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사 부자연스러운 사람이었다. 이십 대에겐 많은 일이 새롭기에 단지 서툰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할 수도 있지만, 부자연스러운 것은 서툰 것이랑은 다르다. 서투름은 모자란 것 에서 오지만 부자연스러움은 과한 것에서 오기 때문이다. 나는 과하게 겸손했고 필요 이상으로 진지했으며 지나치게 남을 경계했고 의식했다. 그렇기에 누군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요 하고 물으면 대답은 같았다. 자연스러운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내가 한껏 부자연스러울 때는, 머릿속에 있던 생각이 입 밖으로 나가는 과정에서 오랜 망설임을 통과해야만 했다. 그 때문인지 입모양이 어벙하게 일그러졌다. 오물오물 뭔가를 씹고 있는 사람처럼 되기도 했다. 그러면 망가지는 내 얼굴을 시시각각으로 느끼다가 결국엔 하려던 말을 잊었다. 몸짓도 어딘가 늘 어정쩡했다. 다른 이가 어디선가 나를 지켜보고 있을 것만 같아 하품도 마음 놓고 하지 못했다. 길 위에서 헤매게 되면 그게 그렇게 창피하여 왔던 길을 되돌아가지 못하고 돌아돌아 가기도 했다. 걸을 때도 바닥을 쓰는 것처럼 느릿느릿 땅에 붙어 걸었다. 걷다가 곧잘 슬퍼졌기 때문에 너무 씩씩하면 안 될 것 같았다. 잠깐 멈춰 서서 나뭇잎에 햇빛이 깃드는 것을 보고 싶어도 그냥 지나치기 일쑤였다. 이상한 사람처럼 보일 것 같아 소중한 순간을 자주 놓쳤다. 상대방의 말을 끊지 못해 화장실 가고 싶은 것을 참았다. 듣기 싫은 소리를 영혼 없이도 다 들었다. 동의하지 않아도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했다. 실례가 될까 봐 궁금한 것이 있어도 묻지 않았다. 내 안에 거짓이 많았다. 낯선 사람을 만나면 내가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보여주느라 일종의 연기를 해야 했다. 내가 바라는 나의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놓고 그렇게 행동했던 것이다. 그러니 하나도 자연스러울 수 없었다.
그러나 내가 나의 모습으로 사랑하고 사랑받았던 시간으로 한순간에 자연스러운 사람이 되었다. 이유도 없이 그 사람 앞에선 내가 나로 있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런 나를 그도 좋아해 주었다.
지금 나를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슬픔도 아니고 포기도 아니고 불안도 아니다. 자연스러움과 다행스러움이다. 되고 싶은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와준 이를 향한 영원한 사랑과 고마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