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방 갈게

오후 4시에 쓰는 글

by 이유미

정확히 6시 01분에 회사 건물에서 빠져나왔다. 이는 칼퇴근이 아니라 정시퇴근이다. 아무렇지 않게 쓰는 말도 고쳐 쓸 필요가 있다. 종종걸음으로 합정역까지 걸어가는데 출산 후 무릎 관절이 약해지고 걸음이 그리 빠르지 않은 내 걸음으로 약 7분 정도 소요된다. 가죽 숄더백을 둘러맨 오른쪽 어깨가 뻐근해 온다. 나는 계속 걸으면서 가방을 왼쪽으로 바꿔 메 본다. 이른 아침 출근 시간 역 근처 버스정류장 앞에 늘 있는 요구르트 아줌마는 저녁이면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거의 매일 아침 나와 있는데 항상 성경책을 읽고 있다. 영하 10도로 내려간 한파에도 밖에서 요구르트를 팔며 성경책을 읽고 있었다. 뭘 기도하는 걸까. 가끔 하느님이 그녀의 간절한 기도를 들어줬으면 하고 내가 기도하고 싶을 정도였다. 합정역 3번 출구 앞에 다다랐을 때 계단 근처에 있는 개똥을 보았다. 그건 개똥이다. 나는 길에서 개가 싼 개똥을 잘 본다. 개똥을 본다는 건 밟지 않는다는 장점이 있겠지만 개똥을 매번 보는 일이 그리 유쾌한 건 아니다. 그래서 뭐가 좋은 건진 사실 모르겠다. 그래도 냄새 지독한 개똥을 밟는 것 보다야 나으려나.


아이는 4시 반쯤 친정엄마가 어린이집에서 친정으로 데려간다. 친정 바로 밑층이 아이가 다니는 어린이집이기 때문이다. 내가 친정에 도착하면 7시 반쯤 되는데 그 사이 아이가 잠깐이라도 자지 않으면 친정엄마는 무척 힘들어한다. 그도 그럴 것이 아이는 점점 커가고 자기주장도 확실해졌으며 고집도 생겼기 때문이다. 집에서 엄마 아빠도 감당하기 힘든데 늙고 힘없는 할머니는 오죽하랴. 나는 종종걸음에서 조금 더 발걸음을 재촉한다. 우스갯소리로 점심시간 동료들과 밥을 먹으며 제발 야근 좀 했으면 좋겠다는 말을 했다. 남들이 들으면 무슨 개소리냐 하겠지만 퇴근 시간 땡 하자마자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 일이 나에게는 어느 쯤 족쇄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야근, 아니 추가 근무(야근이 아니라 추가 근무다)를 하면서 시간을 좀 여유 있게 쓰며 밀린 글도 쓰고 일도 처리하고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래도 강제 추가 근무를 하지 않는 게 어디냐 싶지만 일단 내 입장은 그렇다.


지하철에 탔다. 출퇴근 길 앉아서 가는 건 언감생심 꿈도 못 꾼다.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알맞은 자리를 차지한다. 가방에서 책을 꺼낸다. 그러다 말고 휴대폰을 꺼내 SNS를 좀 들여다보다가 넉 놓고 마냥 쓸데없는 기사들에 정신을 뺏긴다. 이럴 때가 아니다, 출퇴근 길 지하철이 나에게 주어진 몇 안 되는 자유시간이다. 이 시간을 헛되이 보내면 안 된다. 나는 휴대폰을 가방에 집어넣고 다시 책을 펼친다. 다리가 아파온다. 어디 앉을 데 없을까 주변을 좀 두리번거린다. 역시 사람들은 일어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아마도 내가 내려야 할 때쯤 하나 둘 일어날 것이다. 포기한다. 다시 책을 읽는다. 한 페이지 반 정도 읽었을 때 눈이 스르르 감긴다. 나의 기상 시간은 6시 반이다. 그마저도 좀 오래 잤을 때 얘기. 좀 일찍 서둘러야 할 때는 6시에 일어나야 한다. 아이를 낳기 전에는 8시에 일어났다. 회사는 10시 출근도 가능했기 때문에 느지막이 일어나서 여유로운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곤 했다. 아이를 낳으면 생활은 180도 바뀌는 것이다. 서서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정신을 좀 차려보려고 고개를 조금 흔들어본다. 누가 보진 않았을까. 누가 보면 어때. 이렇게 아줌마가 된다. 남들의 시선에서 점점 자유로워지는 장점이 있겠다.


