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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나 Nov 29. 2022

브런치 메인화면에 제 브런치북이 등장했습니다.

나의 브런치 시작 이야기

저는 시대의 흐름이나 새로운 문물에는 조금 느린 편입니다. 페이스북이든 인스타그램이든, 스마트폰이든, 한 번의 유행이 거대하게 흘러간 후에야 그제서 발을 슬쩍 담가보는 편입니다. 그래서인지 '브런치'라는 플랫폼과 '브런치 작가'라는 단어를 몇 번 들은 적은 있으나 '그런 게 있나 보다' 정도가 제 감흥의 전부였어요. 왜냐하면 위에 말한 제 성향도 그 이유 중 하나였고, 단상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할 수 있는 방법은 이미 차고 넘쳤기 때문이었죠.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을 수필의 아이디어 노트로서 잘 활용하고 있었고, 그것도 거의 지인들에게만 내용을 공개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이상의 플랫폼은 필요하다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저는 '브런치 작가'라는 말도 사실 묘하게 거슬렸어요. 물론 심사에 통과한 사람만이 자신의 브런치 페이지를 가질 수 있으니, 그 문을 통과한 사람들 입장에서는 '브런치 작가'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싶을 법도 합니다. 그러나 여러 번의 심사를 거쳐 등단을 하고, 일정의 자격조건 충족과 수필계 어른들의 추천이 있어야만 한국문인협회에 가입 가능한 경험을 했던 저로서는 '브런치 작가라는 게 앞뒤 맥락이 맞는 말인 거야?'라는 생각이 영 머리에서 떠나지는 않았어요. 내 글을 게시할 수 있는 웹페이지가 생겼다는 것만으로 '작가'라니요..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作家라는 말이 얼마나 무서운 말인지를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도 수필을 쓰셨는데 등단 후 사람들과의 만남이 많아지자 명함을 마련하셨습니다. 평상시 가깝게 지냈던 서예가로부터 글씨까지 받아 완성된 명함은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제가 보기도 참 운치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문인들과의 모임이 생기자 어머니는 새 명함을 선보일 생각에 약간은 들뜬 얼굴로 외출하셨어요. 그러나 귀가한 어머니의 얼굴은 약간 의기소침한 표정이었죠. 명함의 '수필가'라는 표현이 문제였던 것입니다. 수필계의 원로격 선생님께 명함을 드렸더니, '~家라는 표현은 어떤 한 분야에서 一家를 이룬 사람을 지칭하는 말이므로 스스로를 '수필가'라고 표현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셨다는 겁니다. 따라서 명함에는 '수필가'라는 표현 대신에 '~수필지 등단' 혹은 '한국문인협회 회원' 정도로 적는 것이 옳다는 말에 어머니는 적잖은 충격을 받으셨고, 그 명함은 서랍 깊숙이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때의 에피소드는 저의 기억에도 강렬하게 남아있게 되었죠. 그 후 어머니는 '수필가'라는 말이 빠진 새로운 명함을 만드셨고요.


이처럼 이런저런 이유로 브런치에 관심이 없었던 제가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건 주변의 분위기 때문이었습니다. 종종 뵙는 수필계 선생님들은 '최 선생은 브런치를 하나?'라는 질문을 여러 번 하셨고 지도교수님은 자신과 가까운 분들이 운영하는 브런치의 좋은 글들을 가끔 제게 권하셨습니다. 글을 읽고 쓰는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생각보다 브런치 활동을 많이 하고 계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럼, 나도 브런치를 해볼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글 쓰는 것이 낯설지는 않은 저였지만 그래도 누군가가 내 글을 평가한다는 건 생각보다 떨리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만 하루 만에 브런치 승인 메일을 받았고, 저는 그 다음 날부터 하루나 이틀에 한두 편씩 그동안 썼던 글을 올렸습니다.


사실 속마음을 말하면 제 글이 금방 브런치 메인에 등장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있었어요. 어쨌든 10년 넘게 여러 수필전문지에서 작품 청탁을 받아왔고 꾸준히 활동을 했으니까요. 또 브런치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어서 메인화면에 자신의 글이 소개되었다는 글도 꽤 봤거든요.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뭐, 브런치 운영진의 방향과 내 글의 색깔이 달라서 그런가 보다, 정도로만 생각하고 그 다음부터는 그 마음을 접었어요. 어찌됐든 썼던 글을 다시 손보고 가지런히 정리해두는 것은 개인 단행본을 낼 때도 도움이 되는 일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몇 달 동안은 지인들이 제 브런치에 다녀가셨고, 감사하게도 브런치에서 활동하시는 분들도 어찌 제 글을 찾으셨는지 간간히 보러 오시고 댓글도 달아주셨어요. 그래서 많으면 하루에 10명, 적으면 2~3명 정도 제 브런치를 방문하셨는데..... 방문하셨는데.....


