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고픈 건지 배가 고픈 건지
밤 늦게 잠이 오지 않아 뒤척거릴 때
창 밖으로 스며드는 그림자가 내 방 벽에 그려질 때
난 참지 못 하고 다시 일어나고 불을 켠다.
사실 제대로 잠을 잘 자는 체질이 아니라 아주 어렸을 때 캠프에서 집에 가기 마지막 날엔 엄마 볼 생각에 한 잠도 자지 못했고 집에 어른이 없는 날에는 불을 다 꺼야 하지만 불을 끄면 잘 수 없어서 눈 위에 야광 묵주를 올려두고 잠을 청하기도 했다. 커서도 마찬가지다. 이런 저런 소란스런 생각에 다시 눈을 뜨고 집 안을 배회하듯 방황한다. 습관처럼 냉장고를 열고 참았다가 또 참았다가 뭐라도 먹겠다며 차를 탔다가 미숫가루를 탔다가 결국은 아침이 밝아온다. 그래도 잠이 오지 않아 멍한 상태에 아무것도 하지 못하면서 소비한 시간들은 내게 깊은 허기를 가져다 준다. 그리고 아침밥을 먹고는 잠이 든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허기를 가지고 사는 것 같다. 돈에 대한 허기, 명예, 살아 남고자 하는 의지, 즐기고자 하는 의지, 사랑, 친구.
내장 그 자체에 대한 허기를 나는 자주 느낀다. 하루 종일 커피밖에 들어가지 않을 때 배고픔을 느끼지 않는다. 그러다 일과가 끝나면 모든 긴장이 풀려서인지 쓰나미같은 허기가 몰려온다. 그리고 나는 뱃속의 검은 공간을 매울 하얀 탄수화물을 찾는다. (당연히 살로 바로 간다.) 탄수화물이 주는 평안함과 안식. 심할 때는 언제 배가 부른 지 알 수가 없었다.
30살이 되면 인생 끝나는 줄 알고 30살이 되기 전에 날씬해 지리라 다짐을 하고 PT를 했다. 퇴근하고 준비하고 운동하고 샤워하고 하다보면 3,4시간을 헬스장에서 보냈다. 이제는 그 때 너무도 심하게 했기때문에 다신 헬스장에 가지 못하겠다. 아무리 운동을 해도 살은 잘 안 빠졌다. 사실 살보다는 체형이 변하고 근육이 많이 생겼다. 운동보다도 가장 금기시해야 할 것이 하얀 탄수화물이었다.
외적인 허기에 혹사시키며 운동을 했고 여름에 아파서 헤롱거릴 때 트레이너가 체중을 재보자며 최저 몸무게가 나간다, 이 걸 유지하자고 했을 때는 심한 반발심과 섭섭함과 분노가 일었다.
욕구불만. 사람이 욕구를 채우지 못할 때 즉각적인 반응을 얻을 수 있는 음식이나 술, 담배 등, 한 참 질이 낮고 단순한 것으로 욕구를 잠재운다는데 아무래도 먹을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감안하더라도 극단적인 이 허기는 육체의 허기가 아닌 것 같았다.
그러다 한국의 미디어와 유튜브는 음식포르노로 가득차 있었고 누군가 먹는 모습, 먹는 소리를 보는 것이 유희가 되어 버렸다.
외로움, 실패했다는 생각, 피로감, 귀찮음, 욕구불만. 꿀떡꿀떡 음식을 넘기는 소리와 혀의 수많은 미뢰가 움직이며 쾌락을 전달해주는 감각으로 마음을 마비시키며 나중엔 포만감과 피로에 지처 잠들어 버리는 현상. 우울증과 스트레스에 인한 하나의 증상이다.
한 때는 허기를 채우기 위해 엉망진창으로 살다가 시골에 내려가 엄마가 해준 반찬과 내가 아빠와 먹기 위해 바로 끓인 된장찌개를 먹을 때 전혀 다른 충만함을 경험했다. 소화도 잘 됐고 소박한 음식이 부드럽고 맛있게 잘 넘어갔다. 서울에서 거칠어지고 텁텁한 입에 넣었던 자극적인 음식이 아닌 자연에서 바로 온 것. 그리고 연대를 하고 있는 가깝고 좋은 누군가와 같이 먹는다는 것. 그건 그저 허기를 채우기 위해 넣는 허연 탄수화물 덩어리와는 달랐다.
결국 사람은 항상 배도 고프고 마음도 고파서 편하고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걸 나누는 것이 지상의 행복이라고 말하는 누군가의 행복론에 조금은 머리를 끄덕거렸다.