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치유자, 그 길 위에서

by 최유나


청년들은 내 앞에서 눈물을 쏟았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도 가슴이 시려, 한참 동안 두 눈을 꼭 감았다가 뜨기를 여러 번 했다. 그동안 나는 어머니를 돌보았던 시간이 누구보다도 고통스러웠다고 믿어왔다. 그러나 그들의 눈물을 보면서 그것이 얼마나 오만한 생각이었는지 깨달았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마음이 늘 저렸다.


나는 서른여덟 살에 사회복지학 석사과정을 시작했다. 인류학 석사학위가 이미 있었지만 마치 무엇에 홀린 듯 사회복지학 공부를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어머니 간병에 몇 년간 매달렸던 나의 시간과 노력, 그리고 그 보람도 없이 결국 어머니와 헤어져야 했던 상황이 뭔가 억울했기 때문이다. 나와 비슷한 상황의 누군가에게 내 경험이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면 그래도 덜 속상할 것 같았다. 그렇게 시작된 석사과정은 박사과정으로 이어졌고, 이윽고 박사과정의 마지막 관문인 학위논문을 준비해야 하는 순간이 되었다.


학위논문 주제를 선택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사회복지학 공부는 나의 경험에서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케어러(Young carer)’라고도 불리는 ‘가족돌봄청년’에 대해 연구하기로 결정했다. 단어에서도 알 수 있듯이, ‘가족돌봄청년’은 아픈 부모나 형제를 돌보고 경제활동과 가사 돌봄까지 떠맡은 10대부터 30대 초반의 청년들을 말한다. 이들은 그 와중에 학업과 장래에 대한 준비까지 해야 했다. 그들은 우리 사회에 존재했지만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이토록 풍요로운 이 시대에, 간병과 생계를 짊어진 젊은이들이 우리 사회에 있으리라고는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설령 상상했다 하더라도 사회는 그들에게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저 그들의 불운을 탓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논문을 위해서 1년 동안 스물다섯 명의 가족돌봄청년들을 만났다. 보통은 두 시간, 때로는 더 오랜 시간 동안 그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나 역시 어머니 돌봄을 했기 때문에 그들의 삶을 어느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실제로 마주한 그들의 일상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투쟁과 수용의 연속이었다. 어린 청년들은 인간 존재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 앞에 서 있었다. 안쓰럽고 소중한 가족의 장수(長壽)를 바라면서도, 돌봄과 생존이라는 문제 때문에 가족이 오래 살기를 당연하고 편안하게 빌지만은 못했다. 그들의 가족은 극도의 우울증이나 알코올 의존증, 또는 뇌출혈로 인해 청년들 없이는 하루도 제대로 된 일상을 보내지 못했다. 청년들은 가족과 외부를 잇는 유일한 존재였다. 인터뷰 동안 그들은 눈물을 흘렸고, 절망하기도 했으며 때론 자신들에게 무신경한 사회와 어른들을 향한 분노를 쏟아내기도 했다.


그렇게 모인 청년들의 이야기는 정리되어 내 논문의 소중한 자료가 되었다. 그 덕분에 나는 무사히 박사학위를 받게 되었다. 안쓰럽고도 기특한 청년들은 자신들의 삶을 연구해 줘서 고맙다는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논문 작업은 엄마의 개두술이 끝나길 기다리며 수술실 앞에서 새벽을 맞이했던 10여 년 전의 나를 위로하는 것이기도 했다.


심리학자 칼 융(Carl Jung)은 ‘상처받은 치유자(wounded healer)’라는 말을 했다. 이는 자신이 경험했던 상처를 통해 타인을 치유해 줄 수 있게 된 사람을 뜻한다. 논문을 마무리하던 어느 날, 나 자신이 ‘상처받은 치유자’가 되었음을 깨달았다. 그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마음이 한 뼘 넘게 성장했던 것이다. 청년들과의 만남은 단순히 학위논문 자료를 얻기 위함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그리고 공부하는 자로서 깨달음을 얻어가는 과정이기도 했다. 그리고 내가 만난 가족돌봄청년들도 상처받은 치유자였다. 그들은 자신의 돌봄 경험을 통해, 10대 청소년 중에서도 가족돌봄을 하는 이가 분명히 있으리라는 성찰에 이르렀다. 그리고 자신의 괴로웠던 삶을 이정표로 삼아, 청소년들은 고단한 삶을 부디 피해 가길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그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빛났으며, 누구보다 멋진 사회인이었다.


논문 때문에 잠시 쉬는 것조차 사치처럼 느껴지던 어느 봄날, 나는 일기장에 이런 말을 적었다.




그간 진행했던 인터뷰의 쿼테이션을 읽으면 마음이 울컥한다. 그 울컥함을 학문적인 문장으로 잘 다듬되, 경험의 주체들이 문장 안에 생생히 살아있게끔 표현하려 노력 중이다. 나의 이번 봄은 이런 노력으로 점철되어 있다. 올해 꽃구경은 동네 슈퍼를 오가며 봤던 집 앞의 벚나무 한 그루가 전부이지만, 왠지 가슴에는 연분홍 벚꽃들이 만개한 느낌이다. 학문을 한다는 것은 환희로 눈부신 빛나는 고통을 맛보는 과정인 것 같다.

학생에서 연구자로 거듭나는 마무리이자 시작의 길목에서, 나는 자신의 이야기를 기꺼이 나눠준 스물다섯 명의 청년들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그들은 나의 동료이자 타인의 고단함을 걱정하는 상처받은 치유자였으며, 우리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시민이었다.




나의 경험과 공부가, 다른 이들에게 작은 도움이 되고 세상을 조금이라도 따뜻하게 만드는 데 보탬이 되길 바란다. 지난봄, 내 마음을 분홍빛으로 물들였던 학문에 대한 경외심을 이제는 일상과 공부 속에서 소중히 간직하며 살아갈 차례가 되었다. 감사하게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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