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암 하는 친구의 긍정력
32년을 싸우지 않고 사귈 수 있었던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나이가 50이 되면서 주변에 아픈 사람들이 하나. 둘 생겨납니다.
여고시절부터 절친인 친구가 유방암에 걸려 항암치료 중입니다.
제 친구도 저도 비교적 성격이 강하다는 소리를 듣는 편인데, 이상하리만치 30년 이상을 다툼 없이 지내왔어요.
저도 친구도 모두 동갑이랑 결혼해서 두 가족이 매년 여행도 다니고 고향 친구처럼 친하게 지냅니다.
그러다가 친구가 올해 초 유방암 판정을 받았고, 8월이면 항암치료가 끝이 납니다.
체력관리를 잘하고 있지만, 머리며 눈썹까지 모두 빠져서 보면 마음이 짠하고 해 줄 수 있는 게 없어 마음이 아픕니다.
얼마 전 요양병원에서 퇴원해야 하는데, 친구 딸내미가 코로나에 걸려 친구남편이 저에게 퇴원을 부탁했어요.
혹시라도 딸에게 바이러스가 옮았으면 항암으로 면역력이 약한 친구에게 치명적일 수 있으니까요.
이날 제가 왜 이 친구와 갈등 없이 30년 이상을 함께 할 수 있었는지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불평불만이 많은 사람 / 징징거리는 사람 / 남탓 하는 사람을 멀리하려고 노력하는 편입니다.
저 스스로 주변의 영향을 많이 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주변에 징징거리는 사람을 두지 않아요.
우리 딸들이 어렸을 때부터 딱 저 세 가지만 하지 말고 살라고 말할 정도였으니까요.
친구는 저와 밥 먹고 차도 마시고 수다를 떨다가 친정으로 갈 생각이었는데, 저는 그날 오후에 미용실에 예약이 되어 있는 상황이었어요.
제가 웃으면서 "친구야! 내가 진짜 너한테 말하기가 쫌 민망하긴 한데.... 미용실 예약이 되어있어서 오래는 못 있는다." 하니까
친구가 하는 말이
"야! 너만 머리카락 있냐? 나도 머리카락 하나 있거든!!!" 하며 두건을 벗는데
정말 유머 책에서나 볼만한 일이 생겼어요.
머리 정 중앙에 굵고 짧은 머리카락이 한가닥 떡~하니 나 있는 거예요.
운전하다가 친구와 박장대소했습니다.
네~ 제 친구는 그렇게 아픈 상황에서도 초긍정의 태도를 보여줬어요.
제가 그런 모습에 반해 싸울 일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수술 및 방사선치료까지 끝나면 필리핀으로 여행 가자고 계획을 짜고 있습니다.
만사를 제쳐놓고 가자고 약속했습니다.
비행기표는 내가 끊겠다고요.
18살부터 거의 평생을 매주 만나던 친구가 이 세상에서 없어질 수도 있다는 무서운 생각을 했었던 시간도 있었습니다.
겪어보지 않은 고통에 뭐라고 위로를 해줘야 할지도 몰라 안절부절 두려운 시간을 보냈고요.
그러나 내 친구는 나보다 더 의연하게, "너 암? 나 이 구역 미친년이야."라는 자세로 이겨낼 거라고 되레 저를 위로했습니다.
그때 생각났어요. 첫 출산 때 10분마다 오는 진통을 파도타기 한다고 생각하며 견뎌냈다는 그 친구의 강한 정신력이.
의도적인 긍정의 힘도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타고나서 생활화된 긍정은 정말 강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주변에 까지 긍정의 파동이 강하게 퍼트리니까요.
멘털이 약한 저는 자주 불안감을 느낍니다.
그럴 때 이렇게 긍정의 힘을 타고난 멘털이 강한 친구가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든든한 뒷배를 둔 것처럼 어깨가 펴집니다.
조바심을 내며 살아도 잘 살아지는 것도 아니더라고요.
조금은 대범해지는 연습을 해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