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 할머니 텃밭에는
잡초가 없다고?

오후 4시, 할머니와 5살 아이가 만나는 시간

by 보보농

오후 4시.

해가 조금씩 기울며 텃밭에 긴 그림자가 드리울 때쯤이면 담장 너머로 반가운 기척이 들려온다. 우리 집 다섯 살 꼬마 농부와 옆집 할머니 농부가 약속이라도 한 듯 마주하는 시간이다.




두 농부의 공간은 결이 확실히 다르다.

아이의 공간이 알록달록한 꽃들이 주인공인 '동화' 같다면, 할머니의 텃밭은 투박한 흙냄새 속에 생명력이 요동치는 '삶' 그 자체다. 할머니는 꼭 우리 텃밭에 먼저 들러 아이의 정성을 살피신다.


“아이고, 주인 닮아서 꽃들이 아주 씩씩하게 잘 크네!”


할머니의 덕담 한마디에 아이는 신이 나서 작은 물조리개를 챙겨 든다. 그리고는 담장 너머 할머니의 영역으로 기꺼이 발을 들인다. 고사리손으로 할머니와 물을 나눠 주는 뒷모습을 보면 두 사람 사이엔 나이의 벽이 없음을 실감한다.

나의 역할은 그 곁에서 할머니의 지혜를 엿듣는 관찰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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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내 눈에 할머니의 텃밭은 조금 혼란스러웠다. 이름 모를 풀들이 무성하게 고개를 내밀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시선에 그것들은 그저 정돈을 방해하는 ‘잡초’에 불과했다. 내 마음을 읽으셨는지 할머니는 초록 잎사귀 하나를 툭 따서 내 코끝에 가져다 대주셨다.


“이건 당귀야, 당귀. 향 한번 맡아봐. 씹어보면 더 좋고.”


쌉싸름하고 진한 향이 퍼졌다.

할머니는 옆에 있는 풀은 둥굴레고 발치에 채이는 건 어성초라며, 어디에 좋고 어떻게 먹으면 되는지 풀들의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놓으셨다.

풀더미인 줄만 알았던 것들이 할머니의 다정한 설명을 타고 하나둘 제 이름을 찾아간다.




순간 마음 한구석이 민망해졌다. 단지 내가 원치 않는 곳에 피었다는 이유로, 그 쓰임을 모른다는 이유로 ‘잡초’라 이름 붙여 배척하기에 급급했기 때문이다. 내가 필요 없다고 해서 잡초라 부르는 건, 그 풀의 진짜 가치를 모르는 나의 일방적인 기준 아니었을까? 할머니에게 그것들은 제 자리를 지키며 살아가는 고마운 ‘야생초’였다.

가치를 알고 나면 세상에 함부로 뽑아버릴 생명은 없었다.




아이와 할머니가 약속이라고 한듯 머리를 맞대고 물을 나눠 주는 오후 4시.

아이의 텃밭이 ‘사랑’을 배우는 곳이라면, 할머니의 텃밭은 존재에 대한 ‘존중’을 배우는 곳이다.


아이는 할머니가 주신 당귀 잎 하나를 입에 넣어 오물거리다 삼키고, 남은 하나는 보물처럼 손에 꼭 쥐고 집으로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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