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 지능? 감각 교육? 그보다 아이는 사랑이 먼저였다
우리 집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매일같이 작은 텃밭으로 ‘출근 도장’을 찍는 다섯 살 꼬마 농부가 산다.
사실 이 작은 텃밭을 처음 일구기 시작했을 때, 나의 머릿속은 꽤 복잡한 계산으로 가득했다. 아이가 흙을 만지며 오감을 발달시키고, 생명을 돌보며 책임감을 배우길 바랐다. ‘자연 지능’이니 ‘감각 교육’이니 하는 거창한 수식어를 붙여가며, 이 작은 공간이 아이에게 훌륭한 배움터가 되길 바라는 엄마의 설계가 빼곡했다.
“꽃들이 목마르지 않게 물도 잘 주고, 시든 잎은 떼어줘야 해.”
나는 아이에게 부지런한 ‘관리자’의 역할을 가르치려 애썼다. 하지만 아이에게 텃밭은 교육의 현장이 아니었다. 그저 사랑하는 식물과 곤충이 사는 소중한 집이자, 마음껏 흙을 만질 수 있는 놀이터였다.
아이를 향한 작은 텃밭에 대한 나의 계산이 멈춘 건, 비가 내리던 어느 날이었다. 창밖으로 보슬보슬 내리는 봄비를 보며 당연히 오늘은 집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가 현관에서 장화를 신으며 나를 불렀다.
“엄마, 텃밭 가야지! 오늘도 가기로 약속했어.”
꽃들과의 약속인가? 궁금한 마음에 일단 아이를 따라 우산을 쓰고 텃밭으로 향했다. 물을 줄 필요도, 흙놀이를 할 수도 없는 날이었지만 아이는 우산 아래 웅크리고 앉아 비에 젖은 꽃들을 하나하나 눈에 담고 있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소중해 보이는 시간이었다.
나는 시든 잎을 떼어내고 잡초를 뽑는 ‘성과’가 있어야 텃밭에 갈 이유가 충분하다고 믿었는데, 아이에게는 그저 ‘보고 싶어서’가 유일한 이유였다. 아이는 꽃이 예쁘게 피는 결과보다, 지금 비를 맞고 있는 꽃의 안부를 묻는 과정에 온 마음을 다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옆집 할머니께서 담 너머로 한마디를 툭 던지셨다.
“저 꽃들은 참 좋겠네. 매일 이렇게 들여다봐 주고 사랑을 주니.”
할머니의 그 한마디에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텃밭을 통해 아이에게 ‘책임감’이라는 숙제를 주려 했지만, 아이는 이미 꽃들에게 ‘조건 없는 사랑’을 주고 있었다. 엄마인 내가 예쁜 꽃을 피워야 한다는 ‘목적’을 고민할 때, 아이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눈을 맞추는 ‘관계’에 집중하고 있었다.
아이와 엄마의 마음은 참 달랐다. 꽃들은 아마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엄마의 효율적인 교육 매뉴얼보다, 비 오는 날 장화를 신고 달려와 건네는 “안녕?”이라는 인사가 훨씬 더 다정한 양분이 된다는 것을.
오늘도 아이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집이아닌 텃밭을 향해 발걸음을 옮긴다.
나의 욕심 섞인 교육관이 아이의 순수한 사랑 앞에 무너지는 순간이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물조리개를 들고 꽃을 향해 걸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며
세상을 사랑하는 법을 한 수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