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나서 쓰는 글
나는 요 며칠 적당히 지저분하게 살고 있다.
그게 뭔 소린가 하면 퇴근 후 청소기를 돌리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음 그러니까 그게, 안 돌린다기보다 못 돌리는 게 맞겠지.
내 아들은 4시쯤 어린이집에서 하원 후 바로 위층인 친정으로 '이동'한다.
그래서 내가 퇴근해서 친정에 가는 6시 반까지 약 2시간을
할머니가 봐주신다.
전에는 아이가 낮잠을 좀 자서 할머니 집에서 내가 가기 전까지
잠을 잤는데 요즘은 부쩍 잠이 줄어들어
낮잠을 자지 않고 내가 올 때까지 할머니를 괴롭히며 논단다.
덕분에 피곤해진 아이는 집에 가는 동안 차에서
잠이 들고 집에 도착해 아이를 가만히 안아 방까지 옮기면
그렇게 아침까지 쭉 잔다.
정말 쭉 잔다.
새벽에도 단 한 번도 깨지 않는다.
이건 순전히 잠 많은 아빠와 엄마를 닮은 게 분명하다.
여튼 그래서 아이가 잠을 자니까
조용조용 지내려 하는데, 그러려면 당연히 청소기를 돌리지 못한다.
청소는 해야겠지만 아이가 자는 그 달콤한 시간을 깨긴 싫어서
(아이보다 내가 달콤한 시간)
청소를 하지 않고 적당히 지저분하게 지내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건 아니다.
고양이를 키우는터라 다른 것보다 털 때문에 청소기를 돌리는데
최근 3M 정전기 청소포를 알게 되어 매우 유용하게 쓰고 있다.
소리 없이 털을 싹(완전 싹, 까진 아니겠지만) 모을 수 있다.
그래서 우리 집은 적당히 지저분하다.
그래도 아이가 일찍 잠들어 오롯이 내 맘대로 보낼 수 있는
저녁시간이 꿀처럼 달콤하다.
그 시간에 책도 읽고 드라마 다시 보기도 한다.
남편이 느지막이 오면 오붓하게 저녁도 먹고
대충 먹고 싶을 땐 남편이 햄버거를 사 갖고 온다.
좀 지저분하면 어떠랴.
아이들도 너무 깨끗한데서 키우면 오히려 잔병이
많다고 했다.(라고 또 합리화, 인생은 자기 합리화의 과정이라더니…)
적당히 지저분하면 됐다.
적당히 지저분한 건 달리 말해 적당히 깨끗하단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