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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미 Nov 20. 2019

저한테 왜 그러세요?

알아서 할게요

결혼, 결혼, 결혼. 정말 지겹다. 나는 비혼 주의자는 아니다. 만약 정말이지 저녁마다 헤어지기 싫고 아침마다 눈 떴을 때 보이지 않으면 미쳐버릴 것 같은 사람이 있다면 결혼을 할 생각이다. 더불어 혼전계약서에 동의하는 경우에도. 



그런 의미에서 나는 계약 결혼으로 평생을 함께한 사르트르와 보부아르를 흠모한다. 그들 각자의 문란한 연인관계보다는 그들이 가진 아니, 서로에게 약속한 결혼에 대한 전제를 흠모한다. 사르트르는 어떤 관계, 종교, 사회 같은 외부 환경에 얽매이는 것이 인간의 실존을 방해한다고 보았고 보부아르는 여성이 결혼 후 출산과 육아에만 골몰하고 스스로를 잃어버리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보았다. 특히 보부아르의 <제2의 성>은 처음 접했을 때 충격적인 책이었다. 술술 읽히는 책은 아니지만 시간을 들여 읽어볼 만한 가치는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그랬던 것이 최근에는 결혼이 싫다. 결혼이 하기 싫은 게 아니라. 그냥 결혼이란 말을 듣는 것 자체가 싫다. 지겹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나의 결혼에 관심이 많기 때문이다. 하물며 나는 아닌데. 



작은 아버지는 이제 내 나이가 똥값이라고 말한다. 그럼 나는 대꾸한다. 요즘 사는 게 힘드신가 봐요. 왜 그런 거에 값을 매기고 계세요? 



외할아버지는 결혼 생각이 없다는 내 말에 너는 사람 구실을 못 하는 거라 말했다. 그럼 나는 대꾸한다. 그럼 이혼하신 외삼촌은 사람 구실의 어디쯤에 있는 거예요? 



아빠는 그렇게 네 마음대로 살아봐라, 언젠가 후회한다. 그렇게 말한다. 그럼 나는 또 대꾸한다. 그럼 아빠도 후회하겠네, 마음대로 살고 계시잖아요. 



이런 일이 몇 번 반복되면 아무도 나에게 그와 관련된 말은 하지 않게 된다. 그들이 보기에 나는 웃자고 한 말에 죽자고 덤비는 격이었다. 하지만 어디 웃자고 한 말이 웃겨야 말이지. 가끔 기가 막혀서 웃길 때는 있다.



신기하게도 엄마는 나의 삶을 지지한다. 영영 결혼하지 말고 혼자 살아라,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 안에서 나는 조금 안도하고 조금 슬퍼한다. 엄마의 삶을 엄마 스스로가 부정하는 것만 같아서.



동생은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밖에 있을 때는 사람들이 그렇게 아이에 대해 참견을 한단다. 애가 춥겠네, 그렇게 하면 안 되지, 이렇게 해야지, 저렇게 해야지. 등등. 동생은 처음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조아렸지만 지금은 딱딱한 얼굴로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라고 말한다고 했다. 나는 통쾌함을 느꼈다. 



그래요,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관심과 친절은 상대가 원할 때 보여줘야 진짜인 게 아닐까. 아니면 그저 귀찮은 오지랖이거나 무심한 상처내기가 되어버린다. 나는 좋은 의도로 친절을 보여주려 하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알기에 그 경계가 더욱 안타깝다. 



tip. 막말에는 막말로 대처하자. 망설일 것 없다. 사람은 당해봐야 비로소 타인의 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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