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를 지키기 위한 호르몬의 사투
임신을 하게 되면 많은 것이 변한다. 정자와 난자가 만나 수정이 되면 수정체가 자궁으로 이동하고 자궁에 착상되면서 임신을 유지하기 위한 호르몬이 나오기 시작해. 임신 후 나오는 호르몬이란 건 정말 순전히 너를 지키기 위한 사투 그 자체다. 그래서인지 이 호르몬이란 게 아주 사람을 미치게 만들지.
앉아도 서도 속이 메스껍고 울렁거려. 하루 종일 멀미와 숙취를 겪는듯한 지독한 어지럼증이 계속된다. 속이 거북하고 후각이 예민해져. 평소 느끼지도 못했던 온갖 냄새를 맡을 수 있고 그게 불쾌하게 느껴지지. 고기나 다른 음식 냄새, 냉장고 냄새, 하물며 항상 쓰던 바디워시의 향마저도 역겨워지자 할 말이 없더라.
몸은 무기력해지고 감정은 어찌할 바 모르고 요동친다. 원래도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서 잘 우는 사람이긴 했지만 탭 볼을 하면서 버둥거리는 J를 보면서 배를 잡고 웃다가 눈물이 나는 건 무슨 경우라고 생각하니? 기가 막혀서.
잠은 쏟아지고 음식은 쳐다보기도 싫지만 배는 고프고. 살이 쭉쭉 빠지는데 내가 못 먹어서 혹시 네가 잘못될까 살 빠지는 걸 반가워할 수도 없어. 다행인 건 임신 초기에는 난황이라는 영양분을 통해 너는 영양분을 공급받기 때문에 내가 먹지 못해도 너는 잘 자란다고 하네. 좀… 억울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렇게 호르몬이 날뛰는 시기를 ‘입덧’이라고 한다. 나는 좀 괴로운 입덧에 시달린 것 같아. 그래서 일찌감치 입덧 약을 먹었어. 그랬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구토를 하는 극한의 상황까지는 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몸이 정말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에 극도로 예민하고 조심하게 돼. 호르몬의 유도하는 게 그런 걸까? 싶었다. 극도로 감각을 예민하게 만들고 몸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게 만들어서 너를 지키는 방식 말이야. 정말이지 좀 무식하고 극단적인 것 같지 않니?
입덧에도 다양한 종류가 있더라고. 나는 고기를 전혀 먹지 못했고 음식 자체에 거부감이 드는 종류였던 모양이야. 그런데 나보다 먼저 임신을 했던 친구는 먹덧이라고 먹지 않으면 속이 안 좋아서 계속 먹을 것을 밀어 넣어야 하는 입덧을 겪었다. 그런 경우에는 오히려 체중이 너무 갑자기 불어나 임신 중기 이후 임신 중독증이나 임산부 고혈압 등을 조심해야 해. 나중에는 식이요법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다고 한다. 정말 쉬운 일이 없지?
끊임없이 먹고 토하는 걸 반복하는 토덧, 양치질을 할 때 토하게 된다는 양치 덧(나는 양치 덧도 있었어). 별의별 입덧이 있지만 공통점은 하나같이 쉽지 않다는 거야. 나는 원래도 혈압이 낮은 편이었는데 입덧 때문에 먹지를 못하니 혈압이 더 낮아져서 정말 하루 종일 누워있기만 해야 하는 상태였다.
임신 6주부터 시작된 입덧이 그렇게 12주를 돌파했지. 너무 힘들어서 회사도 다닐 수가 없었어. 퇴사를 한 후에도 16주까지는 하루 좋고 하루 나쁜 상태를 반복하며 지냈다. 그러다 16에서 17주가 되면서 정말 거짓말처럼 몸 상태가 좋아졌어. 그즈음 태반이 완성되면서 너는 태반을 통해 영양을 공급받고 그렇게 태반에 의지하게 되면 임산부의 호르몬은 안정된다고 해. 그때는 임신테스트기를 해도 임신 확인선이 선명하게 나오지 않는다고 한다. 관련 호르몬 수치가 낮아지는 거야.
나는 임신을 겪으면서 정말 인간이란 호르몬의 노예구나, 라는 생각을 절절하게 했어. 몇 달 간을 누워서 병자처럼 지내면서 사실 무서웠거든. 원래의 몸 상태로 돌아가지 못하면 어쩌지. 이렇게 몸이 약해지기만 해서 어떡하지. 나, 정말 괜찮을까.
너에 대한 걱정도 있었지만 그래도 나는 나를 가장 걱정하고 있었어. 입덧 약을 먹는 것도 전혀 고민하지 않았다. 네가 작고 소중한 만큼 나도 작지는 않지만 그래도 소중하거든. 그런데 주수가 차니까 거짓말처럼 몸 상태가 좋아지기 시작하는 거야. 울렁거리던 속도 진정되고 못 먹었던 고기를 다시 먹을 수 있었고 오래 앉아 있어도 어지럽지 않았어. 기적을 체험하는 것 같았지.
그것이 바로 모든 임산부들이 바라마지 않는다는 안정기라는 거야. 대개 임신 12주 이후 혹은 16주 이후부터를 안정기라고 말한다. 초기 유산의 위험성이 현저하게 낮아지는 시기. 임산부의 몸 상태가 회복되는 시기. 그래서 많은 부부들이 태교여행을 떠난다는 그 시기.
호르몬이 더 이상 너를 극단적으로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하는 시기.
그 모든 것이 호르몬의 농간이라고 생각하면 억울하기도 해. 왜 그런 농간을 부려야만 하는 걸까. 종족보존이 인류에게 중요한 일이라면 이래선 안 되는 거 아닌가? 아니, 너무 너만을 위주로 돌아가는 호르몬의 세계가 아니었을까 싶은데 어떻게 생각해?
응, 생색 좀 내봤어. 조금은 생색내도 되지 않을까. 너를 품는 일은 시작부터 정말 눈물 나게 힘들었거든. 그래서 듣기 가장 힘든 말이 ‘원래 그런 거야.’ ‘아이 생각해서 견뎌야지.’ ‘다들 그래, 너만 그런 거 아니야.’ 이런 말이었어. 나의 괴로움이 당연한 것, 남들도 다 겪는 별일 아닌 것으로 치부되는 게 못내 씁쓸했다. 그래도 있잖아. 이 고생이 너를 만나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그래, 견뎌야지. 10달 금방이니까’ 하는 생각도 들었어. 하지만 동시에 10달을 확 건너뛰어서 시간 여행이라도 하고 싶은 기분도 들었다.
아이 둘을 가진 내 친구는 대체 어떻게 두 번이나 이걸 겪어냈냐는 내 말에 웃으며 말하더라. ‘낳아야 하니까, 낳은 거지. 뭐 어쩌겠어.’ 그래, 뭐 어쩌겠니. 결국 호르몬들은 승리를 거머쥐었고 나는 그 발아래 엎드려 그나마 돌아온 체력에 환호했으니. 무엇보다 네가 잘 있다니 그것으로 일단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