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케루악, 그리고 가톨릭

비트의 화신 이면의 가톨릭

by 김민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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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트 세대는 1950~60년대 활동한 집단으로, 전쟁에 대한 냉소적인 반전주의와 자유를 외치는 리버럴한 집단이었다. 이들의 문화적 토대를 이끌어 낸 작가로는 대표적으로 앨런 긴즈버그, 윌리엄 s 버로스, 그리고 잭 케루악이 있다.

비트라는 단어는 고갈된, 지친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이는 그당시 제 2차 세계 대전을 직간접적으로 겪은 세대들의 심정을 대표하는 단어였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를 대표하는 문학 속 인물은 누구보다 에너지가 넘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바로 <길 위에서>의 딘 모리아티이다. 길 위에서는 잭 케루악의 대표작으로 미국을 주인공인 샐 파라다이스와 조연 딘 모리아티가 같이 히치하이킹으로 횡단하며 일어나는 일들을 보여주는데, 이들이 보여주는 열정, 자유에 대한 갈망, 섹스, 마약 등에 대한 자유는 그 당시 비트 세대들의 기조를 다져주었다. 이로 인해 케루악은 '비트의 화신'이라는 명칭을 얻게 된다.

하지만 케루악은 이런 비트라는 단어를 썩 달갑게 여기지 않았다. 애초에 정의 자체가 달랐기 때문이다. 영어 beat(=exhausted)를 쓰는 다른 비트족들과 다르게 케루악은 beatitude(기독교적으로 복됨)에서 beat란 단어를 인용했기 때문이다. 케루악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다. "비트족들이 내 생각을 지들 좋을대로 이용한다." 이런 생각은 그의 보수주의적인 태도와 가톨릭적인 태도에서 비견된다.

케루악은 자신의 저서를 두고 이런 질문을 받았다. "왜 예수에 대한 글을 쓰지 않느냐?" 이렇게 대답했다. "내 모든 저서는 예수에 관한 글이었다."


잭 케루악은 프랑스 - 캐나다계 가톨릭 가정에서 자라났다. 그의 아버지는 트라피스트 (대표적 가톨릭 봉쇄 수도원) 수도사가 축복한 묵주를 목에 걸고 다녔으며, 그의 어머니 또한 독실한 신자였다. 그렇게 케루악도 자연스레 교회에 다니게 되었으나 14살, 그때부터 냉담하기 시작한다.

그 후 케루악은 대학에 들어갔으나 중퇴 후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한다. 그리고 1957년, 그의 걸작인 <길 위에서>가 출판된다. 이는 당시 기성 세대에 고갈된 젊은 세대들에게 큰 반향을 일으킨다. 그 후 저서 활동을 하던 잭 케루악은 1969년 47세의 나이로 사망한다.

로드무비의 형식을 띈 <길 위에서>는 젊은이들의 소위 막장을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자유를 찾으나 그 끝은 언제나 '무너지고 있다.' 진리를 찾으려고 나름의 철학을 가진 젊은이들은 각자의 사정에서 무너지며 그걸 샐 파라다이스는 같이 겪는다. 처음 읽을 때는 비트의 광기가, 두 번째에는 그 허무함이 드러나는, 읽을 때마다 다른 소설이다. 그리고 케루악은 말한다. "<길 위에서>는 두 가톨릭 신자가 신을 찾는 여정이며, 그들은 찾아냈다."

케루악은 기독교적 가치를 추구하는 동시에 그 안에서 고뇌했다. 벤제드린에 중독되기도 해봤으며, 동시에 고향의 한 성당에서 홀로 무릎을 꿇는 일. 외설적인 내용을 적은 젊은 시절과, 가톨릭 신앙 안으로의 회귀. 이런 그의 일화를 보면 이 소설은 단순히 허무함을 그려낸 내용이 아니다. 단순히 기독교적 비유로, 예로 복음을 전하는 노인같은, 정의되는 가톨릭 신앙이 아닌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자유가 무엇인지에 대해 써내려간 내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종교를 믿는다는 것은 구속이 아니다. 그 안에서 자유를 찾으며 실로 진실된 사랑을 찾아가는, 넓은 대륙을 건넜던 배회와 같다.

그는 의인이라고 하기에는 어려웠다. 그는 죄인들의 교회의 신자였다. 죄인들은 무너진다. 그러나 샐 파라다이스, 그리고 케루악이 다시 일어섰던 것처럼 우린 무릎을 이내 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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