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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피카타임 Aug 10. 2022


달.

누군가 뜬금없이 뭐 좋아하느냐 물어보면 나도 뜬금없이 달 좋아한다고 답하곤 했었다.


매일같이 뜨겁게 불타올랐다가  깊디깊은 곳까지 얼어버리는, 300도를 넘나드는 극단적 온도차를 견디며 만들어낸 모습이 볼 때마다 신비롭다.

세상 모두가 이견없이 오직 예쁘다 하는 게 하나 있다면 달 뿐이지 않을까.


달은 시간의 모습 같다. 눈에 보이지 않는 시간이 가장 아름답고 차갑게 자신의 모습을 하늘에  드러내 보이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늘 달을 보면 나의 시간들에 대해 상념이 깊어진다.


때론 난 떠나는 방법을 몰라 머물러 있기도 한다.

그래서 애써 변명처럼 있어야 하는 이유들을 찾아 갖다 대고, 난 또 그 이유들에 당분간은 안위하며 머무름을 이어간다.

주객이 전도된 그 '당분간' 들에 속고 있는 동안 돌이킬 수 없는 시간만 결국 이만큼 쏟아버렸다.


떠나는 게 얼마나 큰 결단인지.

사람은 적응하는 존재이다. 이 적응력이 떠나야 할 때를 구분하지 못하게 나를 잡고는 뜨거운 물안에 서서히 죽어가는 줄 모르는 개구리처럼 내 삶과 시간을 익혀버리고 있진 않을까 두려운 마음이 든다.


달.

항상 변하고 싶지만 쉽사리 그러지 못하는 내가, 늘 변하지만 사실 언제나 같은 자리에 머물고 있는 널 보며.

너의 그러함으로

우린 늘 엣지있게 23.5도 적당히 삐뚤어져 살며,

바닷물의 상함과 넘침을 걱정할 필요 없이 그저 바라보며 커피나 마실수 있고,

년 사계절 정확한 땅의 일함과 쉼 속에 우리의 생명을 누리고 있음을.

늘 나 혼자 널 좋아하고 있다 생각했는데 , 네가 베풀어둔 많은 것들 속에 내가 살고 있었다.


친구 두 명과 모처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걔 둘이 합해 애가 여섯이다.

난 꽤 괜찮은 청중이다. 1번에서 6번까지 고열을 겪은 스토리는 한 시간짜리 였는데, 이젠 아이들이 다 학교를 들어가고는 이야기가 더 길어졌다. 1번부터 5번까지의 근황을 적절히 들어주다가 리액션이 바닥나버려 잠깐 달을 봤다.

보름을 앞둔 달의 모습을 보니 지난주 초쯤이 초승달이었을 텐데 이번에는 놓쳐서 아쉽다.


세월이 지나 우리의 대화가 다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도록 저 달은 또 저렇게 열심히 밸런스를 맞춰줄 것이다. 그때는 내 안부를 좀 더 많이 물어주렴. 그럼 난 세상에서 가장 말 많은 사람이 되어 너희를 괴롭힐지, 즐겁게 할지... 는 그때 가봐 알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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