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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나 Oct 04. 2024

우리집 책장에는 수녀님의 시집이 늘 있었습니다

이해인 수녀님께

문학을 사랑했던 어머니 덕분에 우리집에는 늘 책이 많았습니다. 한글을 갓 깨쳤던 어린 저는 책꽂이의 책 제목을 더듬더듬 읽으면서 노는 것을 좋아했어요. 부모님을 책꽂이 앞에 앉혀두고 자랑하듯 책들의 제목을 읽어나가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신기한 글자를 찾아냈습니다. 사실 어린 제 눈엔 글자라기보다 그림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어머니를 책장 앞으로 끌고 와서 이 글자는 뭐라고 읽는지 여쭈었습니다.

“유나야, 이거는 한자이고 혼(魂)이라고 읽어.”

“내 혼에 불을 놓아?”

저는 어머니가 알려주신 글자를 넣어서 앞뒤의 한글을 붙여서 읽어봤어요. 네 살이나 되었을까 싶은 어린아이에게 그 책의 제목은 이해하기 어려운 말이었습니다.


   한글이 더 눈에 들어오게 되면서 저는 책 제목뿐 아니라 작은 글씨로 적혀있는 저자의 이름도 읽기 시작했습니다. ‘내 혼에 불을 놓아’라는 책에는 제목 아래쪽에 ‘이해인’이라는 이름이 적혀있었어요. 그러고 보니 그 책과 나란히 있는 책에는 모두 ‘이해인’이라는 이름이 적혀있었습니다.

   어머니가 어린 저에게 띄엄띄엄해주셨던 이야기들을 모아보면 그 시집들은 다 이해인이라는 수녀님이 지으신 책들이었고, 엄마는 그 시집들을 참 좋아하는 것 같았습니다. 어머니는 학창 시절 수도자의 꿈을 가졌던 적이 있다 했고, 엄마가 다니던 성당의 수녀님들도 어머니를 참 예뻐하셨다고 했어요. 그런 면에서 어머니는 수녀님의 글을 당연히 좋아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마 결혼하기 전부터 수녀님의 시집들을 모으기 시작했던 것 같았습니다.

   그때부터 이해인 수녀님은 우리집 책장에서 늘 뵐 수 있는, 우리집에서 나와 함께 살고 계신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중고등학생이 되어 학교에서 수녀님의 시를 배우거나 접할 때 요즘 말을 빌리자면, ‘내적 친밀감’을 느꼈고 수녀님의 시가 참 반가웠습니다.

 

   문학에 대한 열망을 끝까지 지니셨던 어머니는 마침내 수필가로 등단을 하셨고, 참으로 기쁘고 행복하게 수필가의 삶을 살았습니다. 제 어머니여서가 아니라, 어머니는 글을 참 잘 쓰셨어요. 수필계의 상도 여럿 받으셨습니다. 저는 노년을 바라보는 어머니가 앞으로 점점 더 좋은 글을 쓸 것 같아 정말 기대했습니다. 어머니의 노년은 수필과 함께 찬란히 빛날 것만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저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예순 살을 갓 넘기고 나서 큰 병을 얻으셨어요. 교모세포종이라고 하는, 이름도 낯선 악성 뇌종양이었습니다. 1년 반의 투병 끝에 어머니를 보내고 저는 ‘봉식이의 딸기’라는 어머니의 유고집 출판 준비를 했습니다. 그것은 제가 어머니를 기릴 수 있는 가장 값진 일이기도 했습니다.

  유고집이 나오고 나서, 출판사 편집자 선생님은 문인들의 주소가 적혀있는 명단을 주셨습니다. 어머니의 유고집을 그분들께 보내면 좋겠다고 권하시면서요. 저는 그 명단을 쭉 훑어보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수녀님의 성함과 만나게 되었습니다. 어린 날 책장에서 보았던 수녀님의 성함이 ‘부산 성 베네딕토 수녀원’이라는 주소와 함께 적혀있었습니다.


   그리고 곧 수녀님께 짧은 편지와 어머니의 유고집을 보내드렸습니다. 천주교 신자인지라 교회의 어른인 수녀님께 제 인사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약 한 달 후, 집에 뜻밖의 우편물이 도착했습니다. 바로 수녀님이 보내신 것이었습니다.


유나 님. 보내주신 어머님의 수필집은 감사히 받았습니다. 애틋한 슬픔이 밀려오네요. 어머니를 생각해서 멀리 있는 나에게도 책을 보내준 그 마음이 아름답고 애달픕니다. 아직 다는 읽지 못했기에 옆에 두고 있는데 언제 기회 되면 한번 만나서 엄마 얘기도 합시다. 늘 건강하기를.


편지에는 예쁜 꽃이 색연필로 그려져 있었고, 봉투 안에는 수녀님의 편지뿐 아니라 수녀님의 시가 앙증맞게 적힌 종이카드, 수녀님의 시가 녹음된 음반, 그 외에도 참 많은 것들이 담겨 있었습니다. 저는 뭔가 믿을 수 없어 수녀님의 편지를 몇 번이나 반복하여 읽었습니다. 수녀님을 직접 뵌 적도 없는데 이해인 수녀님이 제게 편지를 보내주시다니요. 정말 꿈만 같은 일이었습니다. 수녀님의 따뜻한 말씀이 참 감사하고 위로가 되었습니다. 수녀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절망 속에서도 키가 크는 기분’이었다랄까요. 그때부터 수녀님을 언젠가 꼭 뵙고 싶은 마음을 키워왔습니다. 이 편지를 들고 부산 베네딕토 수녀원에 가서 수녀님을 뵙게 해 달라고 하면 될까, 언제 가면 좋을까, 같은 마음들을요.


   그로부터 10년이 흐른 오늘, 이렇게 수녀님을 다시 뵙게 되었습니다. 이 역시 참 꿈같은 일입니다. 수녀님이 저에게 해주셨던 것처럼, 수녀님은 지난 60년 동안 많은 이들에게 사랑과 온기를 보내주셨고, 저희는 수녀님 덕분에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을 느끼고 만날 수 있었습니다.

   수녀님의 신간인 ‘소중한 보물들’을 읽으며 들었던 첫 생각은 수녀님이 보내신 60년의 시간이 그저 안온하고 평화롭지만은 않았겠구나, 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서 수녀님은 끝까지 하느님의 발자취를 찾아 걸으셨고 하느님이 주시는 평화와 사랑을 주변의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셨습니다. 수녀님의 글 한 글자 한 글자가 저희에게는 위로였고, 희망이었습니다. 그리고 바쁘신 와중에도 ‘해인글방’을 지키며, 다정하게 사람들을 맞아주시는 것도 수녀님의 사랑과 희생이 녹아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만약에 제가 수녀님 같은 입장이라면, 저는 생각도 못할 일입니다.  

   지금까지의 시간처럼 앞으로도 하느님의 빛을 수녀님 마음에 가득 채우셔서 저희에게도 나눠주세요. 그리고 수녀님 마음 안에 가득한 그 빛이 수녀님을 언제나 위로하고 다독여주시길 함께 기도합니다. 수녀님의 존재 자체가 저희에게는 기쁨입니다. 많은 이들에게 ‘무수한 별을 한꺼번에 쏟아내는 밤하늘’ 같은 사랑을 가진 수녀님, 이번엔 제가 이 말을 드립니다. 사랑합니다, 고맙습니다, 수녀님. ^^


오전동 성당 이해인 수녀님 북콘서트에서

수녀님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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