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

'그리다'의 명사형이 '그리움'이지 않을까?

by moonbow

난 그림을 잘 못 그린다.

그림에 소질이 없다고 생각했는데 딱히 못 그려도 그리고 싶은 욕구는 많았던 것 같다.

뭐 감정에 중독됐듯 욕구도 많고 다양했으니까.


누군가가 내가 그린 그림을 보고 몇 살 때 그린 그림이냐고 물었다.

난 지금으로부터 약 ...... 약 육 개월 어렸을 때 그린 그림이라고 대답했다.

서른이 넘어 그린 그림을 보고 상대방은 초등학생일 때 그렸던 그림이라고 생각했나보다.

그래도 난 별 상관이 없었다. 높은 내 자존심도 큰 상처를 입지 않았다. 난 그림을 못 그리고 난 그렇게 못 그린 그림이 좋고, 잘 그리려고 그린 그림도 아니었기때문에.


그리고 못 그리는데 굉장히 특이하게 그림을 못 그린다고 했다. 글에 대한 평가였다면 난 당장 눈 앞에 있는 모든 걸 부숴버릴 기세로 화냈겠지만 아무렇지도 않고 오히려 웃겼다. (이런 자세로 글을 쓴다면 정신건강에 참으로 좋을 텐데.)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장면이 있다. 아주 어렸을 때 눈이 많이 왔다. 크리스마스가 가까워졌고 빵이 먹고 싶다고 했던가, 아빠와 손을 잡고 시장에 갔다왔던 장면이 생각난다. 너무 오래 전이라 내가 만들어 낸 상상같기도 하다. 눈이 와서 하늘은 매우 낮았고 모든 소리가 작게 들려서 참 좋았다. 너무 추운 겨울이었지만 눈이 많이 오니 바람도 불지 않고 오히려 따뜻하게 느껴졌다. 불그스름한 전봇대가 비추는 길에 모든 자동차와 나무가 모두 동그랗게 보송보송한 눈으로 덮여 있었다. 이 장면은 또 언젠가의 구정 즈음과 비슷하다. 이 기억은 정말로 확실한데 성당에서 윷놀이를 하고 오빠는 화가 잔뜩나서 먼저 집에 가버리고 집에 가는 길, 새벽에 눈이 와서 진공상태처럼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하얗고 따뜻했다. 그 순간 난 정말 다시 없을 순간이고 매우 아름답다, 꼭 기억하자 라고 생각했다. 그 이후 엄마와 아빠, 나 셋이 그렇게 걸어간 적이 없었다. 정말로 마지막이 되어 버린, 사진에도 없는 아름다운 장면이다.


이 장면은 비교적 최근의 기억이다. 나와 함께 강원도 산자락을 누비며 산책을 하고 소중한 추억을 많이 만들어 주었던 삼총사 개들. 아무리 나쁜 생각이나 마음이 들어도 나를 보며 꼬리를 흔드는(가끔은 입맛도 다시는...맛있는 걸 줄 거라 기대하며) 아이들을 보면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요양을 끝낸 후 서울에 올라 가고 시간이 될 때마다 내려와서 초코, 사랑이, 아지를 보았다. 산책을 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그리고 봄이었지만 추웠고 눈도 있어서 아이들은 더러워졌고 나는 목욕을 시키고 서울에 가기 전 일분 일초를 음미하며 작은 오두막에 누워 있었다. 목욕을 시킨 후라 아이들은 고단해져 잠이 들었다. 거의 내가 자는 침대에는 올라오지 않았지만 그 때는 이상하게 사랑이와 초코 모두 침대에 올라와 좁은 곳에서 온기를 나누며 찰나를 함께 했다. 30분 즈음의 하얀 낮잠을 잤다. 그리고 난 가야할 시간이 되었고. 또 난 느꼈다. 이 순간이 마지막이고 매우 소중할 거라는 걸.


그 이후엔 그렇게 목욕을 같이 시킬 여유도 없었고 사랑이와 초코가 모두 올라와서 나와 같이 잠든 적도 없었다. 그리고 난 점점 서울에서 내려갈 수 있는 날이 없었다. 초코가 없어지고 돌아오지 않았다. 그리고 아지가 없어졌고 얼마 후에 사랑이가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 나중에 아지가 발견되었고 그 땐 무지개 다리로 이미 건너간 이후였다.


마음 속에 그림을 그린다. 그림을 그린다는 건 그리워 한다는 것과 무언가 비슷한 것 아닐까. 그리고 글을 쓰며 그리워한다. 그 온기와 따뜻함을.


하얀 눈에 덮여 반짝이던 작은 추억들을.

가끔 그리움은 정신없이 지나치는 일상 속에서 나를 앉히고 쉬게 해준다.

그 때의 하얀 낮잠처럼, 작은 체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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