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지가 빼꼼 고개를 내밀 때,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이는 기관지가 약하게 태어났다. 미세먼지와 황사, 그리고 꽃가루까지 날리는 봄이면 아이는 콧물과 기침에 힘들어한다. 그럴 때면 나는 배도라지 즙을 챙긴다. 컵 속의 진한 액체를 빤히 보던 아이가 묻는다.
“엄마, 도라지는 어떻게 생겼어?”
뿌리를 먹는 채소인데 꽃은 보라색이라고 설명해 주다 문득 나의 어린 시절 텃밭으로 생각이 옮겨갔다. 나 역시 어릴 때 호흡기가 좋지 않았다. 유전의 힘이란.
그런 딸을 위해 아빠는 주말 텃밭에 도라지를 심으셨다. 어린 나에게 도라지는 약이라기보다, 손대면 '퐁' 하고 터지는 예쁜 풍선이 매달린 꽃줄기에 가까웠다.
도라지 꽃봉오리는 피기 직전 풍선처럼 공기가 빵빵하게 차오르는데, 그걸 손가락으로 ‘톡’ 터뜨리는 손맛이 기가 막혔으니까. 사실 식물에게 그것은 개화의 에너지를 잃어버리는 치명적인 장난이었다.
농부였던 아빠가 그걸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아빠는 내가 꽃봉오리를 터뜨리며 깔깔거릴 때마다 한 번도 큰 소리로 꾸짖지 않으셨다. 그저 허허 웃으며 딸이 터뜨리고 지나간 자리를, 아니 그 꽃보다 예쁘게 웃던 딸의 모습을 가만히 눈에 담고 계셨다.
아빠에게 도라지 꽃 한 송이가 피는 것보다
딸의 숨통이 트이고 웃음이 터지는 것이 훨씬 더 중요했던 모양이다.
텃밭을 가꾸게 되면서 아이와 함께 처음으로 간 육묘장에서 투박한 손글씨로 적힌 ‘도라지’를 발견했다. 반가운 마음에 뿌리 세 개를 샀는데, 주인분께서 아이가 꼬마 농부라는 소리를 들으시더니 서비스라며 하나를 더 얹어 주셨다. 그렇게 네 개의 도라지 뿌리가 텃밭에 나란히 심겼다.
아빠가 나를 위해 심었던 것처럼, 나도 아이를 위해 땅을 파고 뿌리를 묻었다. 아이는 응원한다며 색종이로 꽃을 접어 도라지 자리에 꽂아 두었다. 그리고 흙더미를 보며 매일같이 속삭였다. 도라지야 힘내라고, 어서 싹을 틔우라며.
싹이 올라오기까지는 꼬박 2주가 걸렸다. 작은 싹이 고개를 내밀었을 때, 아이와 나는 약속이라도 한 듯 손을 맞잡고 환호했다. 별거 아닐 수 있는 이 자그마한 초록 싹 하나에 마음이 이토록 벅차오르다니. 신이 나서 박수를 치는 아이를 보며, 나는 그제야 아빠가 왜 나를 혼내지 않았는지 알 것 같았다.
도라지 꽃 한 번 터뜨리는 게 뭐가 그리 대수라고. 아빠에겐 도라지 꽃을 피우는 것보다 딸의 웃음을 터뜨리는 게 더 큰 농사였을 테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익숙한 번호를 눌렀다. 싹이 났다는 소식보다, 그저 그 이름이 부르고 싶어서였다. 신호음이 가고 아빠의 목소리가 들린다.
“아빠, 뭐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