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존재가 어떤 위안이 되었는지 너는 알까?
나와 J는 아픈 경험을 한 번 해야 했다. 계류유산. 임신 초기 염색체 이상 혹은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생길 수 있는 유산을 말한다. 대부분은 복통이나 소량의 피 비침을 동반하며 초음파로 확인할 때 아예 심장이 뛰는 걸 확인할 겨를도 없이 유산 판정을 받거나 심장 뛰는 걸 확인한 이후에 이상이 있어 병원 방문 시 심장이 멈추었다는 의사의 소견에 의해 유산 판정이 되는 경우도 있다.
생전 처음 듣는 아주 무서운 말이었어. 결혼하기 전에는 관심 가져본 적이 없었고 결혼 후에도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날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실제로 일어났고 우리는 그 경험 이후 영양제를 챙겨 먹기 시작했지(달리 뭘 해야 할지 알 수 없었거든).
임신을 준비하기 위해서 챙겨 먹어야 할 영양제가 따로 있는 줄은 몰랐어(엽산이라던가). 생각보다 많은 것을 준비해야 하더라고. 보건소에서 산전검사라는 것도 받을 수 있더라. 산모가 될 사람의 몸 상태를 미리 체크하는 거야. 어떤 질병이 있는지, 부족한 영양은 없는지, 혹은 필요한 항체를 가지고 있는지 등. 나는 산전검사를 통해 나에게 풍진 항체가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어. 사실 풍진이 뭔지도 몰랐다.
임신 초기 유산을 경험한 후에는 3개월 정도 몸을 회복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해. 유산으로 인해 약해진 자궁을 다시 튼튼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그 3개월 동안 엽산을 열심히 챙겨 먹고(영양제를 꾸준히 챙겨 먹어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 생전 처음 한약이란 걸 지어먹었지. 임신을 하면 60만 원 정도 산부인과 병원과 약국 등에서 쓸 수 있는 바우처를 제공받는데 때 이른 유산으로 그 바우처가 한참이나 남아버렸거든. 사실 한약의 효용성을 그다지 믿지 않음에도 그 순간에는 남은 돈으로 한약을 지어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사람이란 참 이상하지.
그렇게 3개월이 지나고 다시 임신할 수 있는 몸이 되었을 때 역시 생전 처음 배란 테스트기를 사봤어. 작은 박스 하나에 30개가 들어있었는데 그때만 해도 이걸 언제 다 쓰지, 하는 생각을 했었다. 자신의 생리 예정일을 기준으로 해서 배란 예정일에 소변을 테스트기에 묻히면 현재 배란이 일어났는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지. 임신을 준비하는 많은 부부들이 배란 테스트기를 사용한다고 해. 이걸 몇 번이나 사용하게 될지 아득한 심정으로 택배를 받았는데 기막히게도 단 하나도 사용하지 못했어.
배란 테스트기를 사용하기도 전에 혹시나 싶어 생리 예정일 6일 전에(정말 성미도 급하지) 해본 임신 테스트기에서 희미한 두 줄을 발견하게 되었거든. 믿을 수가 없었다. 예정일이 될 때까지 아침마다 테스트기를 확인했어. 조금씩 진해지는 임신선을 확인할 때마다 느낀 기분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웠지. 그저 믿기 힘들어 계속 테스트기만 보고 또 봤어.
그래도 그런 예감은 들었다. 음, 기껏 산 배란 테스트기는 이대로 쓸 일이 없겠구나. 사실 그런 것은 하등 문제가 되지 않았어. 나와 J는 너를 너무나 기다리고 있었거든. 쓸모없어졌지만 쓴 돈이 조금도 아깝지 않았어(사실 금액이 크지도 않았지).
유산 이후 나는 계속 형체 없는 불안에 시달려야 했어. 단 한 번의 유산이었지만 그것을 겪기 전과 나는 상당히 달라져 있었거든. 다시 임신할 수 있을까, 임신을 하더라도 같은 일이 또 생기면 어쩌지, 3회 이상 초기 유산이 반복되는 경우 습관성 유산으로 볼 수 있으며 부부의 염색체 검사를 진행하기도 한다는데 나와 J에게 혹시나 정말 혹시나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확정되지 않은 아득한 불안들이 나를 좀 먹었다. 그런 만큼 나는 내 몸을 챙기기 시작했다. 영양제를 열심히 챙겨 먹었고(건강에 대한 각성을 했다고 해도 도저히 요리를 즐길만한 깜냥은 내게 없어 선택한 차선이다)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36살이 되어 배우게 된 자전거는 내가 운동이 아닌 놀이라고 느낄 만큼 즐거워하는 유일한 몸 쓰는 행위가 되었어(그 외에는 모든 몸을 쓰는 행위에 관심이 없다).
가장 중요한 건 술을 줄였다는 사실이다. 너도 20년쯤 후에는 알 수 있을지 몰라. 일주일에 두세 번 음주를 일상의 탈출구 혹은 해우소로 여기는 사람이 그걸 끊는다는 게 혹은 횟수를 더 줄인다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살면서 아픈 몸을 이끌고 병원에 간 후 의사에게 당분간 술은 드시면 안 됩니다, 라는 말을 들을 때 외에는 그런 삶을 지향해본 적이 없었다. 금주를 종용하는 의사가 얼마나 원망스러웠는지는 구구절절 말하지 않을게.
그런 내가 거의 끊다시피 술을 줄였다(끝까지 줄였다,라고 하는 건 일말의 양심이 하는 말에 귀 기울인 결과랄까?). 내 몸에서 더 이상 필요한 영양을 불필요하게 배출하지 않기 위해서. 정말 아주 잠시만이라도 내가 내 몸을 돌보고 있다는 실감을 위해. 나는 만약 또다시 겪을지도 모르는 유산이라는 불행 속에서 조금이라도 변명할 거리가 필요했는지도 몰라. 이렇게까지 했는데 또? 나는 할 만큼 했는데?라는 식으로 말이지.
사실 임신 초기 유산에는 누구의 잘못도 물을 수 없다고 해. 그냥 일이 그렇게 되는 것뿐, 이라고 의사들도 말하더라. 하지만 당사자인 나는 머리로는 그 말을 이해한다고 해도 심정적으로는 완전히 동의하기가 힘들었다. 꼭 무언가 이유가 있을 것만 같고 그 이유가 나에게 있는 것만 같은 불안과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어. 그걸 덜기 위해 내 몸을 챙기기 시작했던 거고.
하지만 그런 일련의 행동들이 내 몸을 건강하게 만듦과 동시에 정신적으로도 나를 원래의 궤도로 돌려놓았다. 무언가에 집중하고 일상을 일상으로 살아낸다는 것이 어떤 힘을 가졌는지 새삼 깨닫는 시간들이었어. 몸의 회복과 함께 나는 정말 괜찮아졌다. 불순물처럼 가라앉은 미약한 불안은 남아 있었지만 그 불안의 힘이 세지지는 않았어. 그리고 그 시간들을 지나 더 이상 자신을 탓하지 않게 된 내게 네가 찾아왔다.
정말 내 몸이 건강해졌기 때문인지, 아니면 마음이 회복되었기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그냥 그렇게 될 일이었던 이전의 유산처럼 그냥 그렇게 될 일이었던 것처럼 너도 찾아온 걸지도 모르겠다) 불쑥 네가 찾아온 거지.
다시 생각해도 정말 다행이었어. 네가 찾아와 줘서. 그 하나로 나는 내게 필요한 위안을 얻었고 알 수 없는 새로운 세계로 발을 들이게 되었다.
너의 시작은 그 자체로 위안이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