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유미 Dec 28. 2019

4살과 5살의 차이

그 아득한 경계



오랜만에 미용실에 갔다. 머리도 자르고 새로 염색도 할 겸. 정말 오랜만에 머리에 공을 들이는 시간이었다. 길고 지루한 시간을 버티기 위해 한참 웹툰을 정주행하고 있었다.



젊은 엄마가 여자 아이 둘을 데리고 미용실 안으로 들어왔다. 아직 초등학교도 들어가지 못 했을 어린 두 딸을 무게추를 달 듯 양 손에 매달고 들어온 젊은 엄마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아기도 커트 해주나요?



넉살 좋으신 원장님은 원래 아기들은 안 하는데 (허리가 아파서) 데리고 오신 아이들이 예뻐서 해주겠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동네 장사라 쉽게 거절할 수 없는 입장임을 꽤나 좋은 말로 흘려넘긴 것이다. 웹툰에 집중하는 척 오, 하고 속으로 감탄사를 뱉었다.



이제 36개월이 되었다는 어린 여자 아이는 커트 하는 것을 무서워했다. 아픈거 싫다며 칭얼거리는 아이를 어르고 달래는 젊은 엄마와 원장님을 지켜보며 내가 제3자임을 내심 안도하고 있는데 불쑥 원장님이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 언니도 했어. 어때, 예쁘지? 하나도 안 아프겠지?



아, 일단 두 번 정도 흠칫했다.

언니라는 말에. 예쁘지? 하는 말에. 누가 봐도 저 어리디어린 여자 아이들에게 나는 언니가 아닌 이모였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는 누구도 ‘언니’라는 말을 ‘이모’라는 말로 정정하지 않았다. 나조차도.



그리고 예쁘지? 하는 말에 흠칫한 것은 그저 무의식이었기에 설명을 덧붙이지 않겠다.



역시 원장님의 말에 설득력이 없었는지(어느 부분이었을지는 상상에 맡기겠다) 아이는 칭얼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그와중에 함께 온 5살짜리 언니와 투닥투닥 대화를 나누는 것이 신기해 귀를 쫑긋하며 듣고 있었다.



“저 언니도 하잖아. 괜찮아.”

“저 이모는 뭐 하는 건데?” (난 염색약을 바른 채 김무스같은 머리를 하고 앉아있었다.)

“글쎄. 근데 언니라고 해야지.”

“응. 그래서 저 이모는 뭐 하는 건데?”



5살 난 언니는 나를 언니라고 하고, 4살 된 아이는 나를 이모라고 불렀다. 그 간극에 웃음이 났다. 해봤자 겨우 몇개월 차이밖에 안 날 저 아이들을 나눈 그 간극에. 이모처럼 보이지만 원장님과 엄마가 언니라고 부르니까 언니라고 부르는 5살 아이와 그래도 이모같아 보이니까 이모라고 부르는 4살 아이. 그 사이에 무엇이 있기에 그런 차이를 만들어 내는 걸까. 아이는 언제 어떻게 자신을 속이고 사회가 용인하는 ‘상식’을 따르게 되는걸까. 지금은 4살인 그 아이도 5살이 되면 나를 ‘이모’가 아닌 ‘언니’라고 부르게 될까.



쓸데없는 사색을 하는 동안 아이는 머리 자르는 일이 아무런 아픔을 동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얌전히 원장님의 손길을 받아들였다.



그래, 그렇게 큰일이 날 것만 같던 일들이 아무 것도 아님을 알게 될 때, 그런 일들이 하나둘 늘어날 때, 그러다 내가 생각하는 일이 현실과 한참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결국 사람은 현실을 따라간다. 그렇게 5살이 되는 거겠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