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4시에 쓰는 글
아직 버리지 않았지만 곧 버려야 할 물건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엄마는 눈시울을 붉혔다. 그것이 엄마의 뜻이 아니라 다른 사람 즉, 나나 언니나 형부의 의견이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나와 엄마, 그리고 언니네 세 식구가 함께 살았던 적이 있을 만큼 그 집은 결코 작은 집이 아니었다. 실평수 27평에 가깝고 방이 세 개였으며 앞뒤로 베란다도 있고 화장실도 두 개다. 하지만 언니네가 분가를 하고 나도 결혼을 해 새 살림을 차린 지금, 엄마는 그 집에 홀로 머물고 있지만 여럿이 살 때보다 짐은 더 늘어났다. 엄마는 선풍기, 옷걸이, 밥솥 등을 주워왔고 원래 갖고 있던 물건들도 버리지 않았으며 무수히 많은 중고 의류를 사다 날랐다. 가방은 물론 신발까지 집안 곳곳에 빼곡히. 빈틈이라곤 없는 그 집에서 엄마는 무려 20년을 살았다.
작년에는 청소 정리 업체를 불러 오랜 시간 묵힌 짐들을 어느 정도 정리했다. 이사를 다녀야 그때마다 어느 정도 버릴 물건들을 나오는데 20년 동안 한 번도 이사하지 않은 엄마에게 어마어마한 양의 짐은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그때도 엄마는 버려지는 물건들에 대한 서운함을 감추지 못해 눈물 흘렸다. 언니와 내가 강력히 주장한 탓에 억지로 받아들이긴 했지만 청소를 다 마친 다음에는 다소 신경질적인 목소리로 우릴 원망하기도 했다. 다 쓰지도 못할 물건들 버리는데 왜 눈물이 나오는 걸까. 그 허접한 바구니, 냄비 하나에 무슨 정이 그리 많이 쌓였다고. 나는 도통 엄마를 이해할 수 없었다. 엄마는 눈물을 훔치며 그래, 다신 물건 주워오지 않으마 하고 말했지만 불과 몇 달 사이에 집안은 전과 다를 바 없이 복잡해졌다. 일부러 돈을 주고 업체까지 불러 정리 정돈을 시켰는데도 이렇게 된 걸 보면 엄마는 물건을 버리지 못하는 사람이 분명했다.
나는 엄마가 기분 나빠할지도 몰라 우스갯소리하는 것처럼 엄마 혹시 저장강박증 아니야? 왜 그렇게 물건을 못 버려?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엄마는 너무 당연하다는 듯, 그런가 봐 나 저장강박증인가 봐,라고 했다. 안 그래도 다닥다닥 붙은 빌라들 사이에 낀 집이라 볕이 잘 들지 않았다. 거실 창문 앞에는 키가 큰 화분들이 엄마보다 더 많은 빛을 빨아들이느라 정작 사람에게는 빛이 가지 않았다. 크고 작은 식물들을 가꾸며 허전한 마음을 달랜다고는 했지만 아주 가끔은 너무 잘 자라는 행운목이나 해피트리가 무섭게 느껴지기도 했다. 현관에는 부족한 신발장 탓에 현관 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무수히 많은 신발들이 늘어져 있었다. 그 집에는 엄마 혼자 사는데 현관만 보면 대식구가 사는 집 같았다. 아니 잔칫날 식구들이 모인 집의 현관 같기도 했다. 쓰지 않는 물건들이 제자리를 오래도록 지키는 바람에 문을 열고 들어가면 캐캐 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비어있는 벽이 없었다. 모든 벽은 무언가로 채워져 있었다. 부족한 신발장을 채우느라 엄마는 낡은 신발장을 주워왔다. 문짝이 허술한 그 신발장에 꽤 많은 신발이 들어가긴 했지만 현관 바닥은 여전히 보이지 않았다.
