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신문 6411의 목소리
최유나 | 가족돌봄청년 연구자
모든 것은 갑작스럽게 시작되었다. 노화로 인한 우울증인 줄 알았던 어머니의 상태는 교모세포종이라는 악성 뇌종양으로 인한 증상이었다. 정신과 병동에 잠시 입원하면 나아질 것이라는 믿음은 신경외과로 급히 전과되면서 산산조각이 났다. 교모세포종은 암 중에서도 악성도가 가장 높은 병이었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환자를 떠나보내야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그날을 시작으로 나는 영케어러(가족돌봄청년)로 약 2년을 보냈다. 나는 일본 유학을 중단하고 어머니 곁에서 모든 시간을 보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3년이 지난 2017년에 사회복지학 공부를 시작했다. 일찍 어머니를 보낸 경험이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과 힘들었던 간병의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기엔 억울하다는 마음이 공존했다. 30대 후반에 시작한 사회복지학 석사과정은 박사과정으로 이어졌고, 박사학위 논문의 주제는 영케어러로 선택했다. 나는 석사과정 중에도 ‘친정어머니를 돌보는 장녀’, ‘외손자녀를 돌보는 외조모’처럼 가족돌봄에 대해 꾸준한 관심을 가졌다. 그리고 마침내 영케어러에 도달한 것이었다. 그것은 어머니의 개두술이 끝나길 기다리며 수술실 앞에서 새벽을 맞이했던 나를 위로하는 작업이기도 했다.
논문 준비를 위해 ‘돌봄청년 커뮤니티 엔(N)인분’을 찾았다. 엔인분은 영케어러들을 위한 비영리 단체로, 2021년에 영케어러 6명의 자조모임으로 시작되었다. 이들은 2022년 2월에 ‘가족돌봄청년 지원대책 수립 방안’ 간담회에 참여했으며, 영케어러의 목소리를 사회에 알리고, 당사자 간의 연결망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었다. 현재는 약 80명의 영케어러 당사자와 지지자들이 함께하며 법인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
엔인분 활동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사업은 ‘영영케어’라는 멘토·멘티 프로그램이었다. 영영케어는 2023년에 시작된 사업으로, 나는 영영케어 2기에 멘토로 참여했다. 영영케어에서는 2년 동안 16명의 청년 멘토가 80여명의 멘티를 만났다. 놀랍게도 가족돌봄 책임을 짊어진 20대의 청년들은 멘토 교육을 받기 위해 두달간 매주 주말마다 꾸준히 모였다. 멘토 교육이 끝난 뒤에는 각자 배정받은 사회복지관으로 나가 총 4회에 걸친 멘토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나의 멘티는 정신질환을 앓는 아버지와 노쇠한 할머니를 돌보고 있는 대학생이었다. 그가 들려주는 깊은 이야기들을 들으면서 확신할 수 있었다. 어머니 간병으로 시작된 내 공부의 여정이 바른 방향을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각자의 멘토 활동이 끝난 뒤, 영영케어 멘토들은 지난 연말에 모두 모여 서로의 노력을 격려하고 축하했다. 그리고 엔인분에서 발행한 수료증을 들고 함께 기념사진을 찍었다. 멘토들의 경험은 더 이상 각자의 서사가 아니라 하나의 사회적 자산이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영케어러들을 위한 실천으로 이어졌다.
처음에는 모두 멘토가 되기 위해 만났지만, 그 안에서 우리는 서로가 서로의 멘토와 멘티가 되기도 했다. 다른 멘토들보다 나이가 많았던 나는 그들이 자신을 돌보며 살아갈 수 있게 정서적 지지자 역할을 하려 노력했다. 우울증을 앓는 어머니를 둔 멘토들 사이에서는 어머니 돌봄과 관련된 구체적인 정보나 돌봄 중의 마음 자세 등의 이야기들이 공유되었다.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이 잡초로 우거져 있고 해가 저물고 있다 하더라도, 바로 앞에서 걷고 있는 누군가의 뒷모습은 큰 위로가 된다. 그것은 그 자체로 희망이다. 영영케어의 활동은 바로 그런 것이었다. 각자 고립된 듯 보이지만 사실은 우리는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 그리고 내 곁에 많은 이가 존재한다는 안도감과 고마움 말이다.
연구를 위해 만났던 영케어러들은 누구보다 적극적인 사회구성원이었으며, 어려움을 헤쳐나갈 줄 아는 존재들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삶과 가족돌봄을 양립시키기 위한 여러 노력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을 이정표로 삼아, 다른 청년들은 그 어려움을 피해 가길 간절히 바랐다. 이제는 그들의 연대에 사회가 함께할 차례이다. 해가 저무는 길을 비춰줄 가로등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 그것은 사회의 당연한 의무이자 그 길을 걷고 있는 젊은 그들의 권리이기도 하다.
돌봄청년 커뮤니티 엔인분에서 주최한 ‘영영케어 2기’에 멘토로 참여한 영케어러들. 최유나(기둥 왼쪽)씨가 동료들과 함께 수료식을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엔인분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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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스럽게도 <한겨레신문 6411의 목소리>에 제가 하고 있는 연구와 관련하여 글을 싣게 되었습니다.
영케어러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많아지길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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