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이 그런 걸 지도 몰라

오후 4시에 쓰는 글

by 이유미

5시 30분은 새벽인가 아침인가. 여하튼, 알람은 6시 10분에 맞춰 놓았지만 5시 30분 저절로 눈이 떠졌다. 오늘은 아이의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아도 출근을 감행해야 했다. 나는 조금 떨리는 심정으로 손을 뻗어 아이의 이마에 올려보았다. 더운지 조금 식은땀을 흘리긴 했지만 서늘한 이마가 나를 조금 안심시켰다.
‘아, 다행이다’
나는 혼잣말을 하고 다시 털썩 베개 위로 머리를 떨궜다. 긴장감이 풀려서인지 잠이 쏟아졌다. 휴대폰을 들어 자주 가는 SNS를 살펴보다가 다시 베개 밑으로 집어넣었다. 이럴 시간에 조금이라도 더 눈을 붙이는 게 낫지. 이놈의 페이스북을 지워버리던가. 속으로 중얼대며 고개를 베개에 파묻었을 때 아이가 “맘마”하고 말했다. 엄마, 엄마만큼 정확하진 않지만 아빠, 그리고 유일하게 아이가 할 수 있는 말이 ‘맘마’였다. 눈이 번쩍 뜨인 나는 거의 자동으로 몸을 일으켜 어, 그래 맘마, 맘마 줄게 하고 말하며 방을 나섰다.

아이의 컨디션은 꽤 좋아 보였다. 어제저녁부터 나아지는 것 같았는데 다행스럽게도 오늘 더 좋아졌다. 안심하고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낼 수 있었다. 가방을 챙기고 옷을 입혔다. 아이는 재잘거리며 내가 출근 준비를 하는 동안 플라스틱 장난감 자동차를 갖고 놀았다. 남편이 옷가지를 들고 이방 저 방을 오고 가며 아이를 봤다. 문을 닫지 않고 아이가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할 수 있는 안전 가드는 제값 주고 산 육아용품 중 돈 안 아까운 것 세 손가락 안에 든다. 아이 입장에선 짜증 나는 것 베스트 1위겠지만.
“컨디션 좋아 보이네.”
“응. 이제 좀 폭풍이 지나간 건가.”
우리는 서둘러 나갈 채비를 했다. 출근하기 전에 아이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줘야 하기 때문이다. 똑같은 아침, 똑같은 출근. 뭐하나 다를 것 없었다. 어쩌면 이는 안정적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이변이 생긴다는 건 즐거울 때도 있지만 불안할 때도 있다.

아이를 카시트에 태우고 차를 출발시켰다. 나는 중간에 전철역에서 내려야 하기 때문에 그 사이 조금이라도 아이를 더 웃기기 위해 가진 노력을 다한다. 아이는 엄마의 노력이 가상하다는 듯 두 눈을 다 감는 윙크도 해주고 나를 따라 작고 빨간 혀를 내밀어 ‘메롱’도 한다. 나는 마음이 좀 놓인다. 죄책감이 덜하다고 해야 하나. 아이도 어린이집에 가서 친구들을 만나면 즐거울 거라 내 맘대로 생각해 버린다.
“오늘도 꽤 더울 모양이네.”
남편이 라디오 주파수를 맞추며 말했다. 나는 자연스럽게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날씨를 확인한다. 구름이 조금 섞여있지만 해도 있다. 비는 없다.
“최고온도 23도. 그리 덥진 않을 거 같은데?”
남편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의 말에 바로 반응해준 내가 만족스러울 것이다. 곧이어 역에 다다랐고 남편과 짧은 입맞춤을 나눈 뒤 차에서 내렸다. 까딱하면 9시를 넘길 것 같아 발길을 재촉한다.

어제 못한 일들이 제법 밀려 있었다. 어제 넘겼어야 할 원고를 일단 마무리 짓기로 하고 키보드를 열심히 두드렸다. 길지 않은 회의가 2건. 다행히 외부 미팅은 없었다. 외부 미팅까지 있으면 마음은 더 좌불안석이 된다. 남편에게 아이를 어린이집에 잘 데려다줬냐는 문자를 보냈다. 남편으로부터 ‘ㅇㅇ’이라는 메시지가 도착했다. 바쁜 모양이다. 다이어리에 적은 to do list를 하나씩 지워가며 오전 업무를 마쳤다. 제시간에 퇴근하려면 점심을 먹지 않고 일해야 할 것 같아 동료들에게 따로 먹겠다 말하고 편의점에서 샌드위치와 콜라를 샀다. 휴대폰으로 메일 확인을 하며 사무실로 들어왔다.
“어? 밥 먹으러 안 갔어?”
K 대리가 막 계단을 내려가며 물었다. 나는 손에 든 편의점 봉투를 번쩍 들어 보였다.
“왜?”
“일이 좀 밀려서. 다녀와.”
나는 더 질문이 쏟아지기 전에 방어막을 치듯 그 자리를 떠났다. 샌드위치는 짰다. 콜라를 마시니 정신이 좀 차려지는 것 같았다. 반쪽 먹은 샌드위치를 봉투에 담에 입구를 묶었다.
‘짜도 너무 짜잖아.’
아이가 아파 갑작스럽게 휴가를 냈기 때문에 휴가 달력에 어제 쓴 휴가를 입력하려고 회사 전산망에 접속했다. 달력을 보니 나 외에 3명이 휴가를 냈다. 나는 어제 날짜에 마우스를 갖다 대며 클릭했다.
“5월 25일…??”
뭔가 있는 것 같았다. 뭐지? 익숙한 숫잔데. 5월 25일? 분명 그냥 지나칠 수 있는 날은 아닌 게 분명했다. 무슨 날이지. 아무 날도 아닌가? 나는 휴가를 입력하고 탁상 달력을 뒤졌다. 25일 그러니까 어제 날짜에 동그라미가 있었다. 그리고 작게 나만 알도록 표시된 암호 같은 메시지.
“wedding 10”

10. 10년. 결혼 10주년.


어제가 결혼 10주년이었다. 내가 생각한 결혼 10주년의 이미지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다른 건 몰라도 리마인드 웨딩은 꼭 하고 싶었다. 형식적인 게 아니라 우리가 하고 싶은 결혼을 다시 하자고 농담처럼 말했던 것 같은데… 그런 특별한 날을 오매불망 아이의 열이 떨어지길 기다리며 보냈다니. 한 사람이 기억 못 하면 다른 한 사람이라도 기억해주겠지, 라는 생각에 간절히 기억하려 애쓰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허무한 마음에 머리가 멍~ 해졌다. 나는 남편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어제가… 우리 결혼 10주년이었네. 당신 몰랐지?”
알았다면 더 화가 났을 것이다. 남편이 알았다면 그냥 지나가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남편은 답장이 없었다. 회의 중인 모양이었다.
특별할 줄 알았지만 결코 특별하지 않았다.

결혼이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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