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가는 길에 버스 창 너머로 보였던, 광화문 우체국에 붙은 "EMS 일본 및 미국행 김치 접수" 현수막.
우리집 사람들은 김치를 그리 많이 먹지는 않는데도 나 일본에 있을 때 부모님은 그릏게 김치를 열심히 보내셨고 나도 열심히 받아서 먹었다. 식당용 고추장을 담아서 파는 엄청 큰 알루미늄 캔을 아빠가 몇 개 구해와서는 거기다 김치 넣고 스티로폼으로 다시 포장하고, 테이프로 칭칭 감아서 종이박스에 넣어서.
방학 때 한국에 들어올 때면, 그 캔 속에다가 엄마가 좋아했던, 일본 슈퍼에서 파는 슈크림 빵을 가득 담아서 들고 왔었다. 그래야 부모님이 김치를 다시 일본으로 보낼 때 그 큰 캔을 사용할 수 있으니까.
나중에는 김치를 부칠 땐 반드시 월요일에 우체국에서 접수해야 한다는 팁까지 알게 됐다. 일본 우체국은 우리나라보다 전반적인 업무가 상당히 느려서 수, 목요일에 한국에서 김치를 부치면, 잘못하면 주말을 지나고 김치를 받는 불상사가. 그러면 김치가 발효되서 포장이 빵빵해져서 도착한다.
저 현수막 하나에 어떻게 해서든 일본생활에 익숙해지려고 노력했던 10년 전 내 모습과, 딸내미가 안전하고 건강하게 일본에서 공부를 이어가도록 김치에 사랑을 담아 보낸 부모님의 마음이 다시 떠올라 슬픔도 아닌, 그렇다고 기쁨도 아닌, 뭔지 모를 가슴 아픔과 뭉클함이. 별루 뛰어나지도 않은 딸내미가 뭐가 그리 소중하다고.
전에 썼던 '교모세포종 환자의 보호자 경험에 대한 자문화기술지' 논문에는 살짝 등장하고, 수필로는 쓰지 않았던 에피소드인데, 엄마 투병 중, 우리집 냉장고에는 예쁘게 손질되어 얼린 홍시가 가득 들어있었다. 내가 일본에 있을 때, 딸내미가 한국에 오거든 먹이겠다는 부모님의 마음.
나는 그 홍시를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꽤 여러 해 흐른 뒤에야 '작정'하고 겨우 버릴 수 있었다. 냉장고는 '산 사람이 먹을 음식이 있어야 하는 곳'이지, 그리움과 추억을 담는 곳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마음을 먹기까지 몇 년이 걸린 셈. 사실 버리는 그 순간까지도 버려지는 홍시들이 아까웠었다. 엄마의 흔적들이 점차 사라지는 것 같아서.
이상하게 유학시절을 생각하면 마음이 묘하게 아린다. 길지도 않았고, 제대로 학위를 마치고 온 유학도 아니었는데. 참 이상한 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