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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나 Nov 17. 2020

길준 씨 이야기 1

길준 씨는 저의 아빠입니다.

좀 독특한 사람이라 어디 대놓고 얘기하기 부끄러우나 묻혀두기에는 아까워 여기에 풀어봅니다.       

못생겨서 죄송합니다.

   길준 씨를 설명하는데 외모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어릴 적 故 이주일 씨가 TV에 나와 “못생겨서 죄송합니다.”라며 사람들을 웃길 때, 

나는 그 사람이 왜 못생겼다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내 옆에 우리 길준 씨가 이주일 씨보다 진짜 훨씬 더 못생겼는데도, 

이 사람은 자기가 대한민국 표준은 된다는 자신감에 차서 잘 살고 있는데, 이게 뭔 소리인가 싶었다.

요즘으로 치면 김제동 씨가 비슷한 케이스라고 설명하면 빠르겠다.

스스로 못생겼다고 말하지만, 외모에 기죽는 법 없고, 

말을 시작하면 사람들을 집중시키고 웃기는 재주가 있다.

딱! 길준 씨가 그랬다.      

그 시절에도 동네 아줌마들을 누구 엄마라 부르지 않고 풀네임으로 불러줬다. 

온 동네 아줌마들 이름을 줄줄이 외우고 있으며, 

고향에 취향까지 꿰차고 있었으니 아줌마들에게 인기가 없을 수가 없었다.

속도 모르는 아줌마들은 엄마에게 

"아휴~ 저렇게 재미있는 분이랑 사니 맨날 웃을 일만 있겠어요."

그 말을 들은 엄마는

"가져가슈" 했다더라.


외모 부심에 대해 조금 더 얘기를 해보자.

내 남편. 그러니까 길준 씨의 사위는 진짜 착하기로 두 번째가라면 서운한 사람이다.

웃어른들에게도 참 잘해서 깐깐한 길준 씨에게도 꽤 사랑을 받았었다.

단 한 가지 마음에 안 드는 건 키.

어느 날  

길준 씨 : 범진이 이 자식은 다 좋은데, 키가 좀 작은 게 아쉬워.

나 : 그렇지. 남자 키가 168이면 좀 작은 편이지

길준 씨 : (인정할 수 없다는 듯) 뭐? 범진이 키가 168이야? 나보다 크단 말이야? 

(길준 씨 키는 당시 대한민국 남자 표준 키라 우기는 163)

동생 : 아빠! 형부 나랑 키 똑같아.

그때서야, 남자 키가 163 넘으면 큰 거라며... 그 정도면 됐다 하시는...

그런 세상 뻔뻔함은 나도 좀 배우고 싶다.

이미 미움받을 용기는 차고 넘쳤었나 보다.  진짜 부럽다.


그러고 보면, 잘생겼다 못생겼다의 기준은 남이 아니라 내가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예쁜 연예인들이 더 이뻐지려고 수술을 계속하는 걸 보면 만족하지 못했기 때문일 테고, 

길준 씨처럼 남들이 아무리 뭐라고 해도 그 못생긴 얼굴에도 완. 전. 만. 족 하게 되니 

남의 시선에 당당할 수 있었을 것이다.          


머리가 좋았던 남자

   머리가 좋다는 것을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어서 그에 대한 자부심도 상당했다.

그 시절 국민학교 2학년을 다니던 중 월사금은커녕 끼니를 때울 돈이 없어 품삯을 벌기 위해 

학교를 못 다니게 된 상황이었다고 한다.

담임선생님이 3번이나 찾아오셔서 

“똑똑한 아이이니 꼭 가르쳐야 합니다. 

집안 형편이 안된다면 내가 가르칠 테니 아이만 보내달라”라고 하셨단다. 

어렸어도 야무지게 한몫 이상을 벌어오는 어린 길준이는 결국 학교를 

그만두고 일찍 생업전선에 뛰어들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그 선생님에 대한 무한한 감사와 자신을 보내주지 않았던 부모에 대한 원망은 60년 가까이 이어졌다.  


서울로 올라와 아이스께끼를 판매하는 꽤나 큰 판매점에서 배달일을 했다고 한다.

많은 배달꾼들이 있었고, 그중 단연코 실적 1등은 우리 길준 씨였다고 한다.

가게에서 주문을 받고 배달을 하고 수금까지 마무리해야 하는데,

남들은 수첩에 적고 정산을 하는데 꽤나 많은 시간이 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의 길준 씨는 장부와 계산기는 머릿속에 다 들어있었다고 하니 일의 속도가 빠를 수밖에 없었다.

자전거도 잘 타고 계산도 척척, 넉살도 좋은 길준 씨를 사장님이 사위 삼으려고 했다는 걸 보면 

어느 정도 인정받았던 듯싶다.

그렇게 다른 판매점에 스카우트되고 하기를 몇 차례.

드디어 돈을 벌어서 대리점을 하나 받아서 많은 돈을 만지기도 했다고 한다.   

  

똑똑한 머리로 독학이라도 좀 하지... 이그~ 

술. 담배를 일찍 배우고 노름도 하고 미래에 대한 계획 없이 청춘을 흘려보내버렸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지금도 그렇지만, 

공부하는데 필요한 것은 좋은 머리보다는 굳은 의지와 묵직한 엉덩이가 더 중요한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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