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조물의 자리

by 최유나

큰아버지가 많이 편찮으시다. 연세도 많으시고, 이런저런 병을 앓은 지도 벌써 2, 3년은 된 것 같다. 위독하시다는 연락을 받고 연말연시에 매진뿐인 SRT 시간표 사이에서 큰댁으로 가는 열차표를 겨우 구해 아버지와 함께 다녀왔다.

아버지와 나를 마중 나온 사촌언니는 큰아버지의 모습을 보면 아마 놀랄 거라고 우리에게 이야기했다. 큰아버지는 병원에 계셨는데, 산소호흡기에 의지한 채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셨다. 아버지는 형님이 하릴없이 누워있는 모습을 보고 많이 놀란 듯했지만, 나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위독한 환자가 어떤 모습인지, 간병을 했던 사람으로서 나는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큰아버지의 손을 잡고 “유나예요.” 하고 말씀드리자, 큰아버지는 의식이 또렷하지 않은 와중에도 내 손을 꼭 잡으셨다. 그 손의 온기 앞에서 나는 말없이 기도했다. 이 순간에도 하느님께서 이 손을 놓지 않으시길.

큰아버지를 뵙고 온 지 며칠 뒤, 환자의 경과가 궁금해 사촌언니에게 전화를 했다. 상황은 우리가 보았던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통화를 마치려던 즈음, 언니가 예상하지 못한 말을 건넸다. 이번 일을 겪으며 내가 존경스러워졌다는 말이었다.

언니는 형제가 여럿인데도 간병이 이렇게 버거운데, 외동인 너는 혼자서, 서른을 갓 넘긴 나이에 그 상황을 어떻게 감당했느냐고 물었다. 언니의 목소리에는 자신의 아버지를 향한 안쓰러움과 안타까움, 그리고 밤잠을 못 이룬 피로가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결코 해피엔딩으로 끝나지 않을 것을 알기 때문에 이 상황이 조금은 유지되길 바라면서도, 동시에 몸과 마음의 견딜 수 없는 고달픔 때문에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언니의 마음이 전해졌다.

엄마가 서서히 죽음을 향해 가는 모든 순간을 지켜본 뒤, 나는 인간의 한계를 분명히 알게 되었다. 인간은 피조물이며, 피조물은 반드시 한계를 지닌다. 내 생의 시작과 끝이 내 손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은 생각보다 훨씬 고통스러웠다. 그러나 그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기쁨이자 안정이 되었다.

엄마도 그랬고, 큰아버지도 그러하며, 언젠가는 나 역시 그 자리에 서게 될 것이다. 너무나 슬픈 진실이지만, 두 눈을 뜨고 나의 한계를 직면해야 한다. 그것을 통해 세상을 뛰어넘는 영원함을 어렴풋이 깨닫을 수 있다.

나는 내가 이 큰 세상 안에서 그저 작은 한 조각임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싶다. 내 힘으로는 감히 바꿀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끝은 ‘끝’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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