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여섯이 앉아 두 살배기 여자아기를 쳐다본다. 영락없는 탁구공이다. 핑퐁이 시작된 탁구공에 관중들의 시선이 놓칠세라 따라 움직이듯, 열두 개의 눈이 탁구공처럼 작고 이리저리 빠르게 옮겨 다니는 아기를 따라 움직인다.
어른 여섯은 주기적으로 서로에게,
"얘, 뭐라니?" "뭐라고? 뭐라고?" 못 알아들은 말이 공중에 사라질까 서로 묻기 바쁘다.
저 언어들은 어디 감추어져 있었던 걸까?
"엄마"가 늦어 모두가 은근히 걱정을 했다. 걱정을 했다기보단 모두가 소식을 물으며 기다렸다. 그랬던 아기가 두 돌을 꽉 채울 즈음이 되자 짧은 발음으로 못 하는 말이 없게 되었다. 한마디 할 때마다 어른들의 입이 딱 벌어진다. 그즈음에 아기가 한 말을 전하느라 가족들의 카톡이 더 바빠졌다.
아기는 제가 들은 말, 배운 말보다 훨씬 많은 말을 했다. 대체 저 말들을 어떻게 알고 쏟아 내는 건지 이 비밀같이 놀라운 일을 파헤치려 다들 노력하지만 매번, 그리고 점점 실패다. 그저 '신비'의 영역에 붙여둘 수밖에.
신비의 화룡점정이랄까. 아기는 그러고 보니 첫돌 때부터 그랬다. 오만 원짜리 두 장을 주면 꽉 움켜쥐고 방실방실 웃어댔다. 저한테는 그저 심심한 종이 조각처럼 느껴질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었는지, 누구에게도 빼앗길 마음이 없어 보인다. 기가 막히는 장면이다.
아기 엄마는 매번 여러 가지 말로 아기를 어르어 돈을 맡아둔다.
그렇게 가장 어린 조카 손녀의 두 번째 생일 모임이 마무리됐다. 형부를 볼 나이와 아무 상관이 없을 때도 형부들이 쏟아져 들어왔고, 조카를 볼 나이와 아무 상관이 없을 때도 조카들이 우르르 생기더니 손주를 볼 나이와 아무 상관이 없는데, 아주 오래전부터 할머니 소리를 들었다. 얼굴 한번 보지 못한 조카들도 있으니 그보다 더 나이 많은 손주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외할머니가 장장 20년에 걸쳐 임신과 출산을 했던 덕이다.
모임 내내 이모의 눈길이 나를 따른다. 눈빛으로 하는 말이 육성처럼 들린다. 나도 눈빛으로 대답한다.
'아직 안 늦었다. 너도 하나 낳아. 예쁘잖아.'
'늦었어요. 그리고 내 마음은 여전해요.'
오래전엔 그랬다. 사랑하는 그들에게 기쁨을 주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실망과 걱정을 안겼다는 것. 웃으며 최대한 가볍게 아기를 낳지 않겠다고 말하고 돌아온 모든 날, 그것을 견디기 힘들어 내 마음은 열흘 동안 몸살을 앓았다.
이젠 그러지 않는다. 한나절도 안 간다. 마음의 눈을 질끈 감아버릴 줄 알게 됐고, 이젠 내 선택에 삶이 깊은 뿌리를 내리게 되었기 때문이다.
2년 전 수능날에 태어난 수능 아기. 단풍잎을 손에 들고 불어대는 빵빵한 너의 볼과 입술이 사랑스럽다.
이모와 언니가 그 아기로 인해 행복이 가득한 모습이 내 마음을 꽉 채운다.
무엇 때문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존재'로 가득 채우며 사는 게 삶이며 사랑이라고 세상의 모든 아기들이 그저 '존재함으로' 오늘도 그것을 말해준다.
존재하니 감사한 날이다. 내가 존재하고, 사랑하는 사람이 존재하니 더할 나위가 없는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