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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준 씨 이야기 3
철저한 죽음 준비
by
나나
Nov 20. 2020
철저한 죽음 준비
전립선암에 이은 폐암으로 고생하면서 길준 씨는 돌아가야 할 날을 알고 있었는지,
죽음을 철두철미하게 준비했다.
우선 각 은행에 예금 등을 정리해서 와이프 앞으로 몇 개의 예금으로 나눠서 가입해놓고,
금을 열 돈(한 냥)씩 몇 덩이로 준비해뒀다.
요즘이야 의료보험도 잘되어있고 의료실비도 가입해놨으니 어디가 아파서 큰 수술을 한다 해도
2~3백만 원이면 병원비를 충당할 수 있으니,
그때마다 한 덩이씩 팔아서 병원비를 해결하라고 했다는 것이다.
아무도 모르게 와이프에게 주면서 자식들도 못 찾게, 도둑이 와서 며칠을 뒤져도 못 찾게
잘
숨겨두었다 필요할때 쓰라는 말과 함께 건네었다고 한다.
현금이나 예금으로 주면 자식들 어렵다고 칭얼댈 때마다 얼마씩 주고는 정작 엄마가 필요할 때는
없어서 자식들한테 손 벌리게 될까 봐 고민 끝에 얻은
솔루션이었으리라.
다행히 엄마는 제일 잘 통하는 큰딸인 나에게도 어디에 뒀는지 말하지 않는다.
요즘 금값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오르니까 팔라고 농담해도 꿈쩍도 안 한다.
자식들에게 퍼주지 말고, 손도 벌리지 말고, 예금을 다 쓰면 금을 팔아서 쓰고,
그것마저도 다 쓰면 집을 팔아서 전세로 옮겨서 쓰고 절대로 자식들에게 돈으로
아쉬운 소리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하셨단다.
또 물려줄 생각도 하지 말라고...
계속되는 항암으로 식사를 못하셔서 선식 음료만으로 끼니를 대신하다 보니
손도 떨리고 기운도 없어 걷는 것조차 많이 힘들어하셨었는데, 어느 날 컨디션 좋은 얼굴로
아프기 전까지 장사하시던 시장에 가서 이발 좀 하고 오시겠다며 직접 운전해서 평소 다니던
이발소에 들러 염색까지 싹 하시고, 아파서 못 봤던 사람들 오랜만에 만나서 한 명 한 명 다
악수하시고 다음날 돌아가셨다.
멀쩡하게 밝은 얼굴로 인사했던 동네분들은 다음날 부고를 듣고 얼마나 황당했을까 싶다.
일을 미루는 법 없이 할 일은 꼬박꼬박 챙겨서 하시던 스타일이라 그런지
마지막 죽음까지도 아주 깔끔하게 정리하고 가셨다.
덕분에 자식들은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 혼자된 엄마까지 챙겨야 하는 부담감은 없다.
꼼꼼한 사람인 줄 이미 알고는 있었지만 마지막 자리까지 이렇게 깔끔하게 처리하셨을 줄 상상도 못 했다.
젊었을 때는 가족은 뒷전이고, 사람 좋아하고, 술. 담배 좋아해서 불만도 참 많았었다.
그런데 이렇게 마지막 매듭을 잘 맺어두니 원망보다는 감사가 많이 남는다.
역시 사람은 처음보다는 끝이 좋아야 좋은 평을 받는가 보다.
사실 길준 씨 하면 군대 얘기를 빼놓을 수 없는데, 이 얘기를 글로 써도 될까... 고민이 많다.
이미 돌아가셨으니 괜찮으려나?
우리 길준 씨의 군대 얘기는
의가사제대라 쓰고 탈영이라 읽는다.
나중에 한번 용기 내어 써보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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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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