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치에세이] 오지랖

#012_나만 창피한 거 아니죠?

by 정유미

_오지랖도 봐 가며 떨어야 주접이 아니지



술주정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우는 사람, 자는 사람, 시끄러워지는 사람, 기절하는 사람, 노래하고 춤추는 사람, 개로 변신하는 사람 등등. 아주 천차만별이다. 게다가 이게 경험의 축적에 따라 조금씩 그 수위가 다른데 아무것도 모르는 스무 살 시절, 첫 주정은 확 트인 베란다로 나가서 구령을 붙이며 국민체조를 하는 것이었다. 밤새. 지금은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여 좀 시끄럽고 노래도 하고 춤도 추면서 개로 변신하는 사람이 됐다. 술을 과하게 먹으면.



그렇다고 어마어마한 사고를 쳐본 적은 없었다(기억에 있는 한은). 그래서 가족 모임에서 나는 종종 어른들과 술을 마신다. 이젠 나이 어린 사촌들과 어울릴만한 짬이 아니거니와, 맘껏 공짜 술과 맛있고 양 많은 안주를 먹으려면 어른들이 있는 자리에 앉아야 한다. 그 사이에서 결혼이네, 직장이네, 적금이네, 내 집 마련이네, 하는 소리는 귓등으로 흘려 넘긴다. 정신 건강에 안 좋으니까.



그날도 어른들과 한 잔, 두 잔 하면서 친할머니의 칠순을 축하하고 있었다. 모여 있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나의 어머니이신 김 여사만 빼고.



김 여사는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스무 살 나이에 아버지와 결혼을 하셨는데 어린 나이에 식도 제대로 올리지 않고 몸만 시댁으로 들어와 살게 된 며느리라 친할머니께 구박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얘기만 들었지만 그와 관련된 이야기만 나오면 구구절절 김 여사는 단 한 구절에도 분노를 빼먹지 않았다. 그런데 그런 친할머니가 유독 둘째 며느리한테는 유하셨다. 우리 김 여사는 항상 그것이 더욱 분통이 터지고 약이 오른다고 했다. 왜 자기는! 그렇게 미워하고서! 동서만!!



그날은 친할머니의 칠순이니, 할머니께서는 흥이 오르셨고 동시에 술을 드시다 보니 감정도 오를 대로 오르셨던 모양이다. 눈물을 보이시며 둘째 며느리의(나에겐 작은어머니가 되시는) 손을 꼭 붙잡고 미안하다, 미안하다. 내가 잘해준 게 없어서 미안하다, 를 연발하셨다. 그러니 우리 김 여사 눈에 불똥이 튀지 않았겠는가.



그래서 내가 술을 더 많이 마셔야 했다.

상관이 없는 얘기 같지만, 전혀 상관이 있었다. 김 여사께서 화가 나 친할머니께 불퉁하게 대거리를 한 것이다. 갑자기 분위기는 싸해졌고, 결국 김 여사와 할머니는 부둥켜안으며 눈물로 화해를 하셨지만, 그래도 잔치 분위기는 이미 온데간데 없어지고 말았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이 내가, 분위기 메이커로 나서야지. 없던 오지랖을 끌어모으고, 모으면서 그렇게 생각했을 때 이미 나는 취했을 것이다. 조금씩 송곳니가 나오고 손발에 털이 숭숭 돋아나는 기분이 들었다. 개가 될 준비는 이미 끝났다.



일단 콧소리를 한껏 장착하고 할머니를 부른다. 그 옆에 찰싹 붙어 술을 따라 드리고 나도 한 잔, 할무니도 한잔하면서 원샷을 한다. 그리고 숟가락을 들고일어나 노래를 부른다.



“님이라는 글자에~ 점 하나를 찍으면~ 도로 남이 되는 장난 같은 인생사~”



아, 나도 내가 내가 아니라 남이었으면 좋겠다고 열두 시간만 지나면 후회할 것을. 신명 나게 꺾어가며 노래를 부르던 나의 주접에 어른들은 열렬히 박수를 치며 한 곡 더를 외쳤다. 여기저기서 어른들이 내 이름을 부르면 달려가서 술을 받아먹고 노래를 불렀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도 여긴 내가 낄 자리가 아니군, 하며 돌아설 정도로 무대를 장악하고 말았다.



정확히 열두 시간 후, 정오쯤 내 방 침대에서 잠이 깬 나는 격렬한 두통과 함께 격렬한 후회가 찾아드는 것을 느꼈다. 좀처럼 일어나 방 밖으로 나갈 수가 없는 것은 어제의 내가 부끄러워서가 아니었다. 거실에서 들려오는 부모님의 이야기 소리 때문이었다.



“당신 딸이 왜 시집을 못 가는지 알겠지?”

“뭐야, 당신 딸이지, 왜 내 딸이야. 그리고 시집은 안 가는 거래잖아.”

“… 어제 그 꼴을 보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



내가 뭐요. 다 가정의 평화와 고부간의 화평을 위해서 그런 건데. 아, 정말 오지랖도 상황 봐가며 떨어야 주접이 되지 않는 거다. 쓰린 속을 부여잡고 다시 잠을 청했다. 어제 나를 본 모든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기억상실이라도 걸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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