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나 Nov 17. 2020

길준씨 이야기 2

자율방범

 

  내 집에 쌀이 떨어지는지, 돈이 떨어지는지 참 무신경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이 힘든 일을 겪을 때면 만사를 제쳐두고 본인 등판!

그 힘든 일이라 하는 게 보통은 교통사고, 배우자의 불륜, 법적 분쟁 등 좋지 않은 일이 대부분이다. 

어느 집 아줌마가 바람이 났다는 얘기가 들리면 괜스레 내 심장이 본분도 모른 채 콩닥거리기 시작했다. 

길준 씨가 예민해지고 얼굴 보기 힘들 만큼 바빠지는 타이밍이다. 

자가용도 없던 그 시절에 오토바이 한 대로 미행을 시작한다. 

누가 남편이고 누가 지인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최선을 다해 불륜의 현장을 잡으러 다닌다. 

친구나 동네 사람 누구라도 교통사고가 났다 치면 당연하게 길준 씨를 찾아온다. 

그러면 제일 먼저 해야 할 일들을 중요한 순서대로 쭉~ 알려준다. 

변호사 사무장이 따로 없다. 

길준 씨가 시키는 대로 해서 일을 해결 본 사람들은 자기 지인이 그런 일을 당했을 때 또 소개를 해준다.

당연히 돈은 안 받는다. 

돈을 받으면 덕이 안된다는 철칙이 있기 때문이다. 

대신 감사인사는 예의 바르게 꼭!! 길준씨 마음에 들게 해야 한다. 

만약, 감사인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면 그 사람일은 다시는 안 봐준다. 

나름 소심한 길준 씨만의 복수다.


동네 식당에서 무전취식을 한 사람이 당당하게 가게문을 나서는 것을 본 길준씨는 참지 않는다. 

근데, 술에 취한 무전취식자 또한 거칠게 없다. 

밥과 술을 먹었으면 돈을 내고 가라는 길준씨의 말에 돈 대신 따귀를 사정없이 갈기는 

주취자 때문에 몇 초간 정신이 멍했던 길준 씨는 정신이 들자마자 양쪽으로 따귀를 갈긴다.

두 사람 서로 정신없기는 마찬가지였을 거다.


정의감에 불타올라 여러 사람에게 감사인사는 받고 사셨는지 모르겠지만, 

언제나 가족은 뒷전이었으니, 길준씨는 당신이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았지... 싶다.

가족으로써 아쉬움은 어쩔 수 없다.



대장님

 

  예전 살던 동네는 차 한 대 지나기 힘들 정도로 좁은 골목길이었다. 

어른들에게는 삼삼오오 모여 간식거리를 나눠 먹으며 담소는 나누는 만남의 광장이었고,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 수 없는 비좁고 위험한 놀이터였다.


   한창 말썽을 부리며 몰려다니는 말 안 듣는 개구쟁이 녀석들이 골목을 지날 때마다 골목 허리에 

딱! 하고 자리를 잡은 “대장님” 때문에 아이들은 맘 편히 다음 놀이터로 지나갈 수 없었다. 

달리는 화물차와 적치된 많은 물건들로 골목에서 뛰면 위험했기에 조심시키려고 더욱더 무섭게 했었다.

대장님의 마음에 들 때까지 군기가 바짝 든 차렷. 열중쉬어를 몇 차례 하고 나서야 다른 골목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옛날로 치면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대장님이었다. 

실제로 말 안 듣는 미운 일곱 살짜리 아들을 둔 엄마들은 대장님을 찾아와 무섭게 혼 좀 내달라는 

청탁을 수도 없이 했다.

아이들은 골목을 지날 때마다 대장님이 안 계시면 잠시 기다려서라도 인사를 하고, 

통과 명령을 받은 후에야 그 길을 지나가곤 했을 정도로 어기면 안 되는 규칙 같은 게 되어버렸다.


긴 시간이 흐르고 대장님이 좋아하는 목욕탕에 가서 사우나를 열심히 하고 있던 그때, 

어떤 청년이 발가벗은 몸으로 

“대장님! 안녕하십니까?”

라며 큰소리로 인사를 하더란다.


너무 당황스럽고 부끄러운데 또 웃음이 나서 대장님은 무슨 대장님이냐며 이름을 물어보니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고 한다.

그 어릴 적 개구쟁이가 군대에서 휴가를 나와 목욕을 왔다가 대장님을 보고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했다고 하더란다.  

어린 기억에도 무섭고 나쁜 기억만이 아니라 청학동 훈장님에게 예절교육을 받은 것 

같은 추억이었나 보다. 

그 작던 말썽꾸러기가 대장님 등을 밀어주는데 흘러버린 세월이 야속하기도 하면서 

기특하고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고 한다.

지금은 상기된 얼굴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 “차렷. 열중쉬어. 대장님! 안녕하십니까?”를 

외치던 그 아이가 대장님 나이쯤 되어있겠다. 

좋은 기억이었을까? 기억하기도 싫은 무엇이었을까? 갑자기 궁금하다.

작가의 이전글 길준 씨 이야기 1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