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에게 친절하기
우리 아빠는 늘 나를 학교까지 태워다 주셨다. 자연스레 아빠와 둘이 있는 시간이 많았고, 아빠와 이런저런 소소한 얘기들을 했다. 그중 하나는, 1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또렷이 기억에 남아 있다.
어느 날과 마찬가지로 아빠가 학교에 데려다주던 길이었다. 문득 궁금한 마음이 들어 물어봤다.
"맨날 나 데려다주는 거, 귀찮지 않아?"
아빠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사람들은 회사에서 대개 다른 사람들한테 친절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하잖아. 남한테도 하는데, 가족한테는 더 친절해야지. 가장 소중한 사람들이잖아."
아빠는 내가 학교 갈 때뿐만 아니라, 약속이 있을 때도 데려다주셨다. 언니와 엄마가 외출할 때도 아빠는 늘 함께했다. 데려다주고, 데리러 가셨다. 결혼한 지금까지도 아빠는 여전하다. 부모님 집에 갔다가 근처에 약속이 있으면 '태워다줄까?'하고 물어보신다. 아기와 함께 약속이 있던 날에도 데려다주시며, 아빠는 이런 말을 하셨다.
"할아버지가 손자도 데려다주고 영광이네."
아빠는 정말 대단했다. 자신이 했던 말을, 십수 년이 지나도록 꾸준히 지켜내고 계셨다. 아빠는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가족에게 가장 따뜻한 사람이다.
사실, 나에게는 '가족 사이에 친절하다'는 말이 조금 낯설게 들렸었다. '친절'이라는 단어는 보통 친하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 쓰지 않나?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젠 알겠다. 친할수록 더 친절해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가까울수록 오히려 마음을 놓고 함부로 대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까울수록 더 의식적으로 친절해야 한다.
부모님은 내가 갓난아기였을 때부터 모든 것을 받아주셨다. 아기들은 그걸 본능적으로 안다. 부모님은 다 받아주신다는 것을. 그래서 하고 싶은 대로 다 하고, 성질도 부리고, 전혀 꾸밈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모습은 커서도 잘 바뀌지 않는다. 부모님에게 있는 성질, 없는 성질 다 끌어다가 낸다.
여전히 나는 엄마에게 짜증을 낼 때가 있다. 전화를 툭 끊고 나면 아빠가 했던 말이 떠오른다. 그리고 후회한다.
'남보다 엄마한테 더 잘해야 하는데... 나는 왜 자꾸 엄마한테 짜증을 내는 걸까?'
아빠가 해준 말은 행동으로 이어지기까지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머리로는 분명히 아는데, 상황이 닥치면 금세 잊혔다. 그런데 아빠는 해내고 계셨다. 물론 지금도, 아빠는 그 말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계신 것 같다. 가까운 사람들에게 친절하다는 것은 매순간 노력해야만 가능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렇기 때문에 아빠가 너무나도 멋지다.
나도 꾸준히 노력하자. 계속 생각하고, 머리에 새기자. 그리고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가장 친절하자. 아빠가 알려준 삶의 태도는, 부모가 된 지금도 여전히 내가 바르고 멋진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