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율적 미식생활 두번째, 떡볶이와 막걸리
나의 탄수화물 사랑은 유별나다. 불판 위에서 고기 구워 먹고 나면 꼭 밥을 볶아야 하고 술이라도 마시면 꼭 밥이나 라면을 먹어야 속이 든든하고 취기가 가신다. 나 뿐만 아니라 많은 한국인들이 이럴 것 같은데, 오죽하면 K-디저트가 볶음밥이라는 소리까지 있을까. 라면에 김밥, 칼국수에 만두 조합이 당연하듯 탄수화물에 탄수화물을 더하면 그야말로 '맛이 없을 수가 없다.'
그래서 떡볶이와 막걸리의 조합 역시 듣자마자 머리를 딱 치게 만드는 마리아주였다. 약간은 되직하고, 매콤하게 맛을 낸 고추장 소스에 떡볶이, 파, 어묵을 한껏 썰어넣고 팔팔 끓인 것을 초록색 분식집 접시에 내놓은 것. 이 매콤달콤하고 쫀득한 떡볶이 한 입에 쌀로 빚어 부드럽고 담백한 막걸리 한 잔이라니?
장수막걸리, 느린마을 막걸리 다양한 막걸리가 있겠지만 이 날은 좀 먹을 줄 아는 지인들이 '복순도가' 막걸리를 준비했다. 지금은 이마트 같은 대형 마트를 가면 쉽게 구할 수 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복순도가는 신세계 백화점 본점 주류 코너나 복순도가를 들여오는 몇 개의 로컬 매장에서만 구매할 수 있는 힙한 아이템이었다. 복순도가를 사고 싶어서 광진구에 사는 지인들과 한남동 갔다가 종로에 있는 서촌차고에 들러 이 술 사고 다시 광진구에 돌아왔던 기억이 난다. 이 막걸리가 동네에 있는 선술집에 입고되었을때 너무 기뻐서 당장 시키려고 했지만 판매가 삼만 오천원에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을 때가 삼년 전인데, 얼마 전 지인들과 놀러간 튀김 오마카세에서 사장님 술 추천해주세요, 하고 가격을 묻지도 않고 술을 주문했을 때 어마무시한 격세지감을 느꼈다. 물론, 혼자 가면 추천해주셔도 오만원 이상은 쓰지 않는다. 2인 부터 가능.
광진구 로컬 프로젝트 'ㄱㅈㅈㄱ(광진지금)'을 하면서부터 광진구에 대한 애정이 지속적으로 J커브를 그리고 있는데, 이 날도 광진구의 떡볶이집인 '나루떡볶이'에서 떡볶이와 튀김을 구매했다. '나루떡볶이'는 과거 자양동에서 '희식주'라는 매장을 운영하시던 사장님이 오픈한 떡볶이집이다.
지속적이고도 주기적으로 먹어주지 않으면 안되는 나의 소울푸드 중 하나, 떡볶이. 이 글을 쓰는 오늘 저녁도 튀김을 잔뜩 넣은 떡볶이와 순대를 먹었는데 타이밍이 참으로 기가 막히고 소름이 끼칠 노릇이다. 내가 오늘 이 글을 쓰는 것은 사실 정해진 운명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막걸리 대신 소주만 두 잔 하고 말았다오.
나루떡볶이의 킥은 새우살만 다져다가 만든 새우김말이와 에그마요라고 생각한다. 맵고 달짝지근한 떡볶이 국물에 찍어먹는 부드러운 새우김말이에, 매운 혀를 진정시켜주는 에그마요는 그야말로 찰떡궁합.
여기에 복순도가 막걸리까지 더하면 바로 이거야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복순도가는 과거 쇼츠를 통해 흔들었더니 병째로 날아가는 '막걸리로켓'으로도 유명한데, 위에서 이야기했듯이 그 전부터 아는 사람들끼리는 아는 힙한 술이었다. 탄산이 있고 달달한 맛으로 술맛이 많이 나지 않기 때문에 스파클링 막걸리라는 별명도 있었다.
마치 요구르트처럼 뽀얗고 부드러워보이는 컬러감이 나루떡볶이의 강렬한 빨간색과 대조를 잘 이룬다. 주변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잘 아는 친구가 있다는 건 정말이지 행복한 일이다.
잔에 따르면 다소 꾸덕한 질감이지만 맛은 천연 탄산으로, 청량하고 부드럽다. 특히 막걸리를 마치 꽃병처럼 길고 투명한 병에 담고, 낮은 잔이 아니라 와인잔에 따라 마시게 하는 브랜딩도 탁월하다. 등산 후에 산 어귀 손두부 집에서 약간 찌그러진 낮은 양푼 술그릇에 담아 잔을 부딪히는 이미지와 다르게, 와인을 마시는 것 같은 새로운 기분을 느끼게 하니까. 익숙한 것일 수록 새로운 형태를 부여했을 때 다가오는 느낌이 더욱 다른 것 같다. 물론, 나는 등산을 안하지만 손두부, 부추전과 함께하는 막걸리도 너무나 사랑한다.
떡볶이에 막걸리만 먹자니 조금 서운하고 모자라서 와인에 다른 안주를 조금 더 꺼냈다. 내추럴 와인을 사랑하는 친구가 꺼내준 크리스티나 그뤼너 펠트리너. 쥬시하고 상큼한 맛이 초여름을 연상시켰다.
그리고 가볍게 마시기 좋은 로제봉봉까지. 입안 가득 즐거운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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