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념에 익숙했던 입맛을 바꾸게 된 날
다이어트를 해야 되겠다고 마음가짐을 하는 순간부터 음식생각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된다. 업무시간에는 일에 집중하느라 그나마 나은데, 바쁜 시기가 지나 나른한 오후가 시작되면 '크림빵', '피자', '스파게티', '도넛' 주말에 뭐 먹으러 가지... 당장 먹을 수 있는 간편한 디저트가 머릿속을 맴돌기 시작한다. 이런 경험이 처음이라 누군가에게 말하기가 창피했다.
퇴근 후 저녁이 가장 힘들었다. 습관처럼 야식을 먹거나 늦은 저녁으로 포만감 있게 먹었던 생활습관이 쉽게 고쳐지지 않았다. 일찍 저녁을 먹으면 나을 거라 생각했지만, 집 앞 배송이 쉽게 되는 배달앱이 나를 괴롭혔고, SNS와 유튜브에서는 넘쳐나는 음식광고에서 벗어나지 못해 음식을 담고 빼길 반복했다.
다이어트 생각에서 벗어나 건강하게 먹자.
한 달 뒤에는 양념을 좀 빼볼까?
이제는 양을 조절해 볼까? 단백질과 탄수화물, 채소, 지방 양을 어떻게 먹으면 좋지?
간식을 좀 줄여볼까? 건강한 간식으로 대체할 수 있는 게 어떤 게 있을까?
앞으로 도시락을 싸 다녀볼까?
간장조림, 쌈장이나 다른 소스 없이는 밥 먹기 힘들어했었다. 나름 시골밥상, 건강한 식단이라고 생각하며 먹었지만, 체중이 줄어드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흰쌀밥을 현미밥으로 바꾸고, 양념이 된 반찬들을 조금씩 양을 줄여가며 양념에 익숙해진 나의 입 맛을 바꿔나갔다.
회사에서 나오는 점심은 흰 쌀+현미에서 현미 100%로 바꾸고, 국물을 빼고 건더기만 먹고, 양념이 센 반찬은 조금씩만 가져왔다. 한 달에 조금씩 변화를 주고, 아침과 저녁에만 싸 오던 도시락을 점심까지 싸와볼까로 바뀌는 데는 3 달이라는 시간이 걸렸다.
식재료에도 많은 관심이 생기기 시작했다. 한 번도 먹어보지 못했거나 양념에 가려져 몰랐던 채소 본연의 맛.
늘 초장에 찍어먹느라 브로콜리 맛을 처음 느꼈고, 셀러리의 아삭 거림, 당근의 달달함, 비트주스로만 먹어봤던 비트의 생김새도 처음보고, 블루베리 잼으로만 먹어봤던 과일 자체로 처음 입 안으로 느껴보았다.
늘 음식을 싱겁게 먹는 편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양념을 온전히 다 걷어낸 자연에 가까운 음식을 먹어보니 지금까지 몰랐던 세계로 진입한 기분이었다. 자연에 가까운 음식, 조미료가 덜 들어간 음식, 화려하게 꾸며진 것을 걷어내고 본연의 식재료를 느껴보는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직 동물성 단백질을 먹기는 하지만, 조금씩 콩, 두부류의 식물성 단백질의 %를 늘려나가고 있다.
단 맛에 중독되어 케이크와 디저트를 달고 살았던 예전과 달리 농부가 땅 갈아주고, 거름을 어떻게 줬는지에 달라지는 채소의 맛, 계절마다 달라지는 맛, 빨강, 주황, 노랑, 초록 다양한 컬러 자체로 화려함을 뽐내는 채소. 어렸을 땐, 전혀 몰랐던 건강하고 어른스러운 맛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