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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쪼 Dec 23. 2022

아이의 실수를 지적하면 안되는 이유

어쩌다 완벽주의자

# 어쩌다 완벽주의자


 타고난 기질이 섬세한 나는 어릴 때부터 실수나 잘못을 지적받는 것을 불편해했다. 설거지하다가 그릇이 미끄러지며 깨질듯한 소리가 나면 어머니는 여느 경상도 사람답게 한 말씀 하셨다.


"아이고, 다 부셔라 다 부셔"


'조심히 하라'는 별 뜻 없는 말이었겠지만 당시의 나는 부끄러운 감정이 들곤 했다. 어린 마음에 '다친 데는 없냐'나 '괜찮아. 천천히 하면 돼.' 같은 다정한 반응을 기대했던 듯하다.


 이런 감수성이 풍부한 아이가 커서 사회생활을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염려가 들었던 어머니는 딸을 더욱 강하게 키우고 싶어 하셨다.  그래서인지 자녀교육에 당근보다는 채찍질로 응하셨다. 어머니의 혀를 쯧쯧 차던 반응들이 종종 내 존재를 뒤흔드는 기분마저 들었다. 




어느날, 이제 막 중학생이 된 나는 교복을 세탁하는 방법을 몰라서 교복 치마에 세탁용 비누를 묻혀 빨래판 위를 빡빡 문지르고 있었다. 퇴근하자마자 그 모습을 본 어머니는 소리치셨다.


"그거 그렇게 하는 거 아니라고!"


 어머니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푹 쉬더니 안방으로 들어가셨다. 순간 굳어버린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얼른 교복을 물에 헹구고 마무리했던 기억이 난다.


 예전에는 그 장면만 생각해도 어린 내가 안쓰러운 마음이 들곤 했다. 하지만 지금은 제삼자의 입장에서 두 인물의 상황이 보인다. 이혼 후 홀로 일을 하면서 낭창한 남매의 생계와 교육을 책임져야 했던 어머니의 '무거운 어깨'와 서툴지만 억지로라도 집안일을 도우려 한 어린 나의 '작은 손'이 함께 보인다. 어찌 되었든 서로를 사랑했지만 미숙한 두 사람이 만들어낸 화학반응은 서로를 아프게 하곤 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종종 사소한 실수를 지적받을 때면 마음속에서 불편한 감정이 요동치는 것이 느껴졌다. 그 감정이 꽤나 불쾌해서 최대한 그런 상황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곤 했다. 그러다 보니 타인의 평가가 있을만한 일은 아예 하지 않거나 하게 된다면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지 않기 위해 완벽에 가깝게 하고 싶어 했다.


 좋은 기회가 찾아와도 '나는 할 수 없을 거야.'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이런저런 핑계로 완곡히 거절했다. 그러면 평가를 받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렇게 마음이 편하면 좋았겠지만 한편엔 그런 내가 맘에 들지 않았다. 명확한 단어로 표현하자면 '이런 내가 찌질하다.'라고 생각했다. 더불어 찌질 해 보이지 않으려고 괜찮은 '척', 당당한 '척'하는 것에 에너지를 소모하곤 했다.





# 아들아 실패해도 괜찮아


"엄마, 이것 봐!"


 소리가 들리는 곳을 향해 시선을 돌리자 거실 중앙에서 빨간색 자동차가 요리조리 움직이며 종횡무진하고 있었다. 소파 위에서 무선 조종기를 들고 손을 바쁘게 움직이던 아이는 자동차가 원하는 방향대로 움직이지 않아 답답한 모양이었다.


"엄마, 매트 위에 올라가고 싶은데 안 올라가."


"그래? 그럼 길을 만들어주는 건 어때?"


 아이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거실에 배치된 책꽂이로 달려갔다. 그곳에서 적당한 높이의 책들을 몇 권 고르더니 바닥과 매트사이에 길을 만들기 시작했다. 내 바람대로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내심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 아이는 책을 요리조리 나열하더니 그 위로 자동차를 살며시 올려놨다. 그러고는 다시 소파 위로 달려가 조종기를 집어 들고 설레는 표정으로 작동을 시작했다.


철퍼덕-


 무선 자동차가 책 위를 달리다가 매트 위로 닿을 때쯤 다시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아이는 잔뜩 실망한 표정으로 조종기를 내려놓았다.


"힝 안되잖아. 이거 안 해!!"


 끈기 있게 도전하기를 응원했지만 아이의 포기는 빨랐다. 다시 해보자며 다독였지만 이미 실망했는지 자동차를 들고 방으로 쏙 들어갔다. 잠시 고민하다 아이를 향해 크게 외쳤다.


"오늘은 작은 성공 했네! 다음에는 큰 성공 해보자!"


 책을 올려 길을 만들려는 시도에 '실패'라는 단어를 붙이고 싶지 않았다. 대신에 붙여줄 말이 필요했다. 얼마 전 유튜브에서 우연히 본 영상에서 힌트를 얻었다. 과거 '신사임당'이라는 재테크 채널을 운영하던 주언규 PD 님은 아이와 이야기할 때 '실패'라는 단어를 '작은 성공'으로 바꾸어서 말한다고 했다. 실패에 대한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 인 듯했다.


"응! 엄마! 방에서 다시 할 거야!"


 아이는 거실 매트 대신 안방 매트리스 위에서 조종해보는 것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그리고 꽤 오랫동안 여러 번 작은 성공을 해나갔다. 그날의 경험으로 '작은 성공'이라는 단어가 무척 맘에 들었다. '실패해도 괜찮아.'보다 더 큰 위로가 되는 듯했다. 모든 시도에 결과가 어떠하든지 '성공'이라는 단어를 붙여줄 수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아이뿐만 아니라 나의 삶에도 적용해보고 싶어졌다.  


오케이, 수많은 작은 성공들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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