한동안 엄마는 좀 치우라는 말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화를 내기도 했다. 나 혼자 사는 집인데 내 맘대로도 못하고 사냐! 그럴 때마다 나와 언니는 집이 이러니까 엄마 집에 오기가 싫어진다고 했고 엄마는 올 필요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무슨 이유인지 조카들은 할머니 집을 좋아했다. 60평이 넘는 대궐 같은 제 집을 두고 어두컴컴한 할머니 집이 아늑하다며 좋아했다. 첫째 조카와 둘째 조카 모두 엄마의 이사를 반대했다. 할머니 이사 안 가면 안 돼? 나 할머니 집 좋은데. 여기가 왜 좋아? 좁잖아. 할머니가 새로 이사 갈 집이 제 집처럼 넓은 줄 알고 그러는 모양이라 내가 할머니 그렇게 넓은 집으로 가는 거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래도 여기가 좋단다.
화장실이 달린 안방과 두 개의 작은방에는 모두 옷들로 가득 찼다. 몇 달 전 새로 붙박이장을 설치한 안방에는 붙박이장에 채 들어가지 못한 옷들이 행거와 문고리에 주렁주렁 걸려있었다. 그밖에 옷걸이에는 각종 숄더백이며 토트백이 걸려 있었고 그 외에 스카프나 목도리도 수 없이 많았다. 내가 그 집에 살았을 때 사용하던 작은 방에는 문 두 짝짜리 장롱이 있는데 그것도 엄마가 주워온 것이었다. 그런 큰 물건을 주워 올 때마다 엄마는 자신이 가진 인맥을 총동원한다. 그 대부분은 교회 장로님이다. 트럭을 소유한 그분을 통해 그런 허접한 물건들을 실어 나르고 매운탕 같은 저녁 한 끼로 그 대가를 치렀다. 그 장롱 외에 6칸짜리 서랍장과 거기에도 밑에 서랍이 달린 행거가 있었다.(이 행거도 산 게 아니다) 그 행거 위에 쌓인 옷들은 조만간 천장에 닿을 예정이었다. 나는 이제 그 방에서 낮잠도 자지 못한다. 낮잠을 자고 있으면 옷들이 나를 덮칠 것만 같은 불안감이 들기 때문이다. 내가 제대로 들은 게 맞다면 엄마도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옷이 너무 많아서 무서울 때가 있다고. 그럼에도 왜 버리지 못하냐고 물으니 버릴 게 어딨냐고 했다.
또 다른 건너 방에는 3면이 행거로 이루어져 있다. 드레스룸에 설치하는 그 행거 말이다. 그 방에는 주로 값나가는 모피 코트나 가죽 의류가 걸려 있다. 그 무게가 어마어마해서 행거 봉이 휘어진 적도 있었다. 빈틈없이 옷이 걸려있지만 엄마는 지치지 않고 또 옷을 샀다. 엄마는 그걸 허전해서,라고 했다. 마음이 허해서 자꾸 뭔가를 사거나 주워오게 된다고. 5, 60대 엄마와 비슷한 증세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 흔히 하는 핑계다. 결혼해서 엄마와 분리된 내가 가장 좋았던 점은 물건을 마음대로 버릴 수 있다는 거였다. 엄마는 본인 물건 외에 내 물건도 못 버리게 했다. 내가 옷 정리를 해서 버릴 것들을 분리해 놓으면 그걸 거실 바닥에 다 쏟아 놓고 하나씩 들춰 보면서 이걸 왜 버리냐, 이렇게 멀쩡한 옷을 버리면 벌 받는다,라고 다시 쇼핑백에 착착 접어 담으며 엄마 방 옷장에 밀어 넣었다. 그거 뭐하게? 어차피 안 입는다니까? 나중에 이모 줄 거야. 막내 이모 체격이 작아서 다 잘 맞아. 좋아할 거야. 멀쩡한 걸 왜 버려? 이모는 엄마의 막내 동생이다. 짠순이 이모는 제 돈 주고 옷을 사 입는 법이 없어 엄마 집에 올 때마다 옷을 한 보따리씩 싸 주곤 했다. 이모 또한 그걸 또 그렇게 싫어하지 않아서 주는 엄마도 늘 뿌듯해했다. 나중에는 엄마가 금전을 요구하기도 했다고 이모는 지나가는 말로 내게 말했다. 처음에는 이모가 미안한 마음에 3만 원이나 5만 원 정도 주고 갔지만 나중에는 대놓고 얼마,라고 요구했다. 엄마다웠다. 한 번은 엄마가 자는 사이 방에서 옷 정리를 하고 밤에 몰래 갖고 나가 헌 옷 수거함에 집어넣은 적도 있었다. 이제는 엄마 눈치 보지 않고 버리고 싶은 건 마음대로 버린다. 잘 버리지 못하는 엄마 밑에서 자라 그런지 몰라도 나는 한번 버리면 미련을 두지 않고 과감히 버리는 스타일이다. 그런 물건을 정리할 때 아쉽다기보다 속이 후련한 쪽이다. 엄마랑 똑같이 옷 사는 걸 좋아하지만 나는 어느 정도 안 입는 건 버려야 죄책감이 덜 생겨 다음 옷을 사기 더 수월했다.
