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나 Nov 20. 2020

길준 씨 이야기 3

철저한 죽음 준비

철저한 죽음 준비

   전립선암에 이은 폐암으로 고생하면서 길준 씨는 돌아가야 할 날을 알고 있었는지,

죽음을 철두철미하게 준비했다.  

우선 각 은행에 예금 등을 정리해서 와이프 앞으로 몇 개의 예금으로 나눠서 가입해놓고,

금을 열 돈(한 냥)씩 몇 덩이로 준비해뒀다.

요즘이야 의료보험도 잘되어있고 의료실비도 가입해놨으니 어디가 아파서 큰 수술을 한다 해도

2~3백만 원이면 병원비를 충당할 수 있으니,

그때마다 한 덩이씩 팔아서 병원비를 해결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와이프에게 주면서 자식들도 못 찾게, 도둑이 와서 며칠을 뒤져도 못 찾게

숨겨두었다 필요할때 쓰라는 말과 함께 건네었다고 한다.

현금이나 예금으로 주면 자식들 어렵다고 칭얼댈 때마다 얼마씩 주고는 정작 엄마가 필요할 때는

없어서 자식들한테 손 벌리게 될까 봐 고민 끝에 얻은 루션이었으리라.

다행히 엄마는 제일 잘 통하는 큰딸인 나에게도 어디에 뒀는지 말하지 않는다.

요즘 금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니까 팔라고 농담해도 꿈쩍도 안 한다.

자식들에게 퍼주지 말고, 손도 벌리지 말고, 예금을 다 쓰면 금을 팔아서 쓰고,

그것마저도 다 쓰면 집을 팔아서 전세로 옮겨서 쓰고 절대로 자식들에게 돈으로

아쉬운 소리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단다.

또 물려줄 생각도 하지 말라고...


계속되는 항암으로 식사를 못하셔서 선식 음료만으로 끼니를 대신하다 보니

손도 떨리고 기운도 없어 걷는 것조차 많이 힘들어하셨었는데, 어느 날 컨디션 좋은 얼굴로

아프기 전까지 장사하시던 시장에 가서 이발 좀 하고 오시겠다며 직접 운전해서 평소 다니던

이발소에 들러 염색까지 싹 하시고, 아파서 못 봤던 사람들 오랜만에 만나서 한 명 한 명 다

악수하시고 다음날 돌아가셨다.

멀쩡하게 밝은 얼굴로 인사했던 동네분들은 다음날 부고를 듣고 얼마나 황당했을까 싶다.

일을 미루는 법 없이 할 일은 꼬박꼬박 챙겨서 하시던 스타일이라 그런지

마지막 죽음까지도 아주 깔끔하게 정리하고 가셨다.

덕분에 자식들은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혼자된 엄마까지 챙겨야 하는 부담감은 없다.

꼼꼼한 사람인 줄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마지막 자리까지 이렇게 깔끔하게 처리하셨을 줄 상상도 못 했다.


젊었을 때는 가족은 뒷전이고, 사람 좋아하고, 술. 담배 좋아해서 불만도 참 많았었다.

그런데 이렇게 마지막 매듭을 잘 맺어두니 원망보다는 감사가 많이 남는다.

역시 사람은 처음보다는 끝이 좋아야 좋은 평을 받는가 보다.


사실 길준 씨 하면 군대 얘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 이 얘기를 글로 써도 될까... 고민이 많다.

이미 돌아가셨으니 괜찮으려나?

우리 길준 씨의 군대 얘기는

의가사제대라 쓰고 탈영이라 읽는다.

나중에 한번 용기 내어 써보기로 한다.

 

    

작가의 이전글 길준씨 이야기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