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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목 Mar 29. 2019

지나치게 감상적인

혼자의 방, 혼자의 물음, 혼자의 다짐




낡은 커튼을 떼어내고 남은 압정 여러 개가 책상 위에 가시밭처럼 놓여 있다.


어제는 이케아에서 배송되어 도착한 커튼 한 쌍을 새로 달았다. 치수를 제대로 재어 주문했다고 생각했는데, 흐물거리는 천을 판판하게 주름 없이 펴놓아도 양옆으로 조금씩 길이가 모자라다. 합쳐봐야 한 뼘도 안 되는 길이만큼. 온 힘을 다해 몸과 마음을 늘려도 결국은 도달할 수 없는 곳에 대하여 생각한다. 가고 싶은 곳에 가고 싶다. 있고 싶은 곳에 있고 싶고.


천국이 달리 있는 게 아니라, 죽은 육신과 산 영혼으로 머물고 싶은 곳에 마음껏 머무는 일 그 자체가 아닐까. 고로 천국이라는 것은 장소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라 어떤 행위나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지 않을까. 갇혀 있기보다 자유롭게 떠도는 일, 생각을 키우기보다 생각을 지우는 일, 사랑을 죽이기보다 사랑을 지키는 일, 슬픔이 무겁기보다 기쁨이 무거운 일, 하기 싫은 것은 하지 않고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일, 가까움과 멂의 구분이 없어지는 일, 적막과 소란을 넘나드는 일, 변화와 평화가 어우러지는 일, 그리움과 만남이 일치하는 일. 천사가 되어 사람을 아껴주는 일.


오늘 아침부터 오른쪽 아래 어금니 주변이 은근하게 아파와 이리저리 혀를 돌려 찾아가 봤더니 사랑니가 또 한 1mm 정도 자라 있다. 살을 뚫고 뼈가 나오는데 어찌 피가 흐르지 않는 걸까. 인체의 신비 같은 것에 감탄하다가, 어떤 상처는 아프다는 생생한 사실만이 있을 뿐이라는 경험으로 수긍했다. 보이지 않아 치료받지 못하거나 위로받지 못한 상처는 영원히 남는다. 그렇기 때문에 사랑니는 살을 찢어발기고 잡아 빼내어 차라리 흉터를 남기는 게 나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사랑니가 아니라 사랑이 남기고 떠난 상처는 떠나기 전에 남은 것일까, 떠난 후에 남은 것일까.


내가 사랑이라 부르는 사람은 여름에 가있다. 나를 겨울에 두고 여름으로 떠났다. 내가 이곳에서 여름으로 갈 때까지 그는 여름에 머물 것이다. 하여 창경궁에 매화가 피었대요,라고 시작하는 짧은 메일을 보냈다. 그가 잃어버리고 간 봄을 내가 찾아 전해줄 것이다. 봄이 정말 만연하면, 가장 봄다운 봄을 한 아름 안아다가 그에게 가져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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