그렇게 50여분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쯤 책은 더 잘 읽힌다. 독서란 늘 읽을 상황이 여의치 않을 때 더 잘되는 법. 모든 게 갖춰진 채 자, 책을 읽으시오, 할 때는 잠이 쏟아지기 마련이다. 그래도 이만큼이라도 읽는 게 어디냐 싶어 책을 덮고 다시 종종걸음으로 개찰구를 빠져나간다. 버스를 기다린다. 마을버스를 타야 친정까지 갈 수 있다. 몸이 아주 힘들거나 친정엄마가 힘들어 죽겠다고 재촉 전화를 할 때는 택시를 탄다. 택시를 타면 늘 3,900원이 나오는데 자동차를 세운 뒤에도 카드를 느릿느릿 받고 미터기도 차 세운 뒤가 아니라 카드 받은 뒤에 눌러 어떻게든 100원이라도 더 받아내려는 택시 기사들의 알량함을 자주 경험한다. 하나같이 똑같다. 요금을 치르고 택시에서 내릴 때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하는 건 내쪽이 대부분이다. 그럴 때 같이 인사해주는 기사가 있는 반면 대꾸 조차 하지 않는 기사들도 허다한데, 그럴 때면 내가 공짜로 택시를 탄 것도 아닌데 왜 내가 감사한 걸까, 라는 의문이 남는다. 괜히 돈을 내고 기분이 찝찝해진다. 그래서 요즘은 인사 안 하고 그냥 내린다. 너도 당해봐라, 얼마나 기분 더러운지, 하는 심정이다. 분명 해가 있었는데 어느덧 해가졌다. 아직 집에 돌아가 후반전이 남아 있지만 기분이 한층 다운된다. 그래도 아이는 보고 싶다. 말로는 이해하지 못했던 여러 순간들이 있다. 그중 대표적인 힘들지만 웃음이 난다, 는 정말 그렇다. 출산 전보다 10배는 족히 힘들다. 하지만 며칠 전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가 없었다면 내가 언제 이런 표정을 지어볼까. 이런 표정이라 함은 얼굴의 숨어있는 온갖 근육까지 다 써서 활짝 웃는 것. 어른들을 상대로 이런 표정은 절대 지을 수 없다. 단순히 웃는 표정은 아니다. 아무리 웃긴 개그 프로를 봐도 이렇게 웃진 않을 것이다. 그래서 아이를 키우고 또 낳고 또 낳는 것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버스에서 내린다. 역에서 친정까지 15분 사이에 사위는 어둑해졌다. 아이는 뭐 하고 있을까? 친정 현관문을 열면 소파 사이로 빼꼼히 나를 쳐다보며 활짝 웃겠지. 빌라 계단을 오르며 괜히 귀를 기울인다. 혹시라도 나 없을 때 친정엄마가 아이를 혼내진 않는지 괜히 의심을 해본다. 다행히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집 안쪽으로부터 새어 나온다. 나는 몸이 익혀버린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을 연다. 친정엄마가 먼저 “엄마네!”라고 아이를 향해 말한다. 아이의 표정이 환해졌는지 할머니가 웃는다. 엄마가 그리 좋으냐, 말한다. 나는 신발을 벗고 아장아장 걷는 아이를 향해 두 팔을 뻗는다. 아이가 내 품에 와락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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