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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염쪼 Jan 28. 2023

8. 엄마는 날 사랑했을까?


# 우리 부모님도 그러셨을까


대부분의 부모들은 아이를 가지는 순간부터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한다. 여행을 가서 맛있는 음식을 먹고, 멋진 풍경을 보면서 좋은 기분을 태아에게 전달하도록 노력한다. 책을 읽지 않던 사람도 육아도서를 구입하여 미리 부모 공부를 한다. 아이 태어나기 전부터 입을 옷이며, 덮을 이불, 행여나 입에 넣을지 모르는 모든 용품들까지 깨끗하게 세척해 놓는다.  뱃속 생명체의 존재를 아는 순간부터 '혹시나'하는 걱정은 기본값으로 설정되고, 그 염려는 아이를 지키고 사랑하겠다는 의지이다.


우리 부부도 예외는 아니었다.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인 남편도, 잠들기 전 태교 동화책을 건네면 버벅거리면서 성심성의껏 읽어주곤 했다. 나 또한 '내가 먹고, 보고, 읽고, 느끼는 것은 모두 아이와 함께 하고 있다'는 비장한(?) 마음가짐으로 임신기간을 보냈었다.  

  

출산을 하고 1년은 정신없이 시간이 지났다. 조리원에서는 모유량을 늘리는 것이 목표였고, 집으로 오는 순간부터는 100일의 기적을 향해 잠과의 싸움을 한다. 목 가누기, 뒤집기, 기기, 안기, 서기 등의 발달단계를 거칠 때마다 안도의 기쁨을 누린다. 그렇게 몇 년 동안을 무엇을 먹일지, 어떤 감각자극을 줄지, 어떻게 잘 재울지에 대해 고민하고 배운다.  


아마 대부분의 부모들이 그랬을 것이다. '부모'라는 위대한 업무를 하기엔 많이 미숙하고 서툴렀지만 나름의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우리가 그랬듯이.

그러던 어느 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처럼.. 우리 부모님도 그러셨을까?'






#그래도 사랑이야


약 1년 전쯤 친정어머니와 오빠를 집으로 초대한 적이 있었다. 엄마의 생신상을 차려드리고, 맛있게 드시는 모습을 보니 기뻤다. 한창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던 중 엄마가 이야기를 꺼내셨다. 최근에 육아예능인 '금쪽같은 내 새끼'를 보고 느끼는 점이 많다고 하셨다.


"나는 돈만 벌면 다 되는 줄 알았어. 그러면 내 할 일이 끝난 거라고 생각했지. "


어머니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친구들의 눈물만 봐도 울컥하는 나인데 엄마의 눈물에는 더 이상 반응을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하시려고 그러시나 싶어 차분하게 바라 볼뿐이었다.


"우리 때는 다 그랬어. 먹고살기 힘들어서 돈만 벌면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어. 그런데 내가 그 금쪽같은... 그 프로그램을 보니까 그게 다가 아니구나 싶더라."


엄마는 우리에게 사과를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밤낮없이 일 하는 동안 우리를 방치한 것을, 돈만 쫓느라 즐거운 추억을  미루기만 한 것을 후회한다고 하셨다.


학창 시절  엄마는 아침부터 저녁 늦게까지 일하셨다.  집에서 제일 큰 냄비에 김치찌개를 한 솥 끓여놓고 나가시면 이틀 만에 동이 났다. 쌀들은 때때로 쌀벌레를 건져가며 밥을 지어야 했다. 냉장고엔 오래 두고 먹으려고 잔뜩 만들어놓은 감자볶음에 곰팡이가 피어  다. 가스레인지 근처에는 오래도록 묵힌 기름덩어리들이 찌들어있었다.


하지만 그런 환경들이 우리를 바닥으로 끌어내리지 않았다.

음식이 없으면 없는 대로 간간히 요리를 해가며 끼니를 잘 때웠다. 그래도 배고픔이 덜 가시면 시리얼을 국수 먹듯이 후루룩 먹어치우는 재미 있었다. 제적인 어려움은 종종 우리를 추위에 떨게 하고, 친구들 앞에서 부끄러워지는 경험을 하게 했지만 우리는 그저 나름의 자유로움에 도취되어 있었다.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행복하지 않은 엄마를 지켜보는 일이었다. 인생이 고되고 힘든데 아무도 도와주질 않는다고 주변을 탓했다. 틈만 나면 자녀들의 못난 부분을 하나하나 꼬집어주었다.


너는 이게 문제야.

너는 그래서 안돼.

너는 그런 거 못해.


눈만 마주치면 한숨을 푹푹 쉬며 실망스러워했다. 어린 우리는 엄마의 고된 삶이 우리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학교에서 현장학습이나 수학여행 관련 가정통신문이 나오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손이 떨렸다. 가정통신문을 받아 든 엄마의 표정이 얼마나 어두워질까 두려워 거실 서랍장에 올려놓고 자는 척하기도 했다. 내가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나의 존재 자체가 부모님을 괴롭게 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런 엄마가 자신은 우리를 사랑해서 그랬다고 말하고 있었다. 과거의 나라면 믿지 않았을 것이다.

엄마는 우리보다 자기 자신이 먼저였다고,

우리를 바닥으로 끌어내린 건 가난이 아니라 잘못된 신념에서 비롯된 엄마의 자아였다고,

그렇게 따졌을지도 모르겠다.


"괜찮아요. 그때는 다 그랬지 뭐."


나는 진심과 다르게 말했다. 그동안의 경험상 지금은 이렇게 마무리하는 게 나은 선택이라는 판단이 들어서였다. 엄마는 조금씩 감정을 추스르는 듯했고, 곧이어 켜진 생일 촛불에 웃으며 박수를 치셨다.


나는 아직 엄마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있음을 느꼈다. 전혀 인연 없는 사람들이 우는 모습만 봐도 눈물이 핑 도는 나였다. 그런데 내 몸과 마음은 엄마로부터 상처받지 않기 위해 무장한 프로그램이 설치된 듯했다. 아마 그 프로그램은 엄마의 눈물을 보았을 때 '속지 말자. 언제 또 변할지 모른다.'라는 메시지를 발송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엄마의 말씀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지켜봐 온 엄마의 진심은 시시때때로 기분에 따라 상황에 따라 180도로 뒤바뀌곤 했다. 그것을 알고 있기에 나는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준비하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우리를 사랑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많이 서툴고 미숙해서 자신조차도 진심이 무엇인지 인식하지 못한 채 감정에 휘둘려 이리저리 배회하셨지만, 그래도 사랑이었다.


그렇다. 엄마는 우리를 사랑했다.

나의 미숙함이 아이에게 표출될 때 느끼는 죄책감을 엄마도 느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내가 첫 번째 유산을 했을 때, 침대에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 엄마의 눈시울이 붉어진 것도 사랑이었을 것이다. 행여나 시댁식구들에게 모진 소리를 듣지는 않는지 남편 몰래 속닥거리며 물어보던 것도 사랑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생일케이크를 앞에 두고 슬프게 웃으며 행복하다고 말하는 엄마의 모습도..

그래도 사랑이었을 것이다.



우리의 서툰 표현이 서로에게 상처가 되지 않게 상투적이고 감정 없는 대화를 나누는 순간에도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고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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