 나는 기가 찬다는 듯한 표정으로 계속 그녀의 말을 들었다.
“관계라는 게 틀어지는 것도 순간인 것 같아. 너랑 몇 마디 다퉜다고 3년간 쌓은 우리 우정이 그렇게 되는 걸 보고 나도 한동안 많이 힘들었어. 먼저 말하고 싶었지만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고…”
“됐어. 그만해. 다 지난 일이야.”
어쩌다 우리 둘이 엘리베이터에 갇히게 되었을까. 누군가 일부러 우리 둘만 넣어 놓고 엘리베이터를 멈추게 한 건 아닐까 싶은 의심마저 들었다. 그렇게 20분이 더 흐르고 엘리베이터 안으로 부저가 울리더니 다시 경비아저씨의 음성이 들렸다.
“곧 다시 움직일 거예요. 두 분 다 별일 없죠?”
나는 네, 별일 없어요,라고 대답했다. 곧이어 깜박이며 불이 켜졌고,
엘리베이터가 서서히 위를 향해 움직였다.
“몇 시야?” 내가 물었다.
“10시 10분”
“잘됐다. 오전에 들어가기 싫은 회의 있었는데.”
“미루지 않았을까?”
“그럼 하는 수 없고.”
나와 그녀의 표정이 조금 풀렸다. 지각이었지만 지각이 아니었다. 금요일이고 껄끄러운 관계 하나가 정리되는 것 같았다. 그녀와 나 사이가 전처럼 가까워질진 모르겠지만 어딘지 모르게 홀가분했다.
엘리베이터가 9층에 도착했고 ‘띵동’ 소리와 함께 가볍게 문이 열렸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