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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나 Nov 26. 2020

군기반장 큰엄마와 말썽꾸러기 조카 1

시작


나에게는 한부모가정 조카들이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조손가정이 맞지 싶다.

큰애가 6학년 여자아이, 둘째가 4학년 남자아이, 셋째가 2학년 남자아이.

에휴~ 많이도 낳았다.

이렇게 조손가정이 된 지 벌써 4~5년 정도 되었으니

막내가 5살 때쯤 갈라섰다.

시동생네는 시원치 않은 벌이로 투닥거리며 싸우다가

애엄마는 바람이 나고... 애아빠는 애들을 부모님께 버려두고 나가버렸다.

둘 다 도찐개찐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살다 보니 친정과 시댁 식구들이 다 이쪽에 모여 살게 되었는데

좋은 점도 있지만 불편한 점도 많은 게 사실이다.

4년을 외면하며 살았다.

할아버지 할머니가 의. 식. 주는 해결해 주시지만

학습적인 면과 학교생활까지 챙겨주시는 건 쉽지 않은 일임에 분명하다.

가끔 우리 애들 설빔, 추석빔 살 때 한 번씩 옷이나 챙겨주고 했지

살갑게 안아주고 챙겨주지 못한 큰엄마다.

그렇다고 우리 애들한테 살가운 엄마도 못된다.

그저 무뚝뚝하고 말투는 좀 사무적인 그런 사람인지라 아이들이 나를 무서워한다.

어쩌면 의도적으로 무서운 큰엄마 콘셉트를 잡은 것일 수도 있다.

불쌍하고 안됐다는 이유로 그 누구도 아이들한테 뭐라 하는 사람은 없다.

얼마 전 추석 큰 조카가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있었기에 학업은 문제없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살짝 살펴보니...

수학. 영어가 너무 안되어있는 것이다.

자수하자면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외면하고 있었다.

더 이상 나도 죄책감에 시달리는 것도 싫고,

성당에 가서 기도만 해준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고,

내 자식들도 속 터져서 못 가르치고 돈으로 처발랐지만

그래!

한번 치고받고 해 보자!

용기를 내보자!

우리 중 누가 먼저 울면서 포기하는지 부딪혀나 보자!

싶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너희의 자유시간은 10월 말일 까지다!"라고 선전포고를 하고

나는 문제집을 샀다.

젠장, 3명이나 되니까 영어. 수학. 연산 문제집만 사도 십만 원이 넘네.

두근두근

드디어 11월 2일 월요일 첫 모임.

사실 나도 떨렸다.

내가 소리 안 지르고, 애들 안 울리고 잘할 수 있을까?

헐크로 변하면 어떻게 하지? 애들한테 욕을 하는 건 아닐까? 하는 등의 두려움.

(사실 나는 누군가를 가르쳐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약속한 시간이 지났는데, 막내가 안 온다.

첩보에 의하면 우리 아파트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고 있으시단다.

큰딸한테 큰엄마가 기다리고 있다고만 전하라고 했다.

드디어 초인종 소리에 나가보니...

초등학생 2학년 막내 뒤로 모르는 여자애들이 3명이나 더 있다.

이건 무슨 상황이지?

나중에 알고 보니 참 씁쓸하고 마음 아픈 얘기가 숨어있었다.

내 큰딸이 막내한테 가서

"@@아! 큰엄마가 너 빨리 올라오래." 했더니

애들이 조카에게

"야! 너 엄마 있었어?" 하더란다.

(큰딸이 옆에 있었는데, 갑자기 울컥 눈물이 쏟아질 것 같아 빨리 자리를 피했다고 한다.)

결국 그 여자애들은 이 아이한테 정말로 엄마 or 큰엄마의 존재가 있는지 눈으로

확인하겠다고 우리 집 현관까지 쫒아 온 것이다.

당황한 나는 그래도 친절하게

"@@는 이제 공부해야 하니까 너희들도 이제 돌아가~"

했더니 아이들이 정말 놀란 표정으로

"야! @@이 이제 공부한대?"

허허 어이없는 웃음이 난다.

막내 녀석은 똘똘했다.

분명 말로는 구구단도 못 외우고 학교 수업도 잘 못 따라간다 했었는데,

구구단도 줄줄이 외고

틀리는 문제도 없고

기대 이상이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기대치를 높이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자존감도 많이 떨어졌을 테고.

책임감 없는 어른 년. 놈들 때문에 이 야무진 녀석이 당했어야 할 가시 돋친

시선을 생각하니 더 화딱지가 난다.

아이에게 물었다.

"공부를 잘하고 싶니?"

"네"

"왜?"

"칭찬 많이 받고 싶어서요."

에효~

사실 이 막내 녀석은 전교생에게 유명한 말썽꾸러기다.

수업시간에 가만있지 못하고 머리를 헝클고

아이들을 웃기려고 선생님보다 말을 더 많이 하는 다루기 어려운 아이.

간단하게 문제 풀고 하는데 진짜 잘 해길래 칭찬을 해줬다.

그랬더니 아이가 하는 말이

"큰엄마, 조금 잘했는데 왜 칭찬을 이렇게 많이 해줘요?" 하며 볼멘소리를 한다.

"인마, 잘했을 때 칭찬하는 건 내 맘이야. 완전 생각보다 잘해서 놀라서 그런다. 왜!"

했더니 배시시 웃는다.

필통도 없는 세녀석들에게 수업도 하고, 숙제도 내주고, 책도 3권씩 읽혔다.

정말 힘든 시간이었을 텐데, 생각보다 재미있단다.

뭐, 얼마 안 가겠지만... 그래도 시작은 꽤 괜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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