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태어나니까 더 행복해?"라고 언니가 물었다.
나는 말문이 막혔다. 아이가 태어나고 더 행복한가? 그랬나? 행복이 뭐더라? 이게 행복인가?
내가 한참을 생각하니까 "행복하겠지."라고 언니가 대신 대답해 줬다.
퇴근하고 집에 온 남편에게도 물어봤다. "아이가 태어나니까 더 행복해?"
남편은 곧바로 "응."이라고 대답했다.
"정말로? '행복하다'라고 느꼈어?."
"그렇진 않은데, 안정적이라 좋은 것 같은데?"
며칠 후 친구들을 만났다.
결혼을 앞둔 딩크족 친구가 물었다. "아이가 있어서 더 행복해?"
나는 언니의 질문을 받고 며칠 동안 이 질문에 대해 생각했었다.
정해진 답은 너무나도 간결한 '응.'인데 '응.'이 아닌 것 같았다.
'응.'이라고 해야 참된 부모 같은데 '응.'이 나오질 않았다.
그렇다고 '아니.'라고 하자니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느낌이었다.
결국 답을 찾지 못했고 친구에게도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다.
SNS에 아이가 있어서 몇 배는 더 행복하다는 사람들을 봤을 때도 형식적으로 하는 말은 아닐까?라고 의심할 정도로 이 질문은 나를 혼란스럽게 했다.
옆동 애기엄마에게도 물어봤다.
옆동 애기엄마도 아이가 있어서 더 행복하다고 말했다.
내가 이상한건가?
이 질문은 계속 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내가 언제 '행복하다'는 단어를 사용했었지?
해변에 누워서 파도 소리 듣고, 파란 하늘과 즐겁게 노는 사람들을 보고 있을 때?
이건 따사롭고, 노곤하고, 평화롭고 그런 느낌인데.
내가 정말 가고 싶었던 파리로 여행을 갔을 때?
이건 기대와 설렘인데.
이때 깨달았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직접적으로 사용하지 않더라도
따사롭고, 노곤하고, 평화롭고, 기대하고, 설레는 그런 감정들도 모두 '행복'이라는 것을.
아기를 키우면서 정신없이 바쁜 하루가 지나가고 또 하루가 지나갔다.
매 일분일초를 살아가기에 바빴다.
아이를 키우니 1분 전 과거를 돌아볼 겨를도 없었다.
아이가 사랑스럽다 느끼는 것도 그 순간이 지나면 또 다른 순간들을 맞이하느라 그 사랑스러움을 붙잡고 있을 수 없었다.
그러다 보니 그 질문을 받았을 때 혼란스러웠던 것이다.
나는 아이가 태어나고 행복했다.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힘든 날도 많았다. 하지만 그런 날들조차 나는 견뎌냈다.
어쩌면 그건 나를 위한 것이었다.
아이가 건강하게 잘 자라면서 나와 함께해야 내가 행복하기 때문이다.
나는 아이가 있어서 행복했던게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