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을 건너는 동안

by 최유나

예비자 시절, 나는 전례력에 온 마음을 빼앗겼다. 미사는 같은 순서로 진행되었지만, 전례력에 따라 전혀 다른 시간이 되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신부님의 제의색이었다. 초록색이었던 제의는 보라색을 거쳐 잠깐 분홍색이 되었다가, 흰색을 지나 다시 초록색으로 변했다. 그리고 제대 앞 꽃꽂이도 분위기가 바뀌었다. 신부님의 제의가 초록색이거나 흰색일 때는 화사하던 꽃이, 보라색일 때는 꽃이라기보다 ‘조형물’에 가까워졌다. 대영광송이나 신부님이 미사 중 읊으시는 기도문들도 때에 따라서 조금씩 바뀌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나면 신부님의 제의는 다시 초록색이 되었다.

신부님의 제의와 제대 앞 꽃, 그리고 기도문이 변하는 이유가 너무 궁금했던 나는 인터넷을 뒤져 전례력에 대한 자료들을 찾아냈다. 그리고 “바오로딸 홈페이지”의 “질문 게시판”에도 수시로 글을 올려, 수녀님들의 애정 가득한 답글을 받기도 했다. 성당의 시간은 전례력을 기준으로 모든 것이 움직이고 있었다. 지난주와 비슷하지만 비슷하지 않은 성당의 1년은, 20대 후반의 나에게 그 자체로 너무나 아름다웠다. 전례력은 그 자체로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다.

전례력에 대해 알게 된 사실을 엄마께 말씀드리자, 어머니는 자신이 한창 열심히 성당을 다니던 20대 시절, 사순시기를 가장 좋아했었노라 말씀하셨다. 그러면서 ‘십자가의 길’ 기도와 사순시기 특유의 애수 어린 성가들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셨다.

한동안 성당을 멀리했다가 내가 예비자 교리를 시작하면서 다시 성당에 나가게 된 엄마에게, 곧 다가오는 ‘재의 수요일’ 예식에 함께 가자고 권했다. 엄마는 기뻐했고, 재의 수요일에 우리는 나란히 이마에 재를 받았다. 예식이 끝난 후, 엄마는 내가 듣던 예비자 교리에도 함께 참석해서 신부님이 알려주시는 재의 수요일에 대한 설명을 진지하게 들었다.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기다리는 길, 예식이 끝나고 몇 시간이나 흘렀음에도 엄마 이마에 그려진 십자가는 유독 크고 진했다. 나는 엄마 이마의 재를 살살 털어주었다.

사순시기가 다가오면 주변 신자들은 이번 사순에 무엇을 참고 견딜지 이야기하곤 했다. 누구는 커피를 줄이겠다 했고, 누구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겠다고도 했다. 세례를 갓 받았을 때 나도 그런 다짐들을 했다. 그리고 그 다짐이나 목표를 지키지 못했을 때는 나 자신을 강하게 책망했다. 다른 것도 아닌, ‘하느님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는 사실이 너무나 한심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해,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완벽하게 인내하고 절제하면서 보내는 사순도 훌륭하지만, 나의 부족함을 그대로 느끼면서 보내는 사순도 의미있지 않을까 하는. 그해 사순시기에도 나는 무언가를 절제하기로 마음먹었지만 그 목표에는 여지없이 도달하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자책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의 한계를 받아들이고 그것에 감사해했다. 그것은 내가 하느님의 숨으로 빚어진 피조물이라는 증거였고, 그분 품 안에 머물러야만 하는 이유였다.

한동안은 잠을 줄여서라도 빼곡한 일정과 목표를 달성하며 살아야 한다고 믿었다. 노력하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으며, 자신을 채근할수록 목표에 다다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병과 죽음 앞에서 아무리 노력하고 채근해도 넘을 수 없는 시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존재만으로도 충분하지만 한편으로는 기특하고도 안타까운 것. 그것이 피조물인 나 자신이었다.

예비자 시절의 내가 전례력의 신비에 그토록 마음을 빼앗긴 것은 그것이 인생과 닮아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전례력은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지 않고 매 순간을 묵상하며 지금을 살게 했다. 습관처럼 사는 것이 아닌, 현재의 의미를 되새기는 삶. 그것은 내가 꿈꾸는 삶의 모습이었다.

배고픔과 졸음, 그리고 때때로 무너지는 체력은 나를 돌봐야 할 신호임을 깨닫는다. 보라색을 지나 다시 초록색으로 돌아오는 제의처럼, 나 또한 지치고 다시 힘을 내길 반복하며 하느님 안에서 매 순간 흐르고 있다. 사순을 건너는 동안 하느님의 시간은 흘러가고, 나는 그 안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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