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공원 벤치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데, 허리 굽으신 할머니 두 분이 다가와 '노래자랑'하는 곳이 어디냐 묻는다. 잠시 인터넷 검색을 했다. 그 덕에 오늘 공원에 어떤 행사를 하는지 알게 됐다.
가수 이찬원이 오는 날이었다. 할머니들은 이미 먼 길을 걸어오셔서 힘을 다 소진해 보였는데, 음악회를 하는 곳은 완전히 반대 방향이다.
할머니 두 분은 외마디 탄성과 찰진 욕을 몇 마디 하시더니 잠시 숨을 고르고 오던 방향으로 다시 걷기 시작했다.
일찍 들어가 김치찜을 해 먹으려는 계획을 접고 그에게 돗자리와 포도를 가지고 공원에 오라고 전화했다.
그리고 우리도 그날 잔디 광장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리허설을 보았고, 모여드는 사람들을 보았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이렇게 많았나. 우천 시에 대비해 나눠주는 우비를 먼저 받으려고 작은 다툼이 일어나기도 했다. 옹기종기 붙어 앉은자리에는 바람 따라 불쾌한 냄새와 풀 냄새가 번갈아 코를 스쳤다.
본 무대가 시작되었다. 다양한 축사와 지역 출신 가수들의 무대가 펼쳐졌고, 뒤로 갈수록 아는 가수들도 보였다. 시종일관 부메랑처럼 하늘을 누비는 드론이 나의 흥미를 끈다. 크레인처럼 무겁고 긴 카메라를 사람이 직접 빙빙 돌리는 광경도 이색적이다.
드디어 그들이 그토록이나 기다리던 이찬원의 순서가 되었다.
리허설까지 잘해놓고 짠 것처럼 중간에 음향 사고가 발생했다. 평소 위기 상황 대처에 능하다는 이찬원의 재치가 돋보였다.
그리고 두 곡 정도 더 불렀던 것 같다. 마지막 무대를 앞두고, 가수는 무반주로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떼창은 이런 것이구나. 평소 난 나름 옛 노래를 많이 안다고 자부했지만, 완전히 틀려버렸다. 도대체 몇 년대 노래들일까.
나는 하나 알지 못하는 트로트를 그 큰 잔디광장을 다 메운 사람들이 하나가 되어 불러대는 모습이 장관이다. 음향은 없었다. 이찬원이 선창을 하면 한 소절 끝에 여지없이 떼창으로 이어지기를 스무 곡쯤 한 것 같다. 그동안 가수는 무대 아래쪽 제법 뒤까지 내려와 팬들의 손을 잡아준다.
난 노년세대를 유심히 살펴본다. 그리고 그들의 젊은 시절을 상상해 본다. 테크노가 한참 유행할 무렵 전후의 노래가 나오면 내가 가사 없이도 노래를 따라 부를 수 있는 것처럼, 저 노래들이 유행할 무렵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모습도 테크노를 즐기던 나와 비슷했나 보다.
뭔가 가슴이 뭉클하다. 한참의 떼창 끝에 피날레로 진또배기 전주가 흘러나오자 그분들은 일제히 일어나서 춤을 추기 시작한다.
중간중간 흥을 이기지 못하고 일어나서 춤을 시도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번번이 뒷사람들의 항의에 흥을 다 발산하지 못하고 멈춰야 했다.
마지막은 너나 할 것 없이 비슷한 춤사위로 하나가 됐다.
검은 밤이 되어서 그 무리와 함께 공원을 빠져나왔다.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즐거워하는 모습. 그건 내게 즐거움을 줬는데, 생각지도 못한 아주 커다란 즐거움이었다.
내가 도무지 알 수 없었던 마음, 그분들 속에 감춰진 열정을 발견한 날이다. 노년의 삶에 저런 건 하나도 없을 거라고 그러니 나도 노년이 되면 큰일 났다고 내 맘대로 재단했던 마음을 사과드린다. 앞으로도 계속 그 열정으로 사시길 바란다. 불편한 다리와 허리지만 아랑곳없이 부지런히 다니시고, 그런 순간과 장소들 속에 자주 계시길 바란다.
여름 끝의 풍경이 완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