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등을 밀어주며 나아가게 한 그들

2. 내 무거운 마음을 가볍게 털어주던 꼬리들

by moonbow

1. 다시 산 속으로

유년기때부터 시작되었던(그 때는 몰랐다. 그냥 힘들고 매일 몰래 울 뿐이었다.) 우울증은 조울증으로 그리고 결국 참고 있던 것이 다 폭발하듯 한 번에 터졌다. 그리고 병원에 입원을 하고 병가를 쓰고 또 휴직을 하고(이 과정에 모두 다 포기해버리고 싶을만큼 골치가 아팠고 직장의 인사담당자는 정신과 치료라는 것을 비밀로 하겠다고 다짐했으나 아빠는 단번에 멋있게 '상관없다!'고 당당하게 말하고 오셨다고 했다.) 강원도 양양 북암리, 산 속으로 왔다.


2. 산에서 요양

멍을 때리고 낮에 잠들지 않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뜨거운 여름 태양에 녹아버리지 않기 위해서 최소한의 숨쉬는 활동을 계속 하도록 노력했다. 하루는 너무도 길고 몸의 상태를 최악이었다. 입원 전 약 10일 간 거의 잠을 못 자고 밥도 물도 먹고 마시지 못하며 직장에 나갔으니 참 미련했다. 입원해서는 영양제를 두 병이나 맞고서야 일어났다고 한다. 내가 영양제라니.. 항상 퉁퉁하고 덩치 좋은 내가... 직장을 그만둔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지만 지금 생각하면 내 자신을 생각해서 좀 무책임했어도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든다.


쉬면서도 앞으로 내가 당면한 현실 속에서 어떤 돌파구를 찾아야 하나, 나는 내 자신을 뭘로 구원해야 하나 끊임없이 생각했다.(뭘 그렇게 생각을 많이 했을까. 아무 생각도 안해도 될 것을...) 책을 강박적으로 읽고 있으면 아빠는 풀뽑기를 하라고 시키면서 내 기분을 전환시키려고 노력하셨다. 이 때 엄마 아빠의 노력은 눈물날 정도였다. 이렇게까지 내가 그 분들을 노력하게 해도 되는 것일까. 자괴감과 죄책감이 들었다. 지금은 이런 마음은 고마움으로 그저 간직하기로 했다. 그런 생각을 읽은 엄마 아빠는 앞으로 언제 딸과 시간을 이렇게 같이 지내겠냐면서 선물이라고 생각하자고 했다.


3. 북암리 산 속 집을 지키던 개들.

그 때 시골에는(거의 산 속에 가깝다) 키우다가 어쩔 수 없다며 그래도 산 속에서 크면 좋지 않겠냐며 떠안기듯이 놓고 간 개들이 있었다. 까만 개(초코)는 하루종일 아파트 베란다에서 자유를 꿈꾸며 창 밖만 꼿꼿이 바라보다 그 모습을 보다못한 주인이 산 속의 자유를 만끽하라며 놔두고 간 아이였다. 그리고 사랑이는 콜리로 역시 아파트인지 집에서 살다가 우여곡절 끝에 오게 되었는데 몸집이 크다보니 대부분 묶이기도 하고 또 자유를 느끼라며 풀어주며 온 산 속을 돌아다니거나 집 주변을 정찰하며 살았다. 유난히 질투가 많아서 집 주변에 사랑을 받는 초코에 대한 시기심이 상당했다. 그리고 초코의 딸인 아지. 사람 손을 타지 않아서 잡히지 않고 도망만 다닌다. 매우 날렵했고 내가 처음 와서 계곡에 내려가자 나를 걱정하듯 따라와서 적당한 거리에서 날 계속 쳐다봤다.


그리고 이 문제의 까만개 초코는 이마가 톡 튀어나온 것이 참으로 영악하여 슬픈 표정을 연습할 줄도 아는 개였다. 님을 찾아 저 산 아래 고속도로 너머까지 가서 새끼를 낳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다. 내가 마침 쉬고 있었을 때 초코는 7마리의 강아지들을 낳았다. 그리고 그 사이에는 아지라는 초코의 큰 딸이 있었고 아지는 사람의 손길을 한 번도 받아본 적 없이 요리조리 도망다니며 애를 태웠던 아이였다. 부모님은 엉덩이에 땀이 날 정도로 바쁘니 그 아이들은 뭐라고 해야 할까 주인들이 맡겼을(포기했을?) 희망과는 달리 역시나 더 큰 울타리에 갇힌 셈일 지도 몰랐다.


초코는 나에게 자신의 의지를 어필했다. 일부러 내 앞에서 낑낑대고 슬픈 표정을 지으며 육아에 대한 피로를 호소했고 초코의 아이들은 하나 하나 입양되어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를 위해 남겨둔 작은 까만 강아지가 있었다. 다들 서로 겹쳐서 옹알대며 잠을 자도 이 아이 혼자만은 따로 혼자 잤다. 그래서 남겨진 아이였다.


그리고 우리 불쌍한 사랑이. 긴 이동줄로 10미터 이상은 움직일 수 있었지만 밭을 지키는 임무를 맡은 사랑이는 조금 아래있는 집에서 초코와 내가 보이면 컹컹컹컹 울었다.


내가 피아노를 어느 정도 칠 수 있게 되자 피아노 치는 시간 내내 사랑이는 울었고 아빠는 사랑이가 할 말이 많은가보라고 나보고 사랑이를 데리고 내려오라고 했다.


사랑이는 내려오고 작은 아이들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내가 초코를 쳐다보기만 해도 사랑이는 짓었다. 그리고 그 때부터 슬슬 사랑이와 아이들과의 산책을 시작했다.



4. 산책


앞에서는 초코와 아지가 신나게 뛰어간다. 그리고 한 번씩 뒤를 돌아 나를 쳐다봤다. 내가 계속 그들 쪽으로 걸으면 다시 신나게 앞장섰다. 사랑이는 내가 줄을 끌고 갔다. 한 번씩 내 얼굴을 보고 눈을 마주쳤다. 초코도 가끔 부르면 와서 나와 눈을 마주치고 갔다.


처음엔 10분만 걸어도 힘들었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강아지들 덕분인지 산책은 신나는 일이 되었다. 그리고 사랑이도 내가 힘들게 줄을 잡지 않아도 초코와 아지와 함께 잘 다녔다. 사랑이는 양치기 개답게 뒤처진 내 뒤로 내려와서 내 손을 핥고 갔다. 매일 사람이 없지만 초록으로 가득찬 작은 길을 한 시간 이상 걸었다. 이젠 강아지들이 산책 시간을 기다리며 내가 조금 게으름을 피우거나 가지 않으려 하면 낑낑대며 나를 재촉했다.


이젠 내가 아이들을 산책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나를 산책시키며 보살펴주었다.


매일 똑같은 길을 걸어도 아이들을 꼬리를 흔들며 냄새를 맡고 새로운 길인듯 신나게 걸었다. 그들이 꼬리를 흔들며 걷는 뒷 모습이 내 쓰라리고 조각난 마음을 부드러운 붓으로 어루만져 주는 것 같았다. 같아 보이는 길도 이 아이들은 새롭게 신나게 걸어간다. 길이 있으면 뛰어가고 매일 똑같은 건 없다는 듯이 냄새를 맡고 내가 뒤처지면 나를 끌어당기면서 내 등을 살포시 밀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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