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가 돌아가신 지 벌써 5년이 지났네요.
어린 시절을 생각하면 기억하고 싶은 추억보다는
잊고 싶은 기억이 더 많은 것 같아요.
비단 경제적인 환경문제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정말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그 모두가 각자에게 할당된 아픔을 견디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함께 살 수는 있었을까? 하는...
그렇게 힘든 시절을 겪어내고
지금은 그래도 나름 잘 살고 있는 스스로를 칭찬합니다.
경제적으로나 환경적으로 자식에게 신경을 안 써주셨던 아빠였지만,
한 가지 고마운 게 있어요.
어느 상황에서든 내 말을 잘 들어줬다는 거.
성격이 무지무지 급하고,
무조건 당신이 우선인 아빠였는데,
이상하게 제 말은 중간에 끊지 않고 잘 들어주셨어요.
학교 다닐 때는 친구들 이름 다 알고,
과목마다 선생님들 특성이나 몇몇 분의 성함들도 기억하시고.
회사 다닐 때는 같은 팀 사람들 직책과 성격
사장님을 비롯한 임원진 이름까지
다 알고 있어서 친구랑 수다 떨듯 종알종알 얘기했었어요.
70세 넘으셔서 제 친구들 이름이 생각 안 나실 때는
눈 큰애, 키 작은 애, 얼굴 하얀 애, 뚱뚱한 애, 못생긴 애 ㅎㅎ
다들 그렇게 부르셔서 제가 친구들한테
야! 너보고 울 아빠가 못생긴 년이래~ 하며 웃었던 기억도 나네요.
그런데, 제가 자식을 낳아서 키워보니
그 어린 자식의 얘기를 들어준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더라고요.
자식의 입장에서만 편을 들어주기도 애매한 상황이 분명 생기고,
함께 화가 나고 핏대가 솟구쳐 오르는 상황도 있고,
억울하고 답답한 모든 상황에서도
나무라거나 다그치지 않고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는 거
해보니까 참 힘든 일이더라고요.
정말 궁금했었거든요.
다른 아빠들처럼 인자하지도 않았고,
내 집안은 등한시하고,
사랑한다. 잘한다. 응원해준 적도 없는데,
왜 나는 아빠가 나를 사랑한다고 굳게 믿게 되었을까?
자식을 낳고 키우면서 알았습니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없이 저를 키웠지만,
난 항상 사랑받고 신뢰를 받고 있다는 믿음.
그건 저의 말을 잘 들어주고,
제가 말할 때 저에게 눈으로 믿음을 심어주었다는 것을요.
그리고 그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는 걸.
제 딸들도 깔깔대고 웃으며 기분 좋은 얘기를 할 때는
저도 별 부담 없이 듣고 함께 웃지만,
무슨 불만스러운 얘기가 나오면 딱! 듣기 싫거든요.
지들한테나 불만이지, 제가 들어보면 문제도 아닌 얘기들이
너무너무 많습니다.
들어주기보다는 한심한 마음에 지적질이 하고 싶어 지죠.
삶이 고단하고 매일매일 돈에 시달리며 살았던
그 시절에 아빠에게 말 많은 딸의 수다를
경청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녔을 테죠.
예전엔 술 드시면 말씀하시는 걸 좋아하는 아빠니까.
자기도 말하는 걸 좋아하니까 그저 대화 자체를
좋아해서 내 말을 들어준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아시죠?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남이 말하는 거 잘 못 들어줘요. ㅎㅎ
중간에 말이 하고 싶어서...
우리 아빠는 하늘나라에서 말동무는 찾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주저리주저리 적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