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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유미 Sep 30. 2019

이 민망함도 액땜으로 치도록 하자

그래서 우리가 편해진다면



동생이 결혼하고서 처음으로 집에서 자고 간 날이었다. 작은 방에서 잠들었던 동생 부부는 새벽녘에 울리는 시끄러운 화재 경보음에 화들짝 놀라 방 밖으로 나왔다고 한다. 나는 그보다 반응이 조금 느렸다. 새벽에 잠들어 꿈속을 헤매던 차에 들려온 요란한 화재 경보음에 눈을 번쩍 떴다. 겨우 눈을 뜨고 이게 뭔 소리지, 하고 있는데 부모님이 내 방문을 벌컥 열었다. 아이고, 빨리 나와. 불이 났나 보다.



이상했다. 연기도, 연기 냄새도, 불길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는데 불이라니. 일단 경보음이 울리고 있으니 벌떡 일어났다. 가족들은 다들 두꺼운 겉옷을 걸치고 핸드폰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나만 거실의 창문을 열어서 연기가 치솟는지 살피고 고개를 갸웃거리며 방을 돌아다녔다. 아무래도 이상했다. 불이 나면 원래 이런가? 이렇게 고요한 와중에 어딘가에서 불길이 치솟고 있는 건가. 부모님이 나를 재촉했다. 빨리 나와! 경보음도 계속 울렸다. 빨리 나가! 하고 재촉하듯이.



나는 평소 매고 다니는 에코백에 핸드폰과 지갑, 아이패드와 애플 펜슬, 노트북까지 챙겨서 나왔다. 눈곱도 떼지 못했으면서 당장 나에게 없어서는 안 될 것들을 선별해 가지고 나온 것이다. 그런 것들이 하나같이 전자기기였으니, 나는 현대인이 맞는구나. 하는 실없는 생각을 하면서.



밖에는 우리처럼 화재 경보음을 듣고 서둘러 나온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다. 하나같이 부스스한 얼굴에 겉옷만을 걸친 채 맨몸으로 국경이라도 넘은 이민자 같은 행색이었는데 그중 가방을 메고 있는 건 또 나뿐이었다. 생존본능보다 물욕이 앞선 건 역시 나뿐인가, 하는 묘한 자책을 하며 멀뚱히 찬 바람을 맞고 있었다. 



모여있던 사람들은 밖에서 보는 건물이 너무나도 멀쩡해서 당황스러워하고 있었고. 불은커녕, 연기도 나지 않았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난 격인가. 몇몇 아저씨들은 나온 김에 슬금슬금 구석으로 가 담배를 피워 물기 시작했다.



결국 화재경보기 오작동에 의한 해프닝이었다. 우리 가족들처럼 서둘러 밖으로 나온 사람들은 우리와 같은 층의 사람들뿐이었다. 어디에도 불은 나지 않았고, 그래서 사람들은 의심스러운 혹은 불안한 얼굴로 서로를 쳐다봤다. 경비실에 가서 화재경보기가 우리가 사는 층수에서만 오작동되었던 것임을 확인하고서 하나둘 집으로 다시 돌아갔다.



산발이 되어 얼굴에는 침 자국까지 나있는 동생이 허탈하게 말했다. 하필 우리가 왔을 때 이러냐. 별로 안 좋은 징조 아냐, 이런 거? 그 말속에 짜증도 조금 섞여 있었는데 그 때문인지 올케도 조금 멋쩍게 웃었다. 그 작고 무해하면서도 사랑스러운 올케가 혹시나 동생의 말에 동조할까 싶어 나는 얼른 말했다.



액땜이야, 액땜. 지금 이게 올해 겪을 제일 별난 일일 거야. 너희가 부부가 돼서 처음 우리 집에 온 거니까, 축하 벨 울린 거 같지 않아? 잘 살라고.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고, 동생이 웃고, 정말 웃기는 말을 들었다는 듯 올케도 웃고, 부모님도 저거 또 실없는 소리 하네, 하면서 웃으니 추운 새벽에 밖으로 뛰쳐나가며 식었던 몸이 조금 훈훈해졌다.



액땜이야 라고 하는 말속에는 상대를 안심시키고 위로하고 싶은 마음이 숨어있다. 나는 그래서 종교적 신념과는 상관없이 나쁜 일이 생길 때는 항상 그런 말을 한다. 나에게 혹은 남에게.



"신경 쓰지 마, 이건 액땜이야. 더 좋은 일이 오려고 지금 잠시 나쁜 일이 머물다 가는 거야."



놀랍게도 아무런 힘이 없을 것 같은 이 한마디가 나에게, 상대에게 힘을 준다. 상대는 내 말에 피식 웃는다. 말도 안 된다. 혹은 그런가 보다, 하면서. 그 말을 믿을지 안 믿을지는 오로지 자기 스스로의 선택이다. 하지만 대부분은 믿든 믿지 않든 그 말에 안심한다.



사실 확률적으로 보면 당장의 불운과 미래의 행운은 상관관계가 없다. 지금 불운을 겪었다고 해서 미래에 행운이 올 것이라는 낙관적 인지는 인간이 가진 인지적 오류 중 하나다. 지금 당장 불운과 행운을 겪을 확률은 반반, 미래에 불운과 행운을 겪을 확률도 반반. 결국 상관관계는 제로. 각각의 확률일 뿐이다. 하지만 이 인지적 오류가 얼마나 인간을 크게 위로하는지는 액땜이라는 말 한마디가 당장의 불행을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를 준다는 것을 보면 안다. 물론 도박을 할 때에는 적용해선 안 된다. 그런 논리로 도박을 하다 보면 패가망신하기 딱 좋다.



어쨌든 그런 확률적인 문제를 뒤로 하고 일단 액땜이야, 라는 말은 나와 가족들에게 효과가 있었다. 새벽부터 벌어진 해프닝이 가벼운 웃음으로 일단락되고 우리는 좀 더 눈을 붙이기로 했다. 각자의 방으로 돌아가려는데 문득 모두의 시선이 불룩한 나의 에코백으로 와 닿았다.



와, 누나 그걸 다 챙겼어?

저거 저거 혼자 미적대더니, 저것들 챙기려고 그랬네.

어디 가도 굶어 죽진 않겠다. 그거 다 팔아서 쓰면 밥은 먹겠구나.



다들 한 마디씩 했다. 나는 조금 민망했다. 올케마저도 나에게 한마디 던지려나 싶어 쳐다봤는데, 올케는 그저 무해하게 웃는다. 본의 아니게 나만 목숨보다 아이패드나 노트북을 더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되었다. 실로 민망했지만, 뭐 이게 내 밥줄인데, 뭐. 하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액땜이다, 액땜. 이 민망함도 액땜으로 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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