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의 착각들(정신건강을 위한)
지금은 나이가 들어서 인지 아니면 더 이상 원더랜드는 진짜로 갈 수 없다는 걸 알게되어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상상을 하는 시간이나 망상을 하는 시간이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날 우울과 불안으로 몰아넣은 진실같아 보인 생각들이 바늘 하나를 아주 큰 막대기로 왜곡된 것이었다면 날 즐겁고 괜찮게 만들어줄 도구들도 그런 방법으로 만들 수도 있겠다 싶었다.
상담을 받았을 때 힘든 시절의 날 찾아가 어떤 공간에 가게 하고 싶은 지, 그리고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은 지 상상해보라고 했다. 눈을 감고 상상하는 그 시간 조차 나는 속으로 '이런 곳에 갈 자격이 없어. 이런 짓으로 날 낫게 해줄 순 없을 거야.' 라며 상상하려는 내 앞에 이런 생각의 가시 밭을 잘도 일구었다. 그런 가시들을 밟고도 생각해낸 공간은 큰 나무가 아담한 마당에 있는 하얀 2층 집이었다.
그 때의 기억과 지금의 상상을 다 동원하여 하얀 2층 집을 지으려고 한다.
바람이 시원하게 불고 있다. 집 앞의 나무는 키가 매우 크고 둘레도 커서 내가 끌어안아도 훨씬 더 남아도는 나이가 좀 된 나무이다. 그리고 나무로 된 2층 집은 그리 크지 않다. 2층에는 다락방도 있다. 나만 들어갈 수 있고 내 비밀 물건들이 가득 있어서 여기까지 올 수 있는 내 고양이만 들어올 수 있다. 그리고 2층에는 침대가 있다. 나 혼자 자기에는 넓지만 고양이들과 강아지들과 같이 자기에는 좁지 않은. 벽에는 내가 그린 그림이 있고 소중히 여기는 사진들이 액자에 들어가 있다. 보고 있으면 마음 속으로 미소 지을 수 있는.
한 편에는 흔들의자가 있고 책을 보거나 차를 마시다가 고개를 돌리면 창 밖으로 나무를 볼 수 있다.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은 조금은 삐걱대지만 괜찮다. 그리 가파르고 높은 계단도 아니다. 1층에는 넓은 주방과 거실. 그리고 난로와 그리고 한 켠에는 피아노와 기타가 있어서 언제고 치고 싶은 마음이 들면 칠 수 있다. 역시 큰 창문이 있고 햇볕이 들어오는게 싫을 때는 내가 좋아하는 무늬의 커튼을 칠 수도 있다.
때때로 저녁이 되면 난로에 나무에 불을 지피고 몇 시간이고 나무를 더 넣으며 고양이 등을 쓰다듬고 옛 동화를 읽고 그림을 그리고 또 아무 생각도 하지 않고 나무가 타는 모습만을 바라볼 것이다.
가끔은 비가 많이 와서 소파에 앉아 내 옆에서 잠든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비가 오는 창밖을 계속해서 계속 해서 바라볼 것이다.
맑고 화창한 날에는 강아지를 데리고(계속 동물이 어디선가 나온다.) 산책을 멀리 갈 것이다. 좀 걷다보면 바다가 나오는데 바다에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에 강아지들을 풀어주고 달리기를 하고 논다. 나는 바닷가에 앉아서 파도가 끊임없이 치는 모습과 강아지들이 공을 물고 이리저리 뛰고 파도를 향해 짖는 모습을 보며 미소 지을 것이다.
그리고 어느 날 나에게 편지가 도착한다. 이야기는 어떻게 진행되어 가고 있냐고. 독촉하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의 이야기를 기다리고 또 당신을 소중히 생각하고 있다고.
당신이 아직 쓰지 않은 이야기를 이미 사랑하고 있다고.
그 편지는 다름 아닌 나에게 온 것이다. 아니 '나' 자신처럼 친한 친구에게 온 것이다. 그리고
그 누구도 당신의 재능을 의심할 수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그 친구에게 답장을 쓰려하는데 그 친구는 답장보다 당신의 이야기를 듣고 싶다고 한다.
나는 소박하지만 있을 것은 다 있는 부엌에서 창문을 보면서 신선한 야채를 다듬고 굽고 파스타를 삶아 내가 가장 맛있고 먹고 싶어하는 샐러드 파스타를 만들어 천천히 식사를 한다. 강아지가 내 식사를 노리지만 어림도 없다.
커피를 마시면서 약간 나른해지려고 하는 순간 강아지가 산책을 가자고 보채고 난 산책을 하며 친구의 편지를 되씹어 본다. 강아지의 똥을 치우며 난 어떤 이미지가 생각나고 어떤 아이가 생각이 난다. 언젠가 어디선가 꿈결에선가 본 적있는 주인공을 생각한다.
산책에 돌아온 난 조금 피곤해져서 내 꿈의 욕실에서 반신욕을 한다.
내 욕실은 바닥엔 크림색 타일이 깔려 있지만 벽의 색감은 민트 색깔이 감돈다.
아담한 욕조에 들어가 잠시만 반신욕을 한다. 너무 오랫동안 하다간 두 볼이 너무 빨갛게 되어 힘들 것이다.
그리고 졸음을 참으면서 2층 침실에 앉아 노트북을 안고 제목을 적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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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꿈이 깨졌다. 글을 쓴다는 생각을 하니까.
하지만 그 외의 것들이 있는 그 집에선 좀 더 건강하고 우울의 늪에서 허우적거리지 않으며
내게 꼭 필요한 이야기를 해주는 친구가 적당한 때에 편지를 보내주는 곳이다.
가끔은 잊지 말고 그 곳에 가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