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대수 씨
<올드보이>의 주인공은 자신의 이름을 '오대수'라고 했다. 비오는 날 공중전화 박스에서 납치되기 전 통화를 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이름을 소개하는데 내 기억으론
'오 늘만
대 충
수 습한다'며 자신이 오대수라고 했다.
요즘 쇼 프로그램에서 잊을만하면 시키는 삼행시라면 나는 아주 좋은 점수를 줄 것이다. 그러면서 나는 (나만 이 부분이 기억이 많이 났는지 대부분은 주위 사람들은 기억이 안난다 했다.)
'이대수' 씨를 소환해 대학원의 과제와 공연을 대에충 넘긴 것 같다.
'이 번만
대 충
수 습하자'
정말 대충이 되어 버리면 안되지만 심한 완벽주의와 제대로 하고 싶은 마음이 아예 일을 시작 하지 못하게도 한다. 글을 쓰지도 못하게 막는 거대한 벽이 되어 버린다. 정신없이 공연을 진행하다보면 시도때도 없이 터지는 작은 사건들과 감정의 폭발과 카톡의 지나치게 빠른 성장이 정신을 혼미하게 한다. 그럴 때마다 '이대수'씨를 소환한다.
글을 쓰다보고 공연을 하다보니 완벽한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연히 배우들과 관객들의 시간을 버리지 않을 재미있고 좋은 공연을 해야 하는 것이 지향하는 바이겠지만 완벽하다는 말이 나를 꽁꽁 묶어 놓는 밧줄이 되면 안될 것이다.
한 때 인기있던 개그 중에
'그까이꺼 대에~~충 뭐 ~~' 이런 개그가 있었다.
이 개그를 오해한 사람들도 있었겠지만 나는 이 개그가 재밌었다. 자의식의 과잉으로 모아이 석상처럼 내 머리가 커져있을 때, 긴장감으로 가득 차 있을 때, 혹은 자신이 하는 일만 너무도 중요하다는 식의 사람들을 볼 때 우리는 자기 자신과 불편한 그들을 풍자하지만 사람좋게 웃으며
'그까이꺼 대에~~충 뭐 욕이나 하고 삼행시만 잘 하면 셀러브리티가 되는 거 아니여!'라며 웃어 넘길 수가 있는 것이다.
이대수씨와 오대수씨는 나에게 현재에
존재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얼마전에 샤워를 하며 아주 절망스러운 감정으로 울음이 터진 때가 있었다.
난 언제까지 이력서를 업데이트하고 월세를 걱정하고 대출광고문자나 스팸 전화받듯 '당신과 함께 하지 못해 아쉽다'는 거절을 받고 살까.
아마 죽을 때까지?
그 시간들이 너무도 아득하고 어둡고 어려워서 나는 진땀을 흘리듯 눈물을 흘렸다.
그 때 오대수씨와 이대수씨가 나타났다. 항상 내 조울증의 동반자였던 그들은 우릴 왜 잊었냐면서 날 토닥였다.
일단 오늘만 살자. 일단 이번만 수습하고 그 때까지는 생각을 말자.
오늘만 대충 수습하자, 일단.
잠시 잊었던 오대수씨와 이대수씨는 내가 조금 나아졌다고 미래를 계획하고 갑자기 저 멀리 점프를 해버린 나를 다시 잡아줬다. 그리고 딱 오늘만 살 힘을 보태주면서 내 등을 밀어줬다.
오늘만 살지 않으면
오늘 놓치는 많은 것들이 있다.
오랜만에 화창한 하늘
낮게 핀 제비꽃
오늘 느끼는 누군가의 다정함
아침이면 지저귀는 새소리
살랑거리는 개의 꼬리
잠시지만 고요에 머물며 마시는 커피
오래 전에 죽은 시인의 편지
오늘만 쓸 수 있는 오늘의 느낌과 감정과 아이디어
눈 앞에 흐르는 계곡을 만끽해 본다. 예전에는 아름다운 작은 계곡을 보고도 먼 바다를 생각하느라 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