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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미 Jul 18. 2016

익숙한 것과 헤어지는 일

책 읽다 말고 딴생각하기 



금요일 저녁, 남자가 여자의 직장 앞으로 데리러 왔다. 남자는 지난달에 뽑은 새 를 몰고 왔다. 일본 자동차 브랜드에서 만든 하이브리드 카였다. 조수석에 올라타면서 여자는 회사 사람들 눈에 띄고 싶지는 않지만 한두 명쯤은 봐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그런 스스로의 욕망이 당혹스러워 작게 실소했다. 남자가 미리 데워둔 열선 시트가 따뜻하고 안락하게 여자의 둔부를 감쌌다. 비로소 여자는 좀 전까지 서 있었던 바깥의 공기가 얼마나 차가웠는지를 실감했다.
<정이현의 ’말하자면 좋은 사람’을 읽다가>




최근에 차를 바꿨다. 재작년 말 중고로 미니(mini)를 샀는데 말 그대로 덜컥 아이가 생겨서 10년 타려고 샀던 미니를 1년도 못 타고 바꾸게 됐다. 나나 남편이나 이런 식으로 차를 바꾸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인생 참 뜻대로 안 된다. 어젯밤에는 일 년 남짓 탄 중고차를 떠나보낸 게 못내 아쉬워 새벽 1시 졸린 눈을 비비며 일기장을 폈다. 오늘 같은 날은 뭐라도 좀 흔적을 남기고 싶은 생각이 들어서. 남편은 사회 초년생 시절부터 미니에 대한 갈망이 있었다. 차를 워낙 좋아하고 덩치에 비해 작은 차를 좋아한 그는 언젠가 돈을 벌면 꼭 미니를 사리라 마음먹었다고 했다. 안 그래도 최근 불어난 살을 짜증 내하며 자신의 리즈시절 사진을 보여준다고(보여달라고 한 적 없음) 아직도 운영이 되나 싶은 싸이월드 미니홈피를 열더니 살짝 말라 보이는 그의 사진이 주르륵 떴다. 그중에 미니가 너무 갖고 싶어서 사진과 함께 짤막하게 ‘언젠가 꼭 산다’하고 남긴 포스팅을 보여주며 이 정도로 자신이 미니를 좋아했노라고 거의 울먹이듯 말했다. 그런 미니를 갑자기 뿅, 하고 우리 앞에 나타난 아들 덕분에 팔게 된 것이다.


사실 이리저리 조금 불편한 걸 감내하면 계속 탈 수는 있을 것이다. 신차를 주문해놓고 차가 나오기까지 세 달을 기다리는 동안 나름의 노하우가 생겨 어디를 가도 여기가 트렁크구나 위치만 알려주는 정도 크기의 트렁크에 유모차를 낑겨 넣고 뒷좌석 카시트에 아이를 앉힌 후 그 옆에 마치 테트리스를 떠올리게끔 짐들을 차곡차곡 잘 쌓고 다녔다. 다행히 아이는 엄마가 옆에 타지 않아도(좁아서 탈 수도 없다) 보채거나 울지 않고 10분 정도 창 밖 세상을 구경하다 잠들기 일쑤였다. 이런 식이면 계속 탈 수도 있겠다, 싶을 때 마침 차가 나왔다고 딜러로부터 연락이 온 것이다.


막상 보내려 하니 속상한 마음까지 들었다. 그럴 리 없는데 미니도 울상을 짓는 것 같았다. 그 생김새가 장난감 같아서 꼬마 남자아이들이 아빠 차가 미니면 좋아한다는 소릴 어디서 주워듣고 내 아이가 아장아장 걸을 때까지만이라도 타면 어떨까 하는 소망을 품기도 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차 앞에서 가족사진이라도 찍어 남기고 싶었는데 그마저도 평일 저녁 퇴근하고 돌아와 헐레벌떡 딜러에게 차를 넘겨야 해서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 중고차 딜러가 ‘그럼 전 이만’하며 뒤도 안 돌아보고 미니를 몰고 갈 때 그 차 뒤꽁무니를 보며 나도 모르게 울컥해 ‘다음엔 널 더 좋아하는 주인 만나,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하고 중얼거려버렸다.  

illust by 곽명주


차는 다른 물건과 달리 마음의 투영이 더 잘되는 것 같다. 어릴 적 보았던 ‘꼬마 자동차 붕붕’ 때문인 것도 같고. 어쨌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우리를 안전하고 편리하게 이동시켜 주니 애지중지 아낄 수밖에. 사실 미니를 타면서 ‘말하자면 좋은 사람’ 소설 속 그녀처럼 사람들이 가끔은 나를 좀 봐주었음 하는 마음이 없지 않았다. 그 차를 타면 괜히 우쭐해지는 기분이 그런 자신을 보고 작게 실소를 터트렸다는 소설 주인공과 같은 심정이었달까. 아, 수입차가 주는 이 하찮은 우월감.


우리는 유모차를 싣고도 바운서가 들어가고 그 옆에 아기 의자도 넣을 수 있는 넉넉한 크기의 SUV 차량을 새로 받았지만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약간 불편은 했지만 차가 싫어져 바꾼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이 바꾼 거다 보니 서운하고 섭섭한 마음이 더 컸다. 내가 오랜 시간 아껴오던 물건을 누군가에게 보내야 할 때의 심정은 자주 겪고 싶지 않은 쓸쓸한 감정이다. 그게 아닌데 그 물건은 나를 버렸다고 생각해 원망할 것 같고(나보다 훨씬 좋은 주인을 만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테면 버젓이 주차장이 있는 집이라던가) 어디 가서 괜히 구박받을 것 같은 기분에 휩싸이는 건 내 과대망상이겠지. 암튼 우리는 새 차에 미니 못지않은 깊은 정을 들여야 할 것이다. 못해도 5년 이상은 우리의 발이 되어 굳은 날씨 이겨내며 원하는 곳으로 안전하게 데려다주게 될 단 하나의 믿음직한 이동수단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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