지난 목요일이었나요. 그날도 별생각 없이 몇 명이나 오셨는지 브런치의 '통계'를 확인했습니다. 그런데 200명이 넘는 숫자더라고요. 처음에는 에러인 줄 알았어요. 그래서 조금 후에 다시 확인을 했는데 그때는 방문객 수가 더 올라가 있었습니다. 그렇게 두어 번 더 확인을 하고 나서야, 내 글이 어딘가에 게시되었다는 생각을 했고, 브런치 메인 화면에 접속해봤습니다. 몇 번 새로고침을 하자, 제 브런치 북이 보이더라고요. 정말 깜짝 놀랐습니다. 그리고 백 단위의 방문객은 며칠 동안 꾸준히 이어지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 개인 단행본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물론 수필전문지에는 꾸준히 글을 내고 있습니다만, 솔직히 누가 얼마나 제 글을 읽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어요. 내 글이 어떤 잡지에 실렸으니 누군가는 읽었겠지, 정도가 그 소감의 전부입니다. 그래서인지 내 글을 읽은 독자가 구체적으로 몇 명이라고 알려주는 그 숫자는 정말 강렬하더군요.


하루 정도만 메인에 노출되다가 말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제 브런치 북은 벌써 만 6일째 메인에 등장하고 있습니다. 어떤 메커니즘으로 제 브런치가 이렇게 여러 날 동안 메인에 나타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그리고 이것 자체로서 제 글의 완성도를 평가할 수 있는 건 절대적으로 아니라 생각합니다만, 이번 경험은 내가 글 쓰는 사람이며, 앞으로도 글을 써야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생각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앞서 적었듯이 저희 어머니는 수필을 쓰셨고 제가 수필을 쓰게 된 것에는 어머니의 영향이 절대적입니다. 예술적인 재능이 정말 뛰어나셨던 어머니에 비하면 저는 한참 부족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내가 그야말로 작가로서 글을 쓸만한 사람인지 고민을 한 적도 많고, 별로 잘 쓰는 거 같지도 않은 글인데 수필 발표에 계속 노력과 시간을 기울여야 하는지도 고민했습니다. 원로 선생님들이나 편집자 선생님들이 제 작품에 칭찬을 해주신 적도 있지만, 인사로 하시는 말씀이라고 생각을 해 왔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제 글을 인정받으니 정말 앞으로 부지런히 글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참 감사한 일입니다.


사는 건 예상치 못한 기쁨과, 예상치 못한 슬픔이 하나하나 엮이는 과정인 것 같습니다. 제 글을 읽은 분들은 아시겠지만, 저는 예상치 못한 큰 어려움들을 겪어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렇게 무사히, 잘, 건강하게 살아내고 있는 것은 예상치 못했던 행복들이 저를 지탱해주었기 때문이겠죠. 사람은 부족한 존재인지라 행복했거나 기뻤던 일보다는 슬펐고 어려운 일을 더 잘 기억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분명 어머니가 제 곁을 떠나고 보낸 8년의 시간 동안에도 기쁜 일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번의 일로 제 삶의 예상치 못한 기쁨을 하나 더할 수 있게 되어 참 행복합니다.


'~家'는 자신의 분야에서 一家를 이룬 자에게 붙이는 말이라는 어른의 말씀이 새삼 무섭게 다가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사실 자랑할 일도 아니고 자랑해서도 안될 일입니다. 그저 내가 하고 싶어서 시작한 일이고 그로 인해 어찌 되었든 기쁨을 느끼니까 지속하고 있는 것이겠죠. 그러니까 글을 써서 행복한 사람은 바로 자기 자신인 겁니다. 그 기쁨을 이미 느끼고 있는데 굳이 자기가 글을 쓴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들에게 은근히 자랑하거나 으스댈 건 아닙니다. 이는 공부를 업으로 삼으려는 저의 다른 정체성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이라 생각합니다.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박사과정인데 학위 그 자체가 권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지요.


제 평생 一家를 이룰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중년이긴 합니다만, 예전과 달라서 40대는 아직 젊은 축에 속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80대, 90대까지 평생을 한 분야에서 자신의 능력을 갈고닦는 선생님들 앞에서 저는 그저 어린아이일 뿐입니다. 다만 이번의 일이 제가 걸어가고자 하는 모든 분야에서 좋은 자극과 계기가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제 글을 읽어주시고 제 글을 라이킷, 댓글, 구독 등등의 다양한 방법으로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읽는 사람에게 따뜻한 위로가 되는 글을 앞으로도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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