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끼 다르게 담는 정성
나를 위해 정성스레 도시락을 싸면, 나를 대접해 주는 기분이 든다. 사각형 안에 여러 종류의 야채와 과일, 끼니마다 단백질 삶은 달걀, 닭가슴살, 두부 세끼마다 다르게 담아낸다. 규칙적인 시간, 같은 도시락 사이즈, 뚜껑을 열고 먹을 때면 행복감을 느낀다. 내가 싼 건데, 나를 소중히 대하는 기분.
요리를 못해 어떠한 양념도 넣기 불편해 삶고, 데친 야채들로 싸기 시작한 도시락.
특별하게 들어가는 것도 없이 자연에 가까운 음식을 접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늘 양념으로 버무려져 야채는 본래의 맛을 본 적이 없다. 당근과 오이는 쌈장에 브로콜리는 초장에 찍어먹었다. 양배추 샐러드는 마요네즈 소스 없이 먹기 힘들었고, 시중에 판매되는 샐러드도 오리엔탈, 시저드레싱, 칠리소스 등 양념 없이 먹기 힘들었다.
그러던 내가 조금씩 양념을 걷어내고, 먹기 시작한 것이다.
더운 여름엔 상하지 않아야 되고, 대부분 실내에서 먹기 때문에 냄새가 나지 않아야 되다 보니 자연에 가까운 음식 위주로 담게 된다. 아침에 출근한 후 먹는 도시락을 시작으로 12시 점심시간이 되면, 우르르 한꺼번에 건물에 사람들이 빠진다. 씹는 시간이 많은 야채들 위주로 먹고 있으면 점심을 해결하고 온 사람이 물어온다.
귀찮지 않아요? 그냥 사 먹지... 언제까지 이렇게 드시는 거예요?
식비가 엄청 들겠어요. 한 달에 얼마나 지출돼요?
잦은 외식에 익숙해지다 보면 자연에 가까운 음식들이 맛없게 느껴지고, 귀찮아지기 시작한다. 돈을 지불하고, 사 먹는 음식이 편하지만 중독처럼 자극적인 맛에 미각이 무뎌졌었다. 위가 고장 나면서 식도도 염증으로 음식을 삼키기가 힘들어지기 시작하니 나 스스로를 병들게 하는구나 깨닫게 된 것이다.
음식을 먹을 때, 여유를 가진 적이 얼마나 되었나...
혼자 먹을 땐, 고개를 숙인 채 핸드폰을 보면서 입 안으로 넣느라 무엇이 들어오는지 몰랐고, 바쁠 땐 컴퓨터를 하면서 대충 먹은 시간에 반성한다.
식재료의 모양과 향, 혀 끝으로 음식을 넣을 때 촉감을 느끼고, 씹는 소리를 들으니 음식의 품질이 느껴진다. 비트가 원래 이런 맛이었나?
당근이 이렇게 달았었나?
브로콜리가 고소한 맛이었나?
복슬복슬 씹을 때마다 입천장에 닿는 느낌을 느끼며 먹다 보니 내 몸에 자연에 가까운 식재료를 넣고, 편해지는 기분을 느끼기 시작한다.
닭가슴살도 종류별로 먹어보고, 어떻게 먹을지, 어떤 단백질이 나에게 맞는지 조금씩 나의 식습관을 바꾸자는 다짐을 한다. 가공되지 않은 '자연식에 가까운 음식'을 먹는 습관을 갖도록 나를 위해 오늘도 도시락을 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