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얼마나 울던지, 계~속 우는데 느그 아빠는 돕지도 않고!"
흥분한 친정 엄마의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때는 내가 갓난아기 시절이었다. 시외버스를 타고 장거리 이동 중에 한참을 울어대는 바람에 어머니가 나를 안고 몇 시간 동안 서있었다는 에피소드였다. 좌석에 앉기만 하면 세상이 떠나가라 크게 울다 보니 다른 승객들에게 미안해서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서있으셨다고 한다. 힘드셨을 만도 했다. 심지어 남편이라는 사람(아버지)이 모르는 사람인 양 돕지도 않았다고 한다.
"너는 진짜 너~~ 무 예민해서 아주 그냥..."
나는 타고나기를 감각이 예민한 탓에 자동차로 한 시간 이상 이동하면 멀미를 하며 잠이 들곤 한다. 아기 때는 표현을 못하니 불편함에 그저 울기만 했던 모양이다. 유년기에도 불편한 감각 때문에 소리 내어 울거나 짜증을 내서 어머니에게 자주 혼났던 기억이 난다. 지금처럼 육아에 대한 정보가 널리 퍼진 것과 달리, 당시 어머니의 육아관에는 나처럼 민감한 성향의 아이들은 훈육을 해야 한다고 믿었던 모양이었다. 엄마의 일관성(?) 있는 질타 덕분에 어느 순간부터 나는 불편함을 잘 표현하지 않는 아이로 컸다.
"그랬구나. 힘들었겠네."
무미건조한 답만 나올 뿐이었다. 어머니의 입장이 이해는 되지만, '그래도 아이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 주지.'라는 섭섭함이 담긴 나름의 표현이었다.
"엄마도 나처럼 앵-하고 울어쩌?"
아이가 로봇을 한 손에 들고 다가와서 한마디 거들었다. '아기는 앵- 이렇게 울잖아. 나도 아기 때 그르케 울어쩌.' 하면서 양쪽 눈을 찡그리며 우는 아기의 표정을 따라 했다. 여간 사랑스러운 게 아니었다.
"(웃음) 응, 엄마도 너처럼 자동차를 타면 앵- 하고 울었데."
아이는 엄마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재미있는지 배를 잡고 깔깔깔 웃었다. 한여름의 파도소리처럼 청량한 아이의 웃음소리를 듣다 보니 문득 지금 이 순간이 무척 감사하게 느껴졌다.
그래, 나는 지금 엄마야.
# 너라는 행운
"이야 ~ 진짜 너랑 똑같다야."
오랜만에 만난 지인이 활짝 웃으며 인사를 건넨다. 몇 년 만에 본 우리 아이의 모습이 나와 쏙 빼닮았다며 신기하다는 반응이다. '카메라 어플로 얼굴을 바꾸는 효과를 주어도 바꾼 지 모르겠다'라고 표현을 하니 웃음이 나왔다.
내가 보아도 아이의 외모와 성향은 나를 많이 닮았다. 감수성이 풍부하고 섬세하면서 감각이 예민하다. 이해력이 빠른 편이며 자신의 의사를 언어로 잘 표현하는 편이다. 민감한 기질 덕분에 좋은 점도 많지만, 잠투정이 심하거나 배가 고프면 짜증을 많이 내었다. 그래서 아이와 내가 모두 컨디션이 좋지 않은 날에는 서로 큰소리를 내며 짜증을 내다가 잠들기 전에 화해하고 껴안고 자는 날이 많았다. 그 가운데에서 제일 황당해하는 건 무던한 기질의 남편이었지만, 감정이 풍부한 엄마와 아들 덕분에 생기는 이벤트들이 소소한 추억을 남겨주었다.
그래서인지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나에 대해 좀 더 잘 알게 되었다. 부모님이 나를 키우시면서 느꼈을 어려움도 간접적으로 체험하게 되었다. 어느 순간부터 그것이 나에게는 커다란 행운이라고 여겨졌다. 여러 육아책에서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들이 내면의 성장을 경험한다고 하였는데, 그 성장이 나에게도 찾아온 듯했다. 살면서 겪었던 심리적 어려움이 가난했던 이혼 가정의 자녀라는 환경 탓으로 떠넘길 수도 있을 뻔했지만, 아이를 키우면서 그게 다가 아니라는 사실을 경험했다. 그리고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수록, 아이가 가진 장점들이 더 많이 보였다. 정작 아이를 사랑하려면 부모인 나를 스스로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는 말이 사실로 느껴졌다.
어느 날 친정집에서 식사를 마친 후 낮잠을 못 자서 피곤한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지켜보던 친정엄마는 몇 번 아이를 달래 보다가 울음이 멈추지 않자 눈을 흘기며 불편한 내색을 비추셨다.
"으이그~ 즈그 엄마랑 똑같아 가지고~ 예민하네!"
어머니의 반응을 보자 순간적으로 어렸을 때 기억이 떠올랐다. 펑펑 울고 있을 때마다 어머니에게 들었던 가시 돋친 말들, 나를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듯한 좌절감. 불편한 감정이 느껴졌지만, 그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어머니와의 관계에 좋지 않을 거라는 판단이 생겼다. 잠시 마음을 추스르고 아이의 욕구가 무엇인지 관찰하였다. 아이가 진정되고 나서는 어머니에게 차분하게 이야기를 꺼냈다.
"나처럼 좀 예민해요. 근데, 그만큼 섬세하고 관찰력도 좋고 배려심도 있어요. 사회성도 좋고 이해력도 빨라요. 좋은 점도 많아요."
어린 시절 짜증, 피곤함, 불안 등 부정적인 감정을 표현할 때마다 어머니에게 들었던 가시 돋친 말들은 나에게 화살이 되곤 했다. 하지만 이제 나는 한 아이의 엄마이고 성인이다. 친정엄마의 가시가 우리 아이에게 찔리지 않도록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힘이 약했던 어린 나는 스스로의 민감함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였지만, 아이는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하고 싶었다. 그 찰나의 순간에 아이가 가진 장점에 대해 설명할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나와 아이가 가진 좋은 점들을 아주 여러 번 반복적으로 나에게 인식시킨 덕분이었다.
"그래! 예민한 애들이 원래 똑똑해!"
어머니의 태도전환(?)은 빨랐다. 어린 시절과 달리 이제는 친정어머니의 부정적인 말이든, 긍정적인 말이든 나에게 큰 영향을 주지 않았다. 나는 스스로를 지킬 수 있을 만큼 컸다.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하는 방법을 익히고 있다. 나와 쏙 빼닮은 아이가 나에게 찾아와 준 덕분이었다.
그렇다. 이 아이가 나에게 와준 것이 내 인생 최대의 행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