이번에는 엄마도 단단히 결심을 한 듯 보였다. 눈물은 어쩔 수 없지만 대부분 정리하고 홀가분하게 떠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버리지 못했지만 엄마도 내심 정리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던 것 같다. 이사를 결정한 뒤 3일을 잠 못 이루었다는 말에 마음 한구석이 짠하긴 했지만 다 입지도 들지도 신지도 못할 물건들이 둘러 쌓여 집의 주인이 엄마가 아니라 물건들인 채 살아가는 모습을 보는 것보다 최소한의 물건으로 좀 더 가볍고 깔끔하게 사는 엄마를 보고 싶은 마음에 최대한 마음 다치지 않게 엄마를 부추겼다. 엄마는 나이가 들수록 더 여려지고 사소한 일에도 상처받는 일이 많아졌다.
엄마는 물건도 물건이지만 집에 대한 남다른 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엄마는 이 집을 1억에 사서 지금 2억 4천을 하니 돈을 벌지 않았냐고, 이 동네 어딜 가봐도 우리 집 같이 앞뒤 베란다가 있고 방이 넓고 화장실이 두 개며 부엌도 넓고 거실도 큰 집이 없다고 늘 말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우리 집은 너무 답답하고 어두웠다. 2층인데도 거실 창문을 열면 바로 앞집 벽이 보이고 손을 조금만 더 뻗으면 그 벽에 내 손이 닿을 만큼 가까웠다. 뒤로는 조금 트였지만 어쨌든 사방이 집들로 막힌 건 마찬가지였다. 빌라가 다 그렇지 뭐. 안 그런 빌라가 어딨어. 분명 안 그런 빌라도 있다. 나는 그런 집을 우연히 보게 될 때마다 엄마는 왜 저런 집을 안 사고 이런 집을 샀을까, 하고 생각했다. 이 집에 대한 엄마의 자부심은 대단했다. 그 많은 빚을 지고도 어떻게든 집을 지켜냈다는 것에 대해 강한 애착을 드러내기도 했다. 어쨌거나 그때 이 집을 팔지 않고 쥐고 있었으니까 지금 이 가격에 팔 수 있는 것 아니냐. 나는 엄마의 그 말을 들을 때마다 고개를 주억거렸다. 엄마 말이 다 맞다고.
이사는 11월쯤 할 것이다. 우리가 산 아파트가 빠지는 때가 그때라고 했다. 엄마와 친분이 있는 부동산 사장은 책임지고 그때까지 이 집을 좋은 가격에 팔아 주겠다고 약속했다. 불현듯 처음 이 집에 이사 와서 언니와 나란히 침대에 누워 새집 냄새를 맡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만 해도 신축빌라였기 때문에 벽지며 바닥이며 모든 게 깨끗했다. 나는 천장에 달린 사각형 프레임의 등을 보며 언니에게 우리 집 좋다,라고 말했다. 언니는 그때 뭐라고 했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11월까지 틈나는 대로 짐을 정리하겠다고 약속한 엄마는 오늘도 버려진 의자를 유심히 지켜보며 가져갈지 말지를 고민했을 것이다. 믿고는 있지만 사람은 그렇게 쉽